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활 속의 풍수지리] 노블레스 오블리주를 실천한 청주한씨

knnews 2026. 6. 19. 10: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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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주시는 경상남도 서남부에 위치한 시이다. 동쪽은 함안군·창원시, 남쪽은 고성군·사천시, 서쪽과 북쪽은 하동군·산청군·의령군과 접해 있다. 진주시는 임진왜란 때 진주목사 김시민이 3800여 명의 병력으로 3만 명 정도의 왜군을 물리쳐 대승을 거둔 임진왜란의 3대 대첩 중 하나인 진주성대첩과 LG가와 GS가를 비롯한 국내 굴지의 재벌들을 탄생시킨 승산마을이 있는 고장이다. 또한 명당에 자리한 숨은 고택들도 많은 곳이 진주시인데, 그중에서 연산군의 폭정을 피해 이반성면 평촌리 중도마을에 청주한씨 집성촌(세거지)이 있다. 중도마을에서 500년 넘게 거주한 청주한씨 집안은 근대 시기에 농업용 못 준설에 필요한 부지를 무상으로 제공하고, 학교를 세웠으며, 가난한 이웃을 돕는 등 지역을 위해 선행을 많이 베풀어 마을 주민들의 존경을 받았다. 그 업적을 칭송하기 위해 세운 송덕비가 마을 입구에 있다. 중도마을에서 청주한씨의 대표적인 고택으로 은헌고택(隱軒古宅)이 있다.

은헌고택은 1910년대에 지어진 조선 후기 지주 계층의 전통가옥으로, 건축적·학술적 가치를 인정받아 경상남도 문화유산자료로 지정됐다. 은헌고택은 은헌(隱軒) 한사원이 지어 그의 호를 따 당호를 은헌이라 했다고 알려졌지만, 종손의 말에 의하면 ‘한사원의 아들인 한우동이 건축해서 부친의 호를 당호로 했다’고 한다. 은헌고택은 주산(主山·뒷산)인 오봉산의 정기를 받았으며, 장안천이 고택 앞을 감싸면서 빠져나가는 전형적인 배산임수(背山臨水)의 지형을 갖췄다. 남향집인 고택은 앞쪽의 장안천과 고택 바로 뒤쪽을 감싸며 흐르다가 장안천에 합류하는 어석소류지에서 발원한 하천이 고택의 지맥(地脈·땅속의 생기가 흐르는 통로)을 정지시켜, 지기(地氣·땅기운)가 고택에 머물도록 했다. 이같이 물(하천)이 땅기운을 정지시킨 것을 ‘기계수즉지(氣界水則止·기는 물을 만나면 정지한다)’라 한다. 은헌고택은 좌청룡, 우백호와 더불어 안산(案山·앞산)을 잘 갖추고 있고, 우백호 너머에 있는 평촌저수지는 고택에서 볼 때 우백호에 가려 보이지 않지만, 고택을 감싸면서 수구(水口·기가 드나드는 출입구)를 좁혀 고택의 생기가 빠져나가는 것을 막고 있다. 평촌저수지와 같은 물을 암공수(暗拱水)라 하여 매우 귀하게 여기는데, 한우동이 만석꾼으로 되게 된 데는 고택 주변에 포진한 뛰어난 사격(沙格·산의 품격)은 물론이거니와 평촌저수지 또한 큰 몫을 했을 것으로 본다.

도로에서 마을로 진입하는 정수교를 지나면 바로 그 앞에 서 있는 꽤 큰 나무를 만나게 된다. 이 나무는 마을을 향해 들이닥치는 자동차 매연과 하천의 차가운 바람을 막기 위한 비보목(裨補木·허한 곳을 메우는 나무)이다. 마을과 하천 사이의 넓은 공간에는 여러 종류의 송덕비가 있으며, 송덕비 주변으로 다양한 나무를 심어 비보숲을 조성함으로써 외부의 살기(殺氣)로부터 마을을 보호하도록 했다. 구불구불하면서도 정겨운 고샅길은 세찬 바람을 흩어지게 하여 생기의 분산을 방지하고, 토석담은 집집마다의 내밀한 공간을 보호함과 동시에 흉한 기운이 집안으로 뻗치지 않도록 하고 있다. 고택 사랑채에는 ‘언제나 생각하고 스스로를 닦아나가는 집’이라는 뜻을 담은 염수재(念修齋)라 쓰인 현판이 걸려 있다.

유명 고택은 태어나는 산실인 안채에 생기가 응집한 곳과 사랑채에 생기가 충만한 곳으로 나눌 수 있다. 사랑채의 경우는 거주자가 살면서 뛰어난 업적을 이루게 된다. 그러나 대체로 고택의 뒷산에서 용맥이 내려와 안채에서 자리를 잡기에 탄생지인 안채의 터가 명당인 곳이 많다. 은헌고택은 고택 뒤쪽의 하천과 앞쪽의 장안천 사이로 강하고 힘찬 생기를 분출하는 용맥이 바로 뻗어 내려온 사랑채 중앙에 있는 방이 한사원의 아들인 만석꾼 한우동이 거주하던 곳이다. 한우동은 자신이 살았던 방이 사랑채의 여러 방 중에서 가장 생기가 충만한 곳임을 알았을까. 고택의 구성을 보면 중문채를 붙인 사랑채와 안채, 아래채, 곳간채의 4동으로 안채의 전면에 사랑채를 배치하고 좌·우측면에 아래채와 곳간채를 배치했다. 은헌고택은 모든 곳에서 생기가 은은하게 흐르고 있지만 사랑채의 한우동이 거처했던 방이 그중 으뜸이다.

주재민 (화산풍수지리연구소장)

(사주명리·수맥·작명연구원 055-297-3882)

(E-mail : ju4614@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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