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0일 뒤 호르무즈 통항료 내면… 한국에 年 1조원 폭탄 날아든다

미국과 이란이 종전 양해각서(MOU)에 서명했지만 향후 이란이 호르무즈 해협 통항료를 부과할 수 있다는 우려가 커지며 중동산 원유 의존도가 높은 우리 산업계가 긴장하고 있다.
17일(현지 시각) 미국 백악관이 공개한 14개 항의 MOU 문서에는 ‘호르무즈 해협의 향후 해상 서비스 체계를 이란이 오만 및 걸프 연안국들과 논의한다’는 문구가 포함됐다. 글로벌 해운업계는 새로운 통항료 체계 도입 가능성을 시사한 것으로 보고 있다.
이란 최고국가안보위원회(SNSC)도 성명을 통해 “60일간은 통행료를 면제하겠다”고 발표했다. 60일 이후 유료화를 강행하겠다는 사실상의 예고인 셈이다. 이란 측 협상 대표인 모하마드 바게르 갈리바프 의회 의장도 18일 “호르무즈 해협은 전쟁 이전 상태로 돌아가지 않을 것”이라며 “우리가 제공하는 서비스에 대한 요금을 당연히 받을 것”이라고 했다.
세계 LNG(액화천연가스)의 약 3분의 1, 석유의 약 6분의 1이 통과하는 호르무즈 해협은 그간 국제 해상 통로로서 ‘무료 통항’이 원칙이었다. 그러나 유예 기간이 끝나면 호르무즈 해협이 사상 최초로 유료화될 가능성이 갈수록 짙어지고 있는 것이다. 에너지·외교·물류 전문가들은 “중동 의존도를 줄이려던 국가적 다변화 노력이 흐지부지 끝나서는 절대 안 된다”며 “진짜 자원 안보 전쟁은 이제부터 시작”이라고 말했다.

◇통항료 현실화하면 年 1.1조 부담
한국의 수입 원유 가운데 약 65%는 호르무즈 해협을 거쳐 국내로 들어온다. 이란의 통항료 부과가 현실화할 경우 한국도 에너지·물류 비용이 급등할 수밖에 없는 구조다. 이란 의회 국가안보위원회는 호르무즈 해협을 통과하는 유조선에 배럴당 1달러 수준의 통항료를 위안화나 스테이블코인으로 징수하는 신규 관리 계획안을 승인한 바 있다. 통상 200만 배럴의 원유를 싣는 초대형 유조선(VLCC) 한 척이 이 해협을 한 번 지나갈 때마다 약 200만달러(약 30억원)의 통항료를 내야 한다는 뜻이다.
한국무역협회에 따르면, 한국의 중동산 원유 연간 수입 규모는 약 7억1700만 배럴이다. 배럴당 1달러의 통항료가 부과될 경우 연간 1조1000억원의 추가 부담이 예상된다. 해운업계 관계자는 “통항료로 인한 부담은 결국 유가와 국내 물가의 상승으로 이어질 것”이라며 “유류비가 전체 비용의 15~20%에 달하는 해운업도 타격이 불가피하다”고 했다.
호르무즈 해협 대신 사우디아라비아의 육상 송유관을 거쳐 홍해로 우회하는 방법이 있지만 운반할 수 있는 양이 호르무즈 해협의 평시 원유 물동량(약 2000만 배럴)의 7분의 1에 불과하다. 운송 거리와 기간이 늘어나면서 전체적인 물류 비용도 크게 증가한다. 비중동산 원유에 비해 배럴당 1.12달러가량 저렴해 국내 정유사의 핵심 공급원 역할을 해왔던 중동산 원유의 가격 경쟁력은 사실상 소멸하게 된다. 국책연구기관 국가안보전략연구원은 최근 보고서에서 “호르무즈 해협 통항료 부과는 한국에 ‘국가 비상사태’가 될 것”이라며 “통항료는 곧 유가 상승으로 직결되며, 중간재를 수입해 가공 후 수출하는 구조인 한국은 수출 경쟁력 약화가 우려된다”고 했다.
◇통항료 납부 시 美 제재 가능성도
더 큰 문제는 국내 기업들이 이란에 돈을 지불할 수도 없다는 딜레마다. 미국 재무부 해외자산통제국(OFAC)은 최근 업데이트한 지침을 통해 “호르무즈 통항료를 내거나 이란과 거래하면 강력한 경제 제재를 받게 된다”고 못 박았다. 미 재무부는 이란이 통행료 징수를 위해 신설한 ‘페르시아만 해협 청장(PGSA)’을 이란 혁명수비대의 자금 세탁 기구로 보고 ‘특별지정제재대상(SDN)’으로 지정했다. OFAC은 “결제 방식과 상관없이 모두 제재 위험이 있다”며, 외국 기업이 통항료를 지급해 미국 은행이나 보험사가 의도치 않게 제재를 위반하게 만든다면 해당 외국 기업은 미국법에 따라 민·형사상 처벌(세컨더리 보이콧)을 받을 수 있다고 경고했다.
정유업계에서는 이란이 60일 이후 통항료를 실제로 부과하고, 우리 기업들이 이를 납부할 경우 미국의 제재를 받을 가능성이 있다고 본다. 유조선 선주가 통항료를 내더라도, 유조선 관련 보험 상품을 팔거나 자금 지원을 해준 미국 금융회사가 대신 제재를 받을 수 있다는 관측도 나온다. “통항료 부과가 곧 해협 봉쇄나 마찬가지”라는 반응이 나오는 이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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