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공필 칼럼] 장(腸)의 목소리에 귀 기울여야 하는 이유
신경세포 수억 개 분포
면역세포 70% 점막 존재
식이섬유·발효식품 도움

문득 고기가 먹고 싶어지는 건 단순한 입맛의 문제가 아닐 수 있다. 우리 몸이 단백질 부족을 어떻게 알아차리는지를 밝혀낸 흥미로운 연구 결과가 최근 발표됐다. 서성배 기초과학연구원(IBS) 마이크로바이옴-장-뇌 축 연구단 연구진은 단백질이 부족해지면 장이 이를 감지해 뇌에 신호를 보내고 단백질이 풍부한 음식을 찾도록 행동을 유도한다는 사실을 규명했다. 연구 결과는 세계적 학술지 <사이언스>에 게재됐다.
연구진에 따르면 장 상피세포는 필수 아미노산 부족을 감지하면 장과 뇌를 연결하는 신경을 통해 30~60초 안에 뇌에 신호를 전달한다. 이후 호르몬이 혈액을 타고 뇌에 도달해 단백질 섭취 욕구를 일정 시간 유지시킨다. 반대로 당분에 대한 선호는 낮춘다. 무엇을 먹을지 결정하는 식욕조차 장이 적극적으로 관여한다는 의미다. 이 연구는 장이 단순한 소화기관이 아니라 우리 몸의 영양 상태를 감시하고 행동을 조절하는 중요한 기관임을 거듭 확인해 줬다.
제2의 뇌, 수억 개의 신경세포 존재
장은 오래전부터 제2의 뇌로 불려 왔다. 장에는 수억 개의 신경세포가 분포하는데 이는 척수에 존재하는 신경세포 수와 비슷한 수준이다. 이 신경망을 장신경계라고 부른다.
장은 음식물이 들어오면 영양 상태를 분석하고 장내 미생물 변화와 염증 여부를 감지하며 이 정보를 뇌에 전달한다. 반대로 뇌에서 발생하는 스트레스와 감정 상태 또한 곧장 장으로 전달된다. 긴장하면 배가 아프고 시험을 앞두면 설사를 하는 이유도 이 때문이다.
의학계가 주목하는 개념은 '장-뇌 축'이다. 장과 뇌가 신경·호르몬·면역체계를 통해 실시간으로 정보를 주고받는다는 이론이다. 장 건강은 정신 건강과도 밀접한 관련이 있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우울증이나 불안장애 환자에서 장내 미생물 구성이 달라져 있다는 연구가 잇따라 발표되고 있다.
면역세포 70%가 장에 존재
장은 면역체계와도 깊은 관련이 있다. 우리 몸 면역세포의 70%는 장 점막 주변에 존재한다. 장은 외부에서 들어온 음식물과 세균·바이러스에 가장 먼저 노출되는 기관이기 때문에 강력한 면역 방어체계를 갖춘 것으로 추정된다. 그래서 장을 면역력 컨트롤타워라 부르는 것도 과장이 아니다.
장 속에는 약 100조 마리의 미생물이 공존한다. 이를 통틀어 마이크로바이옴이라고 부른다. 마이크로바이옴은 단순히 소화를 돕는 수준을 넘어 면역세포를 교육하고 염증 반응을 조절하는 역할을 한다. 최근 연구에 따르면 장내 미생물 불균형은 비만·당뇨병·지방간·염증성 장질환은 물론 알레르기 질환·자가면역질환·치매·파킨슨병 등과도 연관성이 있는 것으로 보고되고 있다.
장내 미생물 환경 개선하려면
장 건강을 지키는 핵심은 결국 장내 미생물 생태계를 건강하게 유지하는 데 있다. 장 안에는 유익균과 유해균이 공존하고 있는데 유익균을 늘려 주는 것이 포인트다.
가장 중요한 방법은 식이섬유 섭취다. 식이섬유는 장내 유익균의 먹이가 된다. 채소·과일·해조류·콩류·통곡물 등을 꾸준히 섭취하면 유익균이 증가하고 염증을 억제하는 단쇄지방산 생성도 늘어난다. 김치·청국장·요구르트·케피어·낫토 같은 발효식품도 도움이 된다. 다만 특정 식품 하나가 장 건강을 획기적으로 개선하는 것은 아니다. 장내 미생물은 수백 종이 공존하는 복잡한 생태계이기 때문에 다양한 식품을 골고루 먹는 것이 중요하다.
필요할 경우 유산균(프로바이오틱스) 제제를 복용하는 것도 도움이 된다. 유산균은 우리나라의 대표적인 건강기능식품 중 하나로 자리 잡았다. 입안의 유산균 환경을 개선해 준다는 '구강 유산균'도 주목받고 있다. 하지만 유산균을 만병통치약처럼 생각하는 것은 곤란하다. 사람마다 장내 미생물 구성이 다르기 때문에 효과 역시 개인차가 크다.
만약 유산균을 섭취한다면 꾸준히 섭취해야 의미가 있다. 전문가들은 장내 환경 변화가 나타나기까지 최소 수주에서 수개월 정도의 시간이 필요하다고 설명한다. 일부 사람은 복부 팽만감이나 설사 등을 경험할 수도 있다.
마음 편해야 장도 건강하다
규칙적인 운동과 충분한 수면은 장 운동을 활성화하고 장내 미생물 다양성을 높이는 데 도움을 준다. 최근 연구에서는 걷기와 같은 유산소 운동만으로도 장내 유익균이 증가할 수 있다는 결과가 보고되고 있다. 스트레스 관리도 중요하다. 장은 자율신경의 영향을 크게 받는다. 기분이 좋을 때 소화가 잘되고 스트레스를 받으면 배가 아픈 것도 이 때문이다.
결국 장 건강은 특별한 비법이 아니라 균형 잡힌 식사·적절한 운동·충분한 수면·스트레스 관리라는 기본으로 돌아간다. 장은 단순히 음식물을 소화하는 기관이 아니다. 뇌와 대화하고 면역을 조절하며 우리 몸 전체 건강을 관리하는 '건강 관제탑'이다. 건강하게 오래 살고 싶다면 장의 목소리에 귀를 기울여야 하는 이유다.
☞마이크로바이옴=인체에 서식하는 미생물과 그 유전 정보를 총칭하는 말로, 우리 몸의 대사와 면역 조절에 핵심적인 역할을 하는 미생물 생태계를 의미한다.
☞단쇄지방산=장내 미생물이 식이섬유를 발효시킬 때 생성되는 물질로, 장 점막을 튼튼하게 하고 면역력을 높이며 염증을 줄이는 데 도움을 준다.
☞장-뇌 축=장과 뇌가 신경계, 면역계, 내분비계를 통해 서로 긴밀하게 연결되어 실시간으로 정보를 주고받으며 상호 작용한다는 이론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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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성경제신문 김공필 의학저널리스트
kpkim62@gmail.com

김공필 의학저널리스트
연세대학교 정치외교학과를 졸업했고, 조선일보 출판국 기자, 조선일보 행복플러스 섹션 편집장, 월간 <헬스조선> 편집장, ㈜헬스조선 취재본부장을 지냈다. 현재 의학저널리스트로 활동 중이며 이시형ㆍ윤방부 박사의 대담책 <평생현역으로 건강하게 사는 법>을 집필했고 건강 단행본 <글로벌 K명의는 이렇게 병을 다스립니다>를 펴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