필리핀 상원의장 교체…마르코스, 두테르테 탄핵 앞두고 판세 장악

페르디난드 마르코스 주니어 필리핀 대통령이 사라 두테르테 부통령 탄핵 심판을 앞두고 상원 의장을 자신의 친위세력(마르코스파)으로 교체하는 데 성공했다. 두테르테 부통령은 마르코스 대통령의 최대 정치적 라이벌이자 유력한 차기 대선주자다.
필리핀 상원은 17일(현지시간) 특별회의를 열고 신임 상원의장에 마르코스파인 셔윈 가찰리안 상원의원을 선출했다. 두테르테파 의원이 모두 불참한 가운데 마르코스파 상원의원 13명 전원이 가찰리안에 투표했다. 교체된 앨런 피터 카예타노 상원의장은 두테르테 부통령의 측근이었다. 필리핀 매체 인콰이어러에 따르면 대통령궁은 가찰리안 신임 의장에 축하를 전하면서 “상원이 주요 법안 처리에 집중해주기 바란다”고 밝혔다.
이번 교체는 마르코스 대통령이 두테르테 부통령 탄핵안 통과를 압박하는 국면에서 단행됐다. 필리핀 하원은 마르코스파가 장악했지만, 상원은 마르코스파 12명, 두테르테파 12명으로 팽팽한 대치 상태다. 그러나 캐스팅보트를 쥐고 있던 중립 성향 조엘 빌라누에바 상원의원이 “국가적 현안 속에서 국민이 바라는 것은 일하는 입법부”라며 마르코스파의 손을 들어주면서 상황이 급변했다. 그가 대형 부패 스캔들에 연루돼 조사를 받고 있다는 점에서 마르코스파와 ‘정치적 거래’를 한 것 아니냐는 시각도 있다.
마르코스와 두테르테 가문은 필리핀 정치를 양분해 온 최대 세력이다. 2022년 대선에서 일시적으로 손을 잡고 동맹 정권을 창출했으나, 지난해 3월 마르코스 대통령이 두테르테 부통령의 아버지 로드리고 두테르테 전 대통령의 국제형사재판소(ICC) 인도를 승인하면서 사이가 틀어졌다. 이후 마르코스 대통령이 두테르테 부통령 축출에 본격 나서며 양측 충돌은 전면전으로 치달았다.
마르코스 대통령은 상원 내 두테르테파 축출 작업도 착착 진행 중이다. 두테르테파 징고이 에스트라다 상원의원은 1일 발리누에바 의원과 같은 부패 스캔들에 연루돼 구속됐다. 로널드 델라 로사 상원의원은 지난달 13일 경찰청장 시절 반인도적 범죄를 저지른 혐의로 ICC가 발부한 체포영장을 피해 잠적한 상태다. 두테르테파가 잇따라 전열에서 이탈하면서 상원 구도는 마르코스파 13명 대 두테르테파 9명으로 재편됐다. 상원의 두테르테 부통령 탄핵안 심사는 7월 시작될 예정이다.
다만 상원이 두테르테 부통령을 당장 탄핵할 수 있는 것은 아니다. 필리핀 헌법상 부통령을 파면하려면 상원 3분의 2인 16명이 필요하다. 현재 확보한 13명 외에 최소 3명을 추가로 포섭해야 한다. 마르코스파가 상원의장까지 갈아치우며 독주를 감행했지만, 탄핵 전선이 교착될 경우 오히려 정치적 역풍을 맞을 수 있다는 전망도 나온다.
하노이= 정지용 특파원 cdragon25@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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