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려인 증언 "내가 자란 곳이 한국인 줄 알았어요"
ㆍ"강제 이주 당한 고려인 1세대들의 생생한 증언"
ㆍ반찬가게 고려인,옛날얘기 요청에 '뼈저린 삶' 토로
ㆍ"한-중앙아시아 정상회담에서 '고려인' 정책 기대"
오는 9월 중순 제1차 한-중앙아시아 정상회의가 열린다. 이를 앞두고 주카자흐스탄 한국대사관과 주카자흐스탄 한국문화원은 이달 25~27일 알마티 공화국 궁전에서 '2026 한-카자흐스탄 문화·경제 교류 주간'을 개최한다.
이번 정상회담에서는 중앙아시아 특화 전략인 'K-실크로드 협력 구상'을 통해 이들 국가와의 우호와 협력을 다지고 32만 고려인 동포와도 동반자적 네트워크를 구축할 것으로 알려졌다. 이와 함께 차세대 교포의 언어·문화적 정체성 보존을 위한 한글 학교 지원 확대 등 문화적 의제도 거론될 전망이다.
역사상 처음인 중앙아시아 다자간 정상회의에 더없이 기뻐하는 인물이 있다. 중앙아시아 고려인 강제 이주 문제를 구술 채록으로 남겨 2000년 이후 정부의 고려인의 인도적 귀환과 정착을 도운 이복규 서경대 명예교수이다. 평생 설화 연구에 몸 바쳐온 이 교수를 16일 서울 새문안로 한 세미나실에서 만났다.

- 고려인 동포 문제에 애써온 분으로서 정상회담에 대한 기대가 크시겠습니다.
"내년이 고려인 강제 이주에 따른 정주(定住) 90주년입니다. 이러한 시점에 카자흐스탄·우즈베키스탄 등 중앙아시아 5개국 정상이 한국에서 한자리에 모여 처음으로 다자정상회의를 한다는 건 우리로선 놀라운 일이죠."
-1937년 스탈린 정권에 의해 단행된 고려인 동포들의 강제 이주 사실이 선생님의 구술 채록과 연구 논문 등으로 너무나 생생하게 알려졌습니다. 그 이전까지 소수의 증언에 의한 역사적 사실로 기록되었지만요.
"강제 이주는 소련 체제하에서 금기였습니다. 그런데 고르바초프의 개방 정책 이후 고려인 지식인들에 의해 기록되기 시작했죠. 1990년 한·소 수교 후 역사학계의 연구가 진행됐고요. 저는 그 강제 이주 17만 명, 즉 1세대들이 시련을 이겨내고 정체성을 잃지 않고 살아온 서사에 주목했습니다."
- 그것이 2012년 무렵 출간한 선생님의 저서 '중앙아시아 고려인의 생애담 연구'에 잘 나와 있습니다만, 구전설화 등을 연구하는 언어학자로서 어떻게 그 방대한 의제를 접하게 되셨습니까.
"2000년 방학을 맞아 꼭 현장을 방문하고 연구해 보고 싶은 과제가 있었어요. 고려인들을 만나 전승 설화를 듣는 거였죠. 1937년 원동(遠東·블라디보스토크 등 연해주를 지칭하는 당시 용어) 지역에 살다가 어느 날 강제 이주 당한 거니까요."
- 시대의 비극이긴 합니다만, 그들에겐 그야말로 우리 민속이나 민담의 원형이 그대로 남아 있었겠군요.
"그렇죠. 어렵게 고려인 운영 반찬가게 등에서 1세대들을 만나 마이크를 내밀고 옛날얘기를 듣고 싶다고 했어요. 섬에 고립되듯 그 먼 곳에서 수십 년을 살아온 사람들이잖아요. 전승되어 오는 신화, 전설, 민담 등 우리 문화의 원형이 훼손되지 않았겠다 싶었어요."

- 잘 얘기해 주시던가요.
"뜻밖의 얘기를 하시는 거예요. '옛날이야기'를 해달라고 한 거잖아요. 그런데 이분들은 자신들이 겪은 한 맺힌 이야기를 쏟아내는 겁니다. 강제 이주 당할 때 체험담과 기억을 끄집어낸 생애담이죠. 그런 그분들에게 마이크를 거둘 수 있겠습니까. 학자로서 부끄럽기도 하고 충격이 컸습니다. 이분들의 이야기를 어휘와 뉘앙스 그대로 편견 없이 담아야겠다 싶었어요. 그래서 그분들이 시련을 이겨내면서도, 우리의 세시 풍속이나 민간 신앙이 어떻게 유지되고 중앙아시아 문화와 버무려졌는지를 분석한 거죠."
- 고려말을 하는 현지 1세대의 육성 그대로를 텍스트로 살리신 셈입니다. 그때 구술 채록한 내용이 우리 사회에 충격을 줬죠. 국내 고려인 마을 조성 등 정책에도 영향을 미쳤고요.
"저는 수년 동안 그분들을 만나면서 원동에서의 삶, 강제 이주의 인지, 이주 열차의 구조와 생활, 도착 해서의 겨울나기, 도착지 현지인의 반응, 강제 이주 이후의 삶 등을 구술사적 관점에서 정리했어요. 그 창문도 없는 기차 안에서 아무것도 없이 먹고 자고…생존 그 자체죠. 들으면서도 같이 울지 않을 수 없었어요. 그리고 서울에 돌아와 논문, 강연 등 여러 형태로 전했어요. 당시 인터뷰에 응한 고려인 한 사람이 이런 얘길 했어요. '나는 어렸을 때 내가 살던 곳이 한국이란 나라인 줄 알았다'. 그 말이 잊혀지지 않습니다."
전정희 기자 oklaka@oknews.news