산재예방 위해 폭염휴게소 지었더니 … 노동위 "원청 지배력 인정"
안전예산 편성·화장실 관리
작업 前 안전회의·출입통제
모두 '사용자성 인정' 근거로
업계, 비용 늘고 교섭부담까지
분양가 상승·공급 차질 우려

건설사들이 중대재해를 막기 위해 현장에 깔아둔 안전장치들이 원청 사용자성 인정 근거로 활용되고 있다. 안전앱 운영, 작업허가서 확인, 출입통제, 안전보건관리비 편성, 보호구·안전시설 관리 등이 '하청 근로자의 작업조건을 좌우했다'는 근거로 해석되면서 건설 업계 부담이 커지고 있다.
업계는 법령에 따라 안전보건 의무를 이행했을 뿐인데, 이것이 하청 노조와의 단체교섭 의무로 이어지는 구조라고 반발한다.
조지연 국민의힘 의원실을 통해 확보한 주요 건설사 결정문에 따르면 포스코이앤씨 사건 결정문은 이런 흐름을 잘 보여준다. 경북지방노동위원회는 "원청은 하청이 고유하게 행사하는 인사권·징계권의 영역에까지 개입하는 것은 아니다"면서도 "노조가 요구한 교섭 의제 중 어느 하나라도 원청의 실질적 지배력이 인정되면 사용자로 보아 교섭 석상에 나올 절차적 의무가 부과된다"고 판단했다.
◆ 산업안전이 단체교섭 족쇄
건설사들은 '산업안전' 의제 하나만 걸려도 원청이 교섭대에 설 수 있다고 우려한다. 작업허가, 작업중지, 위험성 평가, 안전예산 편성처럼 현장 운영과 맞물린 사안이라면 하청 노조가 원청을 상대로 교섭을 요구할 수 있는 통로가 열릴 수 있기 때문이다. 노동위는 산업안전이 하청업체만으로 해결하기 어려운 현장 운영 문제인 만큼 이를 실질적으로 관리하는 원청도 교섭 의무를 부담한다고 보고 있다.
실제 결정문에는 음주 단속이나 안전앱 같은 특수 사례뿐 아니라 건설 현장에서 일상적으로 이뤄지는 작업 전 안전회의(TBM), 전체 공정표 배부, 작업순서 관리, 출입통제 등이 반복적으로 원청의 사용자성 인정 근거로 등장했다. 원청 입장에서는 산재를 막기 위한 통상적인 현장 관리가 하청 노조와의 교섭 의무를 뒷받침하는 자료로 바뀐 셈이다.
화장실·휴게실 같은 현장 시설도 예외가 아니었다. GS건설 사건에서 노조는 건설 현장별 인원이 수백 명에서 수천 명까지 이르는 만큼 법정 최소 기준만으로는 부족하고, 시설 개선은 시설관리 권한을 가진 원청과 협의해야 가능하다고 주장했다. 포스코이앤씨 사건에서도 노동위는 주요 시설·장비·작업 공간이 원청의 지배·통제 아래 있고 안전 관련 예산 편성·집행 결정권도 원청에 있다고 봤다. 현장 편의시설 관리까지 원청의 산업안전 지배력을 보여주는 정황으로 쓰인 것이다.
산업안전보건관리비를 둘러싼 반발도 같은 맥락이다. 원청은 법령에 따라 산업안전보건관리비를 편성하고 안전시설비, 보호구, 근로자 건강장해 예방비, 안전관리자 인건비 등으로 쓰이도록 관리한다. GS건설 등 일부 건설사들은 고위험 공종에 안전관리비를 선지급하고 협력업체의 안전 수준을 평가하는 제도도 운영했다. 기업들은 이를 법정 안전의무 이행으로 보지만 노동위 결정문에서는 원청의 실질적 지배력을 보여주는 자료로 해석됐다.
◆ 교섭 장기화땐 공기 지연 불보듯
건설 업계는 이 같은 판단이 노사관계 부담을 넘어 공사비와 공기 관리에도 영향을 줄 수 있다고 본다. 산업안전 교섭이 작업중지, 공정 조정, 혹서기·혹한기 휴게시간, 장비 동선, 인력 배치 문제로 확대될 경우 현장 운영 전반이 교섭 대상이 될 수 있기 때문이다. 교섭이 장기화하거나 쟁의로 번지면 공정 지연과 간접비 증가로 이어지고 이는 분양일정과 입주 시기에도 영향을 줄 수 있다는 게 업계의 우려다.
최근 건설 현장은 공사비 급등과 인력난, 프로젝트파이낸싱(PF) 경색으로 이미 사업성이 크게 악화된 상태다. 여기에 원청 교섭 부담까지 커지면 신규 수주나 착공 판단이 더 보수적으로 바뀔 수 있다. 특히 정비사업이나 민간 주택사업은 공기 지연이 금융비용 증가로 이어지는 만큼 노사 리스크가 커질수록 아파트 공급 속도에도 부담이 될 수 있다.
◆ 노동위 오락가락 판단에 현장 혼란
건설 업계에서는 지방노동위원회와 중앙노동위원회의 판단이 엇갈린 점도 불확실성을 키우는 사례로 보고 있다. 중노위는 최근 한국타워크레인조종사노조가 중흥건설·중흥토건을 상대로 낸 재심 사건에서 전남지방노동위의 기각 결정을 취소하고, 산업안전 및 작업환경 관련 사항에 한해 원청 사용자성을 인정했다. 전남지방노동위가 산업안전보건법상 안전의무 조치만으로는 하청 근로자의 근로조건을 실질적으로 지배·결정한다고 보기 어렵다고 판단한 것과 반대로 결론을 낸 것이다. 업계 관계자는 "지방노동위에서 원청 사용자성이 기각돼 한숨 돌렸던 사건까지 중앙노동위에서 뒤집히면서 행정소송 외에는 대응할 선택지가 줄었다"며 "회사들도 대응 전략을 다시 짜야 하는 상황"이라고 말했다.
노조 요구도 이미 넓어지는 흐름이다. SK에코플랜트 사건에서 노조는 산업안전을 핵심 교섭의제로 특정하면서도 적정공사비 보장, 원·하청 공동 산업안전보건위원회 구성, 혹서기·혹한기 유급휴게시간 인정 등을 제시했다. 적정공사비는 도급금액, 원가, 공기와 직결되고 유급휴게시간은 작업시간과 인력 투입 문제로 이어진다.
권혁진 대한건설협회 상근부회장은 "법령상 강제된 안전의무 이행을 노동조합법상 원청 사용자성 인정의 근거로 삼는 것은 타당하지 않으며, 산업재해 예방이라는 안전 관련 법령의 취지와도 부합하지 않는다"고 지적했다.
[박소은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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