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투표지 축소 인쇄 보고 못받았다”던 노태악, 뒤늦게 말바꿔
“보고체계 마비 등 총체적 부실 확인… 선관위 해체 수준 대대적 혁신 필요”
송파구 선관위, 투표지 기준 줄이고… 실제론 ‘선거인 50%’보다 적게 인쇄
‘비상근’ 盧, 4년간 1억7910만원 받아

6·3 지방선거 투표용지 부족 사태를 열흘간 조사한 중앙선관위 진상규명위원회 조현욱 위원장은 19일 최종 브리핑에서 “선거관리 시스템의 총체적 부실 상황이 드러났다”며 이같이 말했다. 중앙선관위는 노태악 전 중앙선관위원장 등 12명에 대한 수사 의뢰를 권고하는 등 이번 사태의 책임이 선관위 수뇌부에 있음을 분명히 했다. 특히 투표용지 부족 사태가 가장 심각했던 서울 송파구의 경우 투표용지 인쇄량 기준을 ‘선거인 수 50%’로 줄여놓고 실제론 그보다 적은 양만 인쇄한 사실이 드러났다. 노 전 위원장은 진상규명위에 “축소 인쇄 지침을 사전에 보고받은 적 없다”고 밝혔다가 번복하는 등 사실상 ‘허수아비’에 불과했다는 비판이 나왔다.

진상규명위는 본투표 당일 선관위의 보고 체계가 마비돼 있었고, 위기 대응 방안도 없었다고 진단했다. 일선 투표소에선 오전부터 투표용지 부족 우려가 제기됐음에도 서울시 선관위가 심각성을 전혀 인지하지 못해 화를 키웠다는 것. 진상규명위는 “중앙선관위가 오후 5시 8분경 서울시 선관위에 전화할 때까지 (서울시 선관위가 먼저) 보고하지 않은 점을 볼 때 보고 체계 마비 및 선거관리 시스템의 총체적 부실 상태를 알 수 있다”고 했다.
노 전 위원장은 인쇄 기준 축소를 사전에 보고받았는지 묻는 서면 질의에 처음에는 “보고받지 않았다”고 했다가, 추가 회신을 통해 “보고안건 중에 있었으나 별다른 논의나 대면 보고는 없었다”고 번복했다. 진상규명위는 중앙선관위의 “헌법상 권리인 국민 참정권을 극히 행정 편의주의적 발상으로 훼손한 것”이라고 지적했다.
진상규명위는 재발 방지 대책으로 대법관이 맡고 있는 중앙선관위원장 상근제 도입과 감사원 직무감찰 범위에 선관위를 포함시킬 것을 제안했다. 또 투표용지 인쇄 기준을 ‘70% 이상’으로 다시 높일 것을 권고했다. 최근 사전투표율이 30% 이상인 추세를 감안하면 사실상 ‘최종 투표율 100%’까지 감당할 수 있도록 인쇄량을 늘리라는 취지다.
진상규명위는 국민의힘 장동혁 대표 등이 주장하는 재선거는 권고 사항에 포함시키지 않았다. 조 위원장은 “선거 소청 등 법적 절차를 통해서 법원 판단이 내려진 다음에 재선거 여부를 판단해야 한다”며 “법원 판단에 의하는 것이 합리적이라고 봤다”고 설명했다.

국민의힘 김민전 의원실이 중앙선관위로부터 받은 자료 등에 따르면 중앙선관위는 비상근인 노 전 위원장에게 2022년 5월 취임 이후 지난달까지 1억7910만 원을 지급한 것으로 드러났다. 이 중 가장 큰 비중을 차지한 건 출근 여부와 상관없이 매달 290만 원씩 지급되는 ‘공명선거추진활동비’(9710만 원)였다. 문제는 노 전 위원장이 취임한 2022년엔 이 수당을 지급할 법적 근거가 없었다는 점이다. 감사원이 같은 해 11월 “법을 위반해 월정액 등으로 공명선거추진활동비를 지급하는 일이 없도록 하라”고 지적하자 중앙선관위는 2023년 1월부터 지급을 중단했다가 2024년 1월 국회가 선관위법을 개정한 뒤 다시 이 수당을 지급하기 시작했다.
중앙선관위는 또 2023년 1월 위원회 의결로 ‘중앙선관위 위원 수당에 관한 규칙’을 개정해 안건검토수당을 10만 원에서 30만 원으로 올린 것으로 드러났다. 공명선거추진활동비가 없어지며 수당이 줄자 선관위원들이 수당을 3배로 ‘셀프 인상’한 것. 노 전 위원장은 2023년 6월 한 달 동안 안건검토수당만 510만 원을 받기도 했다. 안건검토수당은 공명선거추진활동비 지급이 재개된 2024년 1월부터 다시 10만 원으로 원상회복됐다.
중앙선관위는 2022년 공명선거추진활동비가 법적 근거 없이 지급된 점은 인정하면서도 “안건검토수당은 규정에 따라 지급된 것”이라고 밝혔다.
이지운 기자 easy@donga.com
이승우 기자 suwoong2@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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