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50만 명이 더 투표, 민주당에 정서적 반격 날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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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치학자 박상훈이 본 6·3 지방선거
6·3 지방선거 직후 박상훈 박사가 소모임에서 발표한 선거 관전평이 알음알음 알려지며 정치권에서 반향을 불렀다. 여와 야에서 도대체 어떤 일이 있었는지에 대한 진단과 앞으로 어떻게 전개될 지에 대한 전망이 담겼다. 당초 1만5000자 분량의 글을 4000자로 줄여 게재한다. 편집자주
![이번 전국동시지방선거 투표율은 61%로 4년 전 보다 10.1%포인트 상승, 450여만 명이 더 투표에 참여한 것으로 나타났다. 사진은 지난 3일 부산 부암1동 제4투표소를 찾은 시민들의 모습. [뉴시스]](https://img2.daumcdn.net/thumb/R658x0.q70/?fname=https://t1.daumcdn.net/news/202606/20/joongangsunday/20260620000321671buyy.jpg)
낮은 투표율의 ‘허니문 선거’여도 이상하지 않은 시점에서 투표 참여가 폭증했다. 윤석열 내란 사태 직후인 2025년 대선 투표율은 2022년 대선 때보다 2.3%포인트 늘었다. 그런데 이번 지방선거에서는 2022년에 비해 10.1%포인트나 높아졌다. 4년 전보다 450여만 명이 더 투표장으로 쏟아져 나온 것이다. 무엇인가에 화가 난 것일까. 참고 있다가 터뜨린 ‘분노 투표’라고 해야 하나, 변화를 따라가보자.

선거 분석에서 정치학자들은 경쟁하는 정당들의 구도(format)를 중시한다. 그런 관점에서 보면 첫째, 가장 열심히 정치 동원을 해야 할 야당은 거의 몰락한 상태였다. 공천을 관리할 수준조차 안 되었다. 후보들은 ‘정당 없는 선거’, ‘당 대표가 오지 않는 선거 운동’을 원했다. 둘째, 여러 제3 정당들의 정치 동원력도 최저 상태였다. 주목할만한 후보도, 변변한 의제 하나 제시하지 못했다. 그저 민주당 꽁무니만 쫓아다녔다. 모든 것이 민주당에 달린 선거였다.
셋째, 민주당의 전략은 낮은 투표율 맞춤형이었다. 논란이나 쟁점을 만들려 하지 않았다. 후보들은 대통령 인기에 의존하는 소극적 선택을 했다. ‘이재명 정부의 성공’을 내건, 대통령 신임 투표 같았다. 공약 대신 ‘대통령과 친함’을 앞세운 선거 슬로건을 보면서 사람들은 “지방선거가 재밌네”하고 시큰둥해 했다. 처음 분위기는 분명 그랬다.
역학(mechanics)의 관점에서도 이해가 가능하다. 우선, 주가 상승에 따른 개인 소득 증가나 한국경제의 국제적 지위 상승 등 여권에 유리한 ‘경제투표’가 예상되는 상황이었다. 민주당으로서는 상대 당 후보와 지지자들의 의지를 좌절시키기만 하면 되었고, 이를 위한 전략으로 ‘행정 통합’을 들고 나왔다. 중앙 정부 예산 지원을 기대하게 하는 ‘돼지 여물통 정치(pork barrel politics)’만으로 충분하다고 여겼다.
문제는 지방이 소외된 지방선거였다는 점이다. 누가 봐도 중앙을 위한, 중앙에 의한, 중앙의 선거였다. 임기 초 선거에서 압승해야겠다는 중앙 권력의 욕심이 지방민을 구경꾼으로 전락시켰다. 수십조의 돈이 쏟아진다? 어디로? 광주인가 전남인가? 대구인가 경북인가? 대전인가 충청인가? 지방은 자율적 판단을 할 여유도 없이 중앙이 강요한 행정 통합을 두고 분열했다.
중앙 권력은 아랑곳하지 않고 밀어붙였다. 어차피 선거는 여권의 바람대로 될 것 같았다. 선거는 싱겁게 민주당 압승으로 끝나고 국민의힘은 곧바로 해체 위기에 직면할 것으로 보였다. 당시 모든 여론조사 결과가 이 경로를 가리키고 있었다. 하지만 인간은 복잡한 존재이고 인간들의 집단행동 또한 쉬운 예상을 허락하지 않는다. 돈, 돈 한다고 사람들이 돈에 굴종적이 되는 것도 아니다. 유권자를 ‘배부른 노예’가 되길 바라는 존재로 보지 않는 한, 주가 올리고 예산을 쏟아붓는 것으로 원하는 결과를 만들려 했던 선거 전략은 너무 단순했다.
경쟁 구도가 제공하는 ‘거시적 합리성’과 이를 실현하기 위한 ‘역학적 합리성’이 곧 개별 행위자의 ‘미시적 합리성’까지 지배하는 것도 아니다. 이 또한 인간의 정치가 가진 묘미다. 거꾸로 ‘쉬운 선거’라는 인식이 여권 내부의 중요 행위자들에게는 사적 편익을 위한 이기적 기회로 작용했다. 바로 이 지점에서 돌이키기 어려운 갈등이 발생했다.
결론부터 말하면, 민주당의 선거 전략 기조는 지켜지지 않았다. 정청래 대표는 8월 전당대회를 위한 선거 운동으로 지방선거를 활용했다. 지방선거를 당 대표 재선을 위한 수단으로 여겼기에 무리하게 자기편만 챙겼다. 이재명 대통령은 논란이 될 만한 발언을 멈추지 않고 쏟아냄으로써 ‘조용한 선거 전략’을 훼손했다.
민주당 내부에서는 정청래를 향한 ‘기획 공천’ 반발이 본선 내내 끊이지 않았다. 이 대통령은 모든 사안에서 존재감을 드러내고 싶은 열정 때문에 여론을 자주 요동치게 했다. ‘공소취소모임’을 주도하던 의원들의 조바심도 지나쳤고, 팬덤 언론과 팬덤 명망가들은 ‘영업의 목적’에서 갈등을 키웠다. 시간이 지날수록 애초의 선거 전략은 그야말로 난장판이 되어갔다.
투표 결과를 보면 정청래는 민주당 지지자들을 격분시키고 분열시켰다. 이 대통령에 대한 반발 심리는 중도와 보수 여론을 선거 참여 쪽으로 이끌었다. 전자가 호남 지역의 화난 투표를 자극했다면 후자는 호남 이외 지역에서 분노 투표를 낳았다. 선거 막바지에 들어와 민주당 전략가들은 상황의 심각성을 알아차렸다.
당시 민주당 내부 문건은 전북과 대구, 서울과 경남의 광역 단체장 선거는 물론 평택과 부산 보궐선거가 경합 중이고, 전남-광주의 기층 선거에서 무소속의 약진을 막을 수 없음을 보여주었다. 정청래에게는 전북 선거를 뒤집는 게 절실했다. 전북 패배가 그에게는 곧 몰락을 뜻했기 때문이다. 그래서 당의 재정 자원과 상근 인력을 모두 전북 지역에 쏟아붓는 선택을 했다. 드디어 민주당은 전북의 판세를 뒤집었다. ‘경북의 국민의힘’처럼 전북에서 민주당은 전승했다. 대신 다른 전략 지역을 모두 잃었다.
마키아벨리라면 이렇게 말했을 것이다. “혜택을 본 자가 많아도 그 지지는 미온적이나, 손해를 보거나 모욕당했다고 생각하는 자의 복수 의식은 소수라도 강렬하다.” 이익의 범위(scope)도 중요하지만 그 못지않게 열정의 강도(intensity)도 중요하다는 뜻이다. 이익을 본 자는 그 이익을 자신이 잘해서 얻은 것으로 여긴다. 인간이란 대체로 그렇다. 손해나 모욕을 당한 자의 심리는 다르다. 그가 받은 상처는 곧바로 상대의 몰락을 지향하게 만든다.
부동산 계급의 저항 투표라는 해석은 분명 설명력이 있다. 공소 취소에 대한 응징 투표라는 해석도 설득력이 있다. 그러나 그런 합리적 설명 이상의 측면이 있다. 인간을 격분시키는 것은 감정의 비합리성에서도 비롯된다. 진보나 중도, 보수를 떠나서 이 대통령과 민주당을 지지하지 않으면 “기득권” “불로소득” “친일” “내란 옹호” 등으로 몰아가는 것에서 비롯된 모욕감은 누구도 참을 수 없다. 단순히 보수의 재결집만으로는 설명이 어려운, 일종의 정서적 반격이 이번 투표 참여의 열기를 뒷받침했다. 선거가 끝나고도 그 열기는 식지 않고 선관위 문제로 지속되었다.
1년 전 국민적 항쟁으로 쿠데타를 막아섰을 때 대부분의 시민은 희망적인 미래를 생각했다. 정청래는 달랐다. 그는 상황을 ‘검찰독재’와 ‘윤어게인’ 세력이 호시탐탐 기회를 노리는 형국으로 정의했다. 내란은 끝나지 않았다며 두려움을 동원하는 일만 했다. ‘윤어게인’은 장동혁만이 아니라 정청래도 필요했다. 그렇게 해서 ‘정청래와 장동혁의 적대적 연대’가 형성되었고 그 덕분에 지난 1년 동안 두 당 대표가 한국 정치를 지배할 수 있었다.
정청래와 장동혁의 ‘적대적 연대’ 형성
정청래와 장동혁이 서로를 필요로 하면서 정치에서의 갈등 라인은 뒤틀리기 시작했다. 여권 안에서는 ‘명청대전’이라 불리는 ‘친명’과 ‘친청’의 갈등이 터져 나왔고, 야권에서는 ‘장동혁 대 한동훈’의 대립이 심화되었다. 이를 정치학자들은 ‘갈등의 치환’이라고 부르는데, 정상적 갈등이 비정상적으로 뒤바뀌면 파국적 상황에 취약해진다. 합리적으로 보면 정청래와 이 대통령의 대립은 비정상이다. 그런데도 그들은 돌이키기 어려운 다리를 건넜다. 민주당의 내전이다.
경선부터 본선에 이르는 지난 3개월을 돌아보자. 투표율이 4년 전과 같았으면 어떻게 되었을까. 민주당의 전략은 계획대로 모두 실현되었을 것이다. 투표율이 10%포인트가 아니라 9%포인트 증가하는 정도에서 멈추기만 했어도 민주당이 압승했을 것이다. 정청래는 도박을 했고 운이 없었다.
이 대통령은 유권자를 대상화해서 봤다. 주식과 부동산, 5·18 이슈 등을 통해 여론을 좌지우지할 수 있다고 자신했다. 그는 정부 책임자 대신 SNS 운영자가 되는 선택을 했고, 정책 활동 대신 여론 지배의 길로 나아갔다. 선거에서 압승하면 더 높은 여론 지지로 혼자서만 자유로운 국가를 만들 수 있으리라 착각했다.
그러나 어쩌랴. ‘정치의 여신(포르투나)’은 늘 변덕스럽게 자신의 존재감을 나타낸다. 인간의 정치는 불가예측의 오묘함 때문에 늘 우리를 당황하게 만든다. 선거는 정청래와 이 대통령에게 동반 패배를, 나머지 정치세력에게 비웃음을 안긴 것으로 끝났다. 당선자는 있어도 승자는 없는 선거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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