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힙 불교’ 열풍 타고 할머니 대자리가 돌아왔다
내 집안에 들어온 ‘산사’
대자리 깔고 茶具 들인다

서울 서대문구 아파트에 사는 직장인 이모(38)씨는 얼마 전 3년간 쓰던 스페인산(産) 단모 러그(작은 깔개)를 치우고, 대나무로 만든 대자리를 들였다. 이씨는 “대자리라고 하면 어쩐지 촌스러운 느낌이 들었는데, 최근 ‘젠 스타일’이라고 광고하는 제품을 보니 어릴 때 할머니 집에서 보던 바로 그 대자리더라”며 “실제 거실에 깔아 놓으니 마음이 차분해지면서 마치 산사에 들어온 느낌이라 좋고, 시원한 건 덤”이라고 말했다.
‘힙불교’ 열풍이 집 안 풍경까지 바꿔 놓고 있다. 힙불교는 ‘개성 있으면서 최신 유행에 밝고 신선하다’는 뜻의 ‘힙하다’와 ‘불교’를 합친 신조어다. 최근 MZ세대를 중심으로 퍼지고 있는 불교 열풍을 뜻한다. 얼마 전까지만 해도 인테리어 업계에선 추운 기후에 맞서 집 안을 밝고 편안한 색감으로 꾸미는 ‘북유럽 스타일’이나 모듈형 철제 가구에 세련미를 내세운 ‘미드 센추리 모던’이 주목받았다.
최근 젊은 층을 강타한 ‘힙불교’ 열풍이 리빙·인테리어 업계로 옮겨붙으면서, 동양적 절제미를 강조하는 ‘젠(Zen) 스타일’ 인테리어가 부상하고 있다. 업계 관계자는 “최근엔 인테리어 상담을 해보면 ‘젠 스타일’ 사진을 가져오는 경우가 크게 늘었다”며 “문에 가느다란 살을 일정한 간격으로 배열해 만든 ‘간살도어’가 대표적인데, 마치 절처럼 평화롭고 아늑한 분위기를 연출하는 것이 특징”이라고 했다.
‘젠(Zen)’은 불교 용어인 선(禪)에서 출발한 말로, 평안함·고요함 등을 뜻한다. ‘젠 스타일’은 이를 추구할 수 있는 동양적이고 명상적인 분위기를 풍기는 인테리어를 말한다. 저상형 침대나 좌식 탁자 등으로 가구 높이를 낮춰 공간의 여백을 극대화하고 마음을 차분하게 가라앉힐 수 있는 색감을 쓰는 것이 특징이다. 인위적인 소재보다는 대나무나 라탄(등나무) 같은 자연주의 소재를 주로 사용한다. 그러다 보니 함께 주목받게 된 소품이 ‘대자리’다. 한때 여름철 대표적인 방석·자리 소재였지만, 패브릭 러그나 특수 개발된 냉감 소재 등에 밀려 시장의 외면을 받았던 대자리가 젠 스타일과 함께 화려하게 부활한 것이다.
부활한 대자리는 좀 더 현대적인 세련미를 갖춘 것이 특징이다. 국내 한 유명 러그 전문 업체가 올여름 처음으로 선보인 ‘대나무 러그’는 천연 대나무 살을 엮어 시원함과 결은 그대로 살리면서도, 테두리에 별도 마감 처리를 해 모던한 감성을 살렸다. 미끄럼 방지 기능을 더하고, 염색을 통해 패턴을 입힌 대자리도 있다.

경기도 성남에 거주하는 정모(35)씨는 “평소 인테리어에 관심이 많아 ‘핀터레스트(이미지를 기반으로 한 소셜미디어)’ 등을 통해 자주 예쁘게 꾸민 집을 살펴보는데, 올해는 유독 ‘bamboo rug(대나무 러그)’ 등으로 소개되는 대자리 사진이 눈에 많이 띈다”며 “집 한쪽에 작은 대자리를 깔고 그 위에 좌식 테이블을 설치해 다구(茶具)를 놓았더니 나만의 작은 명상 공간이 됐다”고 말했다.
실제 찻잔, 차판(물받이 형태의 다기 도구), 숙우(끓인 물을 식히는 그릇) 등 일부 마니아층 전유물로만 여겨졌던 전통 다구도 힙불교 열풍을 타고 젊은 층 사이에서 인기를 끌고 있다. 건강과 자기 관리에 대한 관심이 커지면서 커피 대신 차를 소비하고 ‘술잔 대신 찻잔을 든다’는 젊은 층의 ‘소버 큐리어스(Sober Curious·의도적으로 술을 마시지 않는 삶)’도 이를 거들고 있다. 지난 4일부터 서울 코엑스에서 나흘간 열린 ‘제23회 국제차문화대전’은 사전 등록에만 지난해보다 1만명 이상 늘어난 4만명이 몰렸다. 개막 첫날 이곳을 다녀왔다는 자영업자 이모(45)씨는 “업무 때문에 벌써 몇 년째 차문화대전에 다니고 있는데 올해는 줄을 설 정도로 사람이 많았고, 특히 2030세대가 크게 늘었다”며 “인기 있는 다기들은 금세 판매가 돼 ‘구매 전쟁’이란 말까지 나올 정도였다”고 했다.

SNS상에선 ‘차 도구 추천’ ‘집에서 직접 차 우려내는 법’ 등 차[茶] 입문자를 위한 다구 사용법을 알려주는 콘텐츠뿐 아니라 자신만의 ‘다도 테이블’을 인증하는 문화도 생겼다. 내 집 안에 작은 산사를 마련한 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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