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르포] "더위 먹을 각오로 나왔다" 33도 땡볕도 못 막은 개표소 봉쇄 시위
올림픽공원 태극기·성조기 물결
간식·아이스크림 나누며 시위 이어가
"내 표 내놔" "얼음과 양산으로 버틴다"

이날로 핸드볼경기장 일대의 시위는 보름째를 맞이했다. 지난 17일 오후 30대 남성이 자해 소동을 벌인 핸드볼경기장 1-3 게이트 앞에는 폴리스라인이 설치됐고 경찰은 그 앞을 지켰다. 서울 실시간 도시데이터에 따르면 오후 2시 기준 올림픽공원 내 체류 인구는 약 9000~9500명으로 집계됐다. 참가자 연령대는 60대 이상이 24.8%로 가장 높은 비율을 차지해 20~30대가 주축이었던 지난 주말 집회와는 다른 모습을 보였다. 20대는 15.1%로 10대(4.7%) 다음으로 적었다.
집회 참가자들은 내리쬐는 땡볕 아래서도 자리를 지켰다. 서울시는 전날 오후 2시를 기준으로 시내 동남권과 서남권에 폭염주의보가 발령됐다고 밝혔다. 이들은 "대한민국 만세" "선관위 해체" 등 구호를 외치며 태극기와 성조기를 흔들고 애국가를 제창했다. "부정선거 재선거" "당일투표 투개표"를 반복적으로 부르짖기도 했다.
가만히 서 있기만 해도 땀이 흐르는 날씨 탓에 인파는 평소보다 줄었지만 참가자들은 연신 부채질을 하거나 태극기가 새겨진 양산, 파라솔, 선글라스, 휴대용 선풍기로 중무장하고 쿨패치를 붙이는 등 다양한 방법으로 더위를 이겨내기 위해 노력했다. 한 집회 참가자는 "선관위 때문에 이게 무슨 고생이냐. 내 표 내놔"라고 고함을 치며 흐르는 땀을 닦았다. '시원하게 이깁시다! 아이스 깨끼 먹고 힘냅시다!'라는 현수막이 설치된 부스에선 관계자들이 아이스크림을 나눠주며 서로를 독려하기도 했다. 서울 종로구에서 왔다는 박모씨(83)는 "날이 더워서 집회하는 사람들이 줄어들 게 걱정이라 낮부터 나왔다"면서 "더위 먹을 각오도 하고 있다"고 힘주어 말했다.

시민들은 집회가 장기화하더라도 끝까지 자리를 지키겠다는 의지를 보였다. 전날 오후 10시부터 텐트 속에서 밤을 새웠다는 60대 김모씨는 "투표할 권리도 보장되지 않는 상황이 심각하다고 느껴 모기향을 피워가며 안간힘을 쓰고 버티는 중"이라며 "집에 있으나 여기에 있으나 나라 걱정에 잠 못 이루는 것은 마찬가지라 힘들다는 생각은 들지 않는다"고 강조했다. 그러면서 "공정하게 선거가 치러지는 나라를 후손들에게 물려주고 싶다"고 덧붙였다. 가방에 태극기를 꽂고 있던 박규태씨(75) 역시 "집에 있으면 덜 더울지 몰라도 혈압이 올라 참을 수가 없다"면서 "여기 나와 함께 노래하고 구호를 외치면 살아 있는 느낌이 들어서 좋다"고 말했다.
현장의 분노가 거센 가운데 투표용지 부족 사태와 관련해 진상 규명을 촉구하는 목소리도 힘을 얻고 있다. 국회는 지난 18일 본회의를 열고 '제9회 전국동시지방선거 투표용지 부족 사태 등 국민참정권 침해 진상규명 및 선거관리 개혁을 위한 국정조사계획서'를 여야 합의로 의결했다. 특위는 오는 8월 1일까지 이번 사태가 발생한 배경을 규명할 예정이다. 이를 토대로 중앙선거관리위원회 조직·예산 구조와 선거관리 제도 전반에 대한 강도 높은 개혁에 나설 전망이다.
시민단체들도 일제히 성명을 내며 압박에 나섰다. 경제정의실천시민연합은 "무너진 선거 행정에 대한 신뢰를 회복하고 대한민국 민주주의가 다시금 바로 설 수 있도록, 국회의 책임 있고 적극적인 역할을 강력히 촉구한다"고 밝혔다. 이어 "국회는 국민의 엄중한 분노를 직시하여, '구 단위'까지 선관위의 운영 실태를 철저하게 점검해야 한다"면서 "가용한 입법 수단을 모두 동원하여 제도를 정비한 후, 그럼에도 구조적인 통제 공백이 남는다면 그때 '원 포인트 개헌' 논의를 본격화해도 된다"고 부연했다.

jyseo@fnnews.com 서지윤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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