의대 진학 꿈꾸던 여대생…불가리 디자인 수장이 되다 [민은미의 명품 스토리텔러]
불가리 미학 만든 '루치아 실베스트리'
인도, 투산 누비며 원석 엄선해 로마서 디자인
예술과 끊임없는 교감…'에클레티카' 공개

인도 자이푸르(Jaipur)는 '유색 보석의 수도'라 불린다. 수많은 컬러와 이야기가 뒤섞인 자이푸르의 원석 시장에는 독특한 에너지와 활력이 흐른다. 서울과 밀라노의 하이 주얼리 이벤트 현장에서는 그 보석들이 눈부신 작품으로 완성돼 전 세계 컬렉터들의 감탄을 이끌어낸다. 원석과 하이 주얼리, 가능성과 완성 사이를 오가는 한 사람이 있다. 불가리의 주얼리 크리에이티브 & 젬 바잉 디렉터, 루치아 실베스트리(Lucia Silvestri)다.
그의 작업은 로마 아틀리에의 젬 테이블에서 시작된다. 세계 곳곳에서 찾아낸 원석들을 한자리에 펼쳐 놓고, 색과 빛 그리고 형태가 지닌 고유한 매력을 살핀다. 루치아는 보석 저마다의 개성을 읽어내고, 그것이 가장 아름답게 드러날 수 있는 형태를 찾아간다. 젬 바잉과 크리에이티브팀을 함께 이끄는 그녀는 하나의 원석을 불가리만의 이야기로 확장시킨다. 그의 시선이 머문 자리에서 불가리의 새로운 하이 주얼리 컬렉션 '에클레티카(Eclettica)'가 탄생했다.

불가리 가문이 다듬은 원석, 루치아 실베스트리
매체의 보도에 따르면 그는 18세까지만 해도 의대 진학을 목표로 생물학을 공부하던 평범한 여대생이었다. 하지만 불가리 하우스의 직원이었던 아버지를 통해 우연히 보석 보관소를 방문하면서 운명이 송두리째 바뀌었다. 지구의 시간과 자연이 빚어낸 원석들이 뿜어내는 신비로운 마법에 매료된 까닭이었다. 그는 과감히 의학 서적을 덮고 아버지가 일하던 불가리에 입사했다.
당시 하우스를 이끌던 불가리 가문의 3세대 형제들(파올로 불가리와 니콜라 불가리)은 어린 루치아의 남다른 재능을 알아봤다. 그들은 루치아를 곁에 두고 가문이 수십 년간 축적해 온 원석 감별법과 안목을 아낌없이 전수했다. 메종의 심장부에서 불가리 가문의 직계 제자로서 정통 헤리티지를 온전히 흡수하게 된 것이다.

특히 불가리 형제는 “돈에 휘둘려 스톤을 사지 마라. 네 눈앞에 있는 보석이 불가리의 DNA를 담아 세상에 단 하나뿐인 예술품으로 거듭날 수 있는 '잠재적 가치'를 지녔는가에 집중하라"고 조언했다. 그에 따라 루치아는 "완성될 주얼리의 미래가 머릿속에 그려지지 않으면 아무리 귀한 스톤이라도 사지 않는다"라는 철칙을 갖게 됐다.

젬 바잉에서 크리에이티브까지, 주얼리 하우스 유일의 이력
하우스의 신임을 바탕으로 루치아는 20대라는 젊은 나이에 불가리의 원석 구매를 총괄하며 전 세계 광산과 시장을 누비기 시작했다. 보석 거래(Gem Trading) 세계는 예나 지금이나 보수적이고 거친 남성 중심의 영역이다. 하지만 험준한 광산의 딜러들 사이에서 탁월한 스톤을 알아보고 협상을 주도해 낸 대담함은 그를 업계의 전설로 만들었다.
한편으론 창작적인 분야에서도 발군의 능력을 발휘했다. 그의 천재성은 종이 위에 스케치를 그리는 전통적인 방식이 아니었다. 전 세계에서 직접 공수해 온 원석들을 로마 본사의 '젬 테이블(Gem Table)' 위에 펼쳐놓고, 마치 퍼즐을 맞추듯 직접 손으로 배열하며 색채와 볼륨의 조화를 찾아내는 독창적인 방식이었다. 이 파격적인 작업 방식은 불가리 디자인의 정체성을 한층 더 대담하게 끌어올렸다.
루치아 실베스트리는 입사 30여 년 만인 지난 2013년에 불가리의 ‘주얼리 크리에이티브 디렉터’로 공식 임명됐다. 최고의 원석을 찾아내는 ‘젬 바잉 디렉터’와 이를 예술로 버무려내는 ‘주얼리 크리에이티브 디렉터’라는 두 개의 왕관을 동시에 쓰게 된 것이다.

“올바른 스톤을 보는 순간, 이미 꿈을 꿉니다”
루치아는 작년 다시 한번 인도의 자이푸르(Jaipur)로 향했다. ‘핑크 시티’라는 낭만적인 별칭을 가진 자이푸르는 루벨라이트, 에메랄드, 투어말린 등 다채로운 유색 보석을 수 세기에 걸쳐 다듬어온 세계 보석 마켓의 심장부다. 루치아는 이곳을 40회 이상 방문했다. 자연히 그에겐 영감의 성지였다. 루치아는 “올바른 스톤을 보는 순간, 이미 꿈을 꾸기 시작한다. 컬러에는 특별한 힘이 있어 아이디어를 떠올리게 하고 창작에 생명력을 더한다”라고 말한다.
루치아의 젬스톤 여정은 인도의 자이푸르를 넘어 콜롬비아의 에메랄드 산지, 스리랑카의 사파이어 시장, 잠비아, 태국, 세계 최대 원석 박람회가 열리는 미국 투산(Tucson) 등 전 세계 산지와 마켓으로 쉴 새 없이 이어진다. 그렇게 전 세계에서 엄선된 보석들은 곧장 로마 본사에 있는 그의 젬 테이블로 날아가, 불가리 하이 주얼리 컬렉션의 찬란한 씨앗이 되어왔다.

“젬스톤은 ‘착용할 수 있는 예술’로 완성됩니다”
그의 역작인 하이 주얼리 컬렉션 ‘에클레티카(Eclettica)’가 지난 5월 서울에서 베일을 벗었다. 이번 컬렉션은 예술과의 끊임없는 교감 속에서 회화, 조각, 건축이라는 각기 다른 세 가지의 축으로 구현되었다. 에클레틱(Eclectic)은 ‘절충적’이라는 의미다. 루치아 실베스트리는 “에클레티시즘은 하나의 스타일이 아닌 불가리의 창조 방식이며 다양성과 대비 속에서 새로운 아름다움이 탄생한다”라고 강조한다. “각각의 크리에이션은 다양한 요소가 이루는 대비와 조화를 통해, 마침내 몸에 착용할 수 있는 예술’로 완성된다”라고도 말한다.
‘회화’에서 영감받은 작품에는 캔버스처럼 과감하게 컬러를 매치시켰다. 대표적인 것이 ‘시크릿 가든 네크리스’다. 스리랑카산 26.65캐럿 핑크 오렌지 파파라차(Padparadscha) 사파이어에 에메랄드와 오닉스를 배치했다. ‘조각’은 대담한 볼륨감을 부각했다. ‘세르펜티 인피니아 하이 주얼리 브레이슬릿’은 현대 조각의 조형 언어에서 영감받아 뱀을 끝없는 빛의 스펙트럼으로 재해석했다. 뱀의 해부학적 구조를 따르는 7.49캐럿 유니크 컷 다이아몬드를 중심으로 각각의 스케일(비늘)이 입체적인 곡선과 움직임을 살리도록 정교하게 조각되었다.

‘에메랄드 스트라타 하이 주얼리 네크리스’는 ‘건축’에서 착안하여 기하학적인 미를 이식했다. 고대 로마의 코린트식 기둥을 크라바트(Cravat, 넥타이처럼 목에 두르는 남성용 스카프) 실루엣으로 재해석했다. 선별에만 1년이 걸린 5 피스의 잠비아산 슈가로프 컷 에메랄드를 중심으로, 층층이 이어지는 구조를 통해 건축적 수직성을 구현했다. 하나의 젬스톤에서 출발해 장인과의 긴밀한 협업 속에서 예술적 실험과 기술적 탁월함이 만나 불가리의 아츠맨십(Artsmanship)을 완성했다. 루치아 실베스트리는 이번 ‘에클레티카’를 통해 하이 주얼리의 가능성을 새롭게 정의했다.
Copyright © 한국경제.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 SK하닉, 시총 1위 넘보는데…삼전 바짝 추격하자 깜짝 전망 [종목+]
- "한국인 삼전닉스로 주식부자 됐다던데"…日 개미들 폭발 [도쿄나우]
- 취준생 몰리는 SK하닉의 '승부수'…삼성, 30년 먼저 없앴다
- "금값 오를수록 좋다"…범죄 조직들 '최애 자산' 된 이유는
- "공짜로 가져가세요"…양배추 밭 갈아엎고 나눔하는 이유 [프라이스&]
- "또 일본 갈 줄 알았는데"…5월 황금연휴 1위 여행지 어디?
- CIS, 첨단 정밀 장비로 日 배터리 업체도 홀렸다
- "한국에 최우선 공급하겠다"…중동 6개국 '깜짝 선언'
- "호텔서 커피 마셨더니…" 조회수 '300만' 대박 영상의 비밀 [현장+]
- "32만전자 간다"…삼성전자, 역대급 잭팟 예고에 주가 '들썩'