쿠바, 국가 주도 계획경제 ‘손질’…‘중국·베트남식’ 개혁·개방 나선다

쿠바가 국영기업 중심의 사회주의 계획경제 체제를 대폭 손질하는 176개 경제개혁안을 통과시켰다. 시장 경제와 사회주의 체제가 혼합된 중국·베트남식 개혁·개방 노선으로 방향 전환에 나선 것이다.
18일(현지시각) 현지 매체 그란마와 로이터·에이피(AP) 통신 등 보도를 보면, 마누엘 마레로 쿠바 총리는 이날 전국인민대표대회(국회)에서 국영기업 개혁, 민간기업 규제 완화, 민간은행 허용, 외국인 투자 확대 등을 담은 176개 경제·사회 개혁조치를 발표했다. 생산과 투자, 가격 결정, 자원 배분 등을 국가가 통제해온 기존 경제 체제를 대폭 손질하는 내용이다.
마레로 총리는 국회 연설에서 시장을 “자원의 효율적 배분을 위한 도구”로 인정하며 생산 확대와 투자 활성화를 강조했다. 개혁안은 전날 공산당 임시 전원회의에서 승인된 뒤 국회에 상정됐으며, 약 2시간에 걸친 설명 끝에 만장일치로 통과됐다. 쿠바는 일당 독재 국가로, 공산당의 승인이 사실상 최종 승인과 같다. 구체적인 시행 일정과 세부 이행 방안은 추후 공개될 예정이다.
이번 조처로 쿠바는 60여년 간 유지해 온 국가 주도 계획경제를 버리고 시장이 주도하는 중국·베트남식 사회주의 모델로 전환할 것이라는 분석이 나온다. 런던에서 활동하는 쿠바 경제학자 다니엘 토랄바스는 아에프페(AFP) 통신에 “1959년 피델 카스트로 혁명 이후 가장 심오한 경제 개혁”이라고 평가했다.
우선 정부 조직과 지방 행정 체계의 대대적인 변화가 이뤄질 예정이다. 쿠바 정부는 기존 27개 부처를 21개로 통폐합하는 구조조정에 착수하고, 전국 168개 지방자치단체에 기업 승인과 수출입, 외환 관리 등에 대한 권한을 대폭 이양할 방침이다.
국영기업의 경영 자율성도 대폭 확대된다. 약 2천개 국영기업은 독자적인 임금 체계와 이윤 분배 권한을 갖고 상품을 직접 수입·수출하거나 민간기업·협동조합과 제휴할 수 있게 된다. 또 국영기업의 주식·지분 거래를 허용하고 금융·부동산 개발 분야까지 민간에 개방한다. 마레로 총리는 국가 감독 아래 민간 금융 시스템과 실시간 디지털 외환시장을 도입해 자본 이동을 활성화하겠다고 밝혔다. 민간 부문에 대한 규제도 완화된다. 민간기업은 직원 100명 이상을 고용할 수 있게 되며, 기업가들은 여러 개의 민간 기업을 동시에 소유할 수 있게 된다.

이외에도 1959년 쿠바 혁명 이후 유지돼 온 기본 배급제 보조금을 단계적으로 축소하고 가격 통제를 완화하기로 했다. 상품 보조금을 줄이고 취약계층에 대한 직접 지원을 확대하는 한편, 새로운 조세 체계를 도입해 공공·민간 부문이 공공서비스 재원을 분담하도록 했다. 쿠바는 그동안 무상 또는 저비용 교육·의료·교통 서비스를 제공해 왔지만, 최근 경제난과 비효율로 상당수가 사실상 붕괴 상태에 놓였다.
지난 17일 미겔 디아스카넬 대통령은 공산당 중앙위원회 임시 전원회의 폐막 연설에서 “현재 상황은 시급하고 필수적인 변화를 요구하고 있다”며 “국민의 삶이 이처럼 어려워진 상황에서 정부의 최우선 과제는 위기를 변명하는 것이 아니라 극복하는 것”이라고 말했다. 이어 “장애물은 외부나 (미국) 봉쇄에만 있지 않다”며 “비효율성과 관료주의, 미뤄왔던 결정들이 경제를 어렵게 하고 있다”고 말했다.
미국의 제재 강화로 쿠바의 전력·에너지·생필품 부족 사태는 갈수록 악화하고 있다. 특히 지난달 쿠바 군산복합체 ‘가에사’(GAESA)와 거래 기업들을 겨냥한 미국의 2차 제재 이후 호텔·금융 분야 외국 기업들의 철수가 이어지면서 경제 위기 우려가 커지고 있다.

윤연정 기자 yj2gaze@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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