[샷!] 급기야 고1 재수까지…'내신 리셋'

강민지 2026. 6. 20. 05:5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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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1 내신 안 좋으면 자퇴 후 이듬해 고교 재입학
"의대 가려면 1학년 내신부터 완벽해야" 걱정에 선택
내신 5등급제에 불안 호소…"2등급 뜨면 인서울 실패"
"상위권서 벗어난 80~90% 학생 위한 구제책 마련해야"
고등학생들 [연합뉴스 자료사진]

(서울=연합뉴스) 강민지 인턴기자 = 대입에서 내신 성적의 영향력이 커지면서 급기야 '내신 리셋(reset)'에 나서는 학생들이 생겨나고 있다.

'내신 리셋'이란 고등학교 1학년 때 내신을 잘 받지 못하면 자퇴한 뒤 이듬해 다시 고등학교에 입학해 '동생'들과 학교에 다니며 내신 점수 따기에 재도전하는 것을 말한다. 대입 재수처럼 내신 재수를 위해 고등학교를 1년 더 다니는 '비정상적인' 선택을 하는 것이다.

이러한 목적의 자퇴생 통계는 아직 없지만 이미 교육 현장에서는 '내신 리셋' 사례들이 확인되고 있다.

입시 과열에 따른 편법·부작용이 갈수록 심화한다는 우려가 나온다.

입시 상황 분석표 살펴보는 학부모 [연합뉴스 자료사진]

"내신 2등급 받아 자퇴…내년 고1 재입학 준비"

지난 7일 종로학원이 학교알리미 공시 자료를 분석한 결과에 따르면, 2025년 전국 일반고 1천703개교에서 학업을 중단한 학생은 총 1만8천661명으로 집계됐다.

이중 고1이 1만450명으로 56.0%를 차지했다. 지난해 고등학교에 입학했다가 1년도 지나지 않아 학교를 그만둔 학생이 1만명이 넘는다는 것이다.

고1 학업 중단자가 한 해 1만 명을 넘긴 것은 종로학원이 2019년 관련 자료 집계를 시작한 이후 처음이다.

이와 관련해 9일 '고1 자퇴생 1만 명 돌파'를 다룬 한 유튜브 영상에는 "내신이 안 나온다는 이유로 자퇴 후 밑 학년으로 재입학하는 경우가 눈에 띄게 늘었다"는 댓글이 달렸다.

자신을 고등학생이라고 밝힌 유튜브 누리꾼 '꾸***'는 "재입학한 학생들은 1년을 더 배웠으니 등급을 차지하기 쉽고, (재학생들은) 언니, 오빠들에 밀려 등급 따기가 어려워져 또 자퇴를 하는 악순환의 반복"이라고 적었다.

이어 "요즘 자퇴하고 바로 정시를 준비하는 학생은 정말 없고, 내신 따기 좋은 학교의 밑 학년으로 재입학을 준비한다"며 "오죽하면 '내신 리셋'이라는 단어가 새로 생겼겠나. 어른들과 언론이 이런 비정상적인 상황을 꼭 알아주었으면 좋겠다"고 썼다.

그간은 고교를 자퇴하는 대부분의 이유가 내신을 포기하고 검정고시를 치르기 위함이었는데, 이제는 내신을 더 잘 따고자 고1을 다시 다니는 학생들이 늘고 있다는 주장이다.

연합뉴스 취재 결과 이러한 주장은 실제 사례로 확인됐다.

대구에 사는 최모(17) 양은 작년에 자퇴한 뒤 올해 3월 다른 고등학교에 재입학했다.

최양은 19일 "의대를 준비하는데 조별 수행평가 감점과 필수 과학 과목 2등급에 절망했다"며 "우울증과 공황장애를 겪을 만큼 힘들었다고 결국 새 출발을 택했다"고 밝혔다.

또 박모(16) 군은 경기도의 한 비평준화 일반고에 다니다 지난달 자퇴를 선택했다.

박군은 "독학 재수 학원에 다니며 내년 고등학교 1학년 재입학을 준비하고 있다"며 "의대를 지망하는데 한두 문제 차이로 2등급을 받아 자퇴 후 재입학을 고민하게 됐다"며 "의대에 가려면 1학년 내신부터 완벽해야 한다는 생각에 밤마다 울고 공황장애가 올 정도였다"고 토로했다.

포항에 사는 윤모(16) 양도 재입학을 위해 지난달 자퇴했다며 "현재의 입시 구조는 학생들에게 지나친 성적 경쟁과 부담을 주고 있어 결국 '내신 리셋'까지 고민하게 만드는 환경"이라고 지적했다.

그런가 하면 경북에 사는 김모(16) 양은 "주변 자사고에도 재입학을 목적으로 자퇴한 친구들이 많다"며 "나도 자퇴 후 재입학을 고민하고 있다"고 밝혔다.

이어 "메디컬(의학 계열)이 목표라 무조건 '올 1등급'이어야 한다는 불안감이 너무 크기 때문"이라고 덧붙였다.

수험생 온라인 커뮤니티와 맘카페에서도 "1학년 1학기 내신이 의대 진학하기엔 애매한데 자퇴 후 재입학이 전략이 될 수 있느냐", "중간고사를 망친 아이가 충격을 받아 울고 있다. 자퇴 후 다시 입학할 수 있느냐", "내신이 기대보다 낮게 나왔는데 지금이라도 자퇴하고 재입학하는 게 나을지 고민된다" 등 자퇴 후 재입학을 고민하는 글이 끊이지 않는다.

용인의 한 고등학교에서 근무하는 김모 교사는 "요즘은 학생들이 고1 첫 시험 직후 '이 내신으론 원하는 대학에 못 간다'며 자퇴를 고민한다"고 밝혔다.

이어 "특히 비평준화 지역에서는 학교마다 면학 분위기와 내신 경쟁 강도가 다르다 보니 학생과 학부모들이 '차라리 재입학하더라도 내신을 다시 받는 게 낫지 않느냐'고 생각하는 경우가 생기는 것 같다"고 말했다.

등교하는 학생들 [연합뉴스 자료사진]

'고교 내신 5등급제' 직격탄…"내신 리셋 고민할 수밖에"

학생들이 '자퇴 후 재입학'을 택한 배경에는 내신 강화가 있다.

특히 2028학년도 대입부터 적용되는 '고교 내신 5등급제' 전환이 직격탄이 됐다.

기존 9등급제는 1등급 상위 4%, 2등급 누적 11%, 3등급 누적 23%, 4등급 누적 40% 등으로 나뉘는 반면, 5등급제는 1등급 10%, 2등급 24%, 3등급 32%, 4등급 24%, 5등급 10%로 나뉜다.

1등급 비율이 4%에서 10%로 늘어 얼핏 문턱이 낮아진 듯하지만, 학생들은 "2등급 아래로 떨어지면 인서울이나 의대 진학은 사실상 끝"이라는 불안에 시달린다.

지난 3월 메가스터디교육은 '5등급제 기준 2028학년도 배치 분석'에서 교과 전형 기준 '인서울 대학' 합격선으로 평균 1.583등급을 제시했다.

기존 9등급제 체제에서는 내신 2등급대도 서울 중하위권 대학을 노려볼 수 있었던 것과 비교하면 합격 문턱이 훨씬 높아진 셈이다.

임성호 종로학원 대표는 "5등급제 하에서는 1등급인 10% 안에 못 들면 인서울 주요 대학이 날아갔다는 불안감이 큰데, 이를 극복할 대안 자체가 없다"며 "고1 때 내신의 절반가량이 결정되는 구조라 남은 기간 성적을 복구하거나 만회할 시스템이 전무하다. 그러니 1학년 때 과감한 판단(자퇴 후 재입학)을 내릴 수밖에 없는 것"이라고 지적했다.

경기 양평군에 사는 전모(17) 양은 "같은 1등급이라도 평가가 갈릴 것이 뻔한데 5등급제가 어떻게 부담 완화냐"며 "작년에 정말 살고 싶다는 마음에 고민한 것이 자퇴 후 재입학이었다"고 밝혔다.

전양은 "전교 1등을 할 각오로 하루 1시간만 자며 미친 듯이 공부했지만 1학기 기말고사에서 딱 한 과목이 2등급이 뜨고 말았다"며 "5등급제에선 상위권 대학에 못 간다고 해 번아웃과 우울증, 자살 충동이 찾아왔었다"고 토로했다.

경북의 김양도 "5등급제는 같은 등급 안에 학생이 너무 많이 몰려 작은 점수 차이에도 부담이 크다"고 말했다.

그러나 자퇴 후 재입학한다고 내신이 보장되는 건 아니다. '실패하면 안 된다'는 압박은 더 커진다.

실제로 고1을 다시 다니고 있는 대구의 최양은 "한 살 어린 동생들과 학교에 다니며 은근히 이질감을 느끼고 '내가 여기서 왜 이러고 있나' 하는 현타(현실 자각 타임)도 온다"며 "부모님이 믿어주셨기에 다시 시작했는데 성적이 안 나오면 변명할 수 없다는 부담감이 너무 크다"고 토로했다.

용인의 김 교사도 "막상 자퇴한 학생들도 친구들은 한 학년 올라가는데 본인은 다시 고1을 해야 하니 후회하는 경우도 많다"며 "자퇴 후 재입학을 선택하는 과정에서 아이들이 얼마나 큰 고통을 느낄지 생각하면 안타깝지만 교사의 설득은 소용이 없다"고 밝혔다.

대치동 학원가 [연합뉴스 자료사진]

해법은 없을까.

종로학원 임 대표는 "핵심은 상위권에서 벗어난 80~90% 학생들을 위한 구제책 마련"이라며 "이 학생들을 3학년 때까지 학교가 잘 관리해주고, 안정적이고 신뢰감 있는 전형 트랙을 보장해야 한다"고 말했다.

이어 "학교 안에서도 사교육 못지않게 수능 대비반을 명확히 운영해 준다면 아이들이 굳이 학교를 나갈 이유가 없다"고 덧붙였다.

조상식 동국대 교육학과 교수는 "경쟁을 약화하기 위해 5등급제를 도입했지만, 입시 체제에서는 경쟁이 사라지는 게 아니라 다른 병목 구간으로 이동할 뿐"이라고 짚었다.

그러면서 "교육정책만으로 부족하며 노동시장 개혁과 고등교육(대학) 서열화 문제를 먼저 손보지 않는 한 어떤 정책을 내놓더라도 새로운 입시 전략은 계속 등장할 수밖에 없다"고 지적했다.

minjik@yn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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