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트럼프 스톡커] 韓·대만이 훔친 기술로 美파운드리를 키운다니
트럼프 “인텔, 애플과 협력...대만이 기술 훔쳐”
정부 대주주, 인공지능 CPU에 주가 263% ↑
파운드리 산업은 美 AI 생태계 최대 취약 부문
TSMC가 사실상 시장 창출...‘수요 폭발’ 기회
‘테라팹’도 참여...칩 패권 부활 상징될지 주목

최대주주인 도널드 트럼프 행정부의 전폭적인 지원에 힘입어 인텔이 파운드리(반도체 위탁생산) 사업 재건에 속도를 붙이고 있다. 미국 정부는 인텔을 지렛대로 인공지능(AI) 생태계에서 유독 취약한 부문인 파운드리 공급망까지 본토를 중심으로 구축하겠다는 구상이다. 이는 일론 머스크 테슬라 최고경영자(CEO)의 AI 반도체 생산 프로젝트 ‘테라팹(초대형 반도체 생산시설)’, 인텔과 애플 간 협력 등으로 조금씩 구체화되는 분위기다. 인텔은 특히 최근 AI 중앙처리장치(CPU) 수익 증가를 바탕으로 파운드리 기술 추격에 박차를 가한다는 복안이다. 다만 글로벌 파운드리 시장은 대만의 TSMC가 워낙 강력하게 장악하고 있는 데다, 삼성전자(005930) 정도를 제외하면 의미 있는 점유율을 확보한 업체가 없어 후발주자인 인텔이 발을 들이기 쉽지 않다는 평가도 나온다. 메모리반도체, 팹리스(반도체 설계) 등 다른 분야와 달리 파운드리는 미국이 과거 패권을 쥔 적도 없는 분야이기에 인텔의 승부수를 좀 더 지켜봐야 한다는 의견에 힘이 실린다.

이날 뉴욕 증시를 이끈 것은 반도체주였다. 대장주인 엔비디아가 3.09% 오른 것을 비롯해 브로드컴(4.86%), 마벨 테크놀로지(7.31%), 램리서치(4.05%), 어플라이드머터리얼즈(4.24%), 마이크론(8.82%), 웨스턴디지털(4.92%), 샌디스크(11.78%) 등이 줄줄이 올랐다. 필라델피아반도체지수도 6.42% 수직 상승했다.
미국 반도체주들이 동반 강세를 보인 데에는 인텔에 대한 트럼프 대통령의 한 마디가 큰 힘이 됐다. 트럼프 대통령은 이날 자신의 소셜네트워크서비스(SNS)인 트루스소셜에 글을 올리고 “애플이 미국 내에서 칩을 설계하고 생산하기 위해 인텔과 협력하기로 합의했다”고 밝혔다. 앞서 월스트리트저널(WSJ)도 지난달 애플이 자체 설계 칩의 생산 일부를 인텔에 맡기기로 합의했다고 보도한 바 있다.
트럼프 대통령은 “우리 모두 ‘인텔 인사이드’를 기억하듯이 세계가 의존하는 기술은 미국에서 발명됐다”며 “어리석은 대통령들이 우리 경제를 당연하게 여겼고 대만과 다른 나라들이 우리 반도체 공장을 훔쳐 가도록 내버려 뒀다”고 지적했다. 이어 “그들은 관세로 우리 산업을 보호해야 한다는 사실을 잊었다”며 “내가 두 번째 임기를 쟁취했을 때 미국이 반도체 산업을 다시 가져와야 한다는 점은 명백했고 이제 여기서 칩을 생산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인텔 인사이드는 인텔이 1991년부터 전개한 역사상 가장 성공적인 글로벌 브랜드 마케팅 캠페인이다. 소비자가 눈으로 볼 수 없는 컴퓨터 내부 부품 CPU를 하나의 브랜드로 만들어 ‘인텔 인사이드 표식이 붙은 PC는 믿고 사도 된다’는 인식을 전 세계에 심었다.
트럼프 대통령은 정부가 지난해 8월 조 바이든 전 행정부가 지급하기로 약속한 연방 보조금 약 90억 달러(약 13조 5000억 원)를 활용해 경영난에 빠진 인텔의 지분 10%를 사들여 최대주주에 오른 일도 거론했다. 트럼프 대통령은 “우리가 제안했을 때 인텔의 가치는 1000억 달러(약 150조 원)였는데, 단 9개월 만에 가치가 5000억 달러 이상 늘어 지금은 6000억 달러(약 900조 원)가 넘는다”며 엔비디아와 테슬라가 데이터센터용 CPU 생산, 테라팹 건설을 위해 인텔과 협업하기로 했다는 내용도 다시 소개했다. 미국 반도체 부흥을 꾀하겠다는 트럼프 대통령의 발언에 인텔은 10.76%나 솟구쳤다. 인텔의 이날 기준 시가총액은 6741억 달러다.

인텔은 그러다 후발주자로 뛰어든 일본 기업들의 저가 공세를 이기지 못하고 1985년 메모리반도체 사업에서는 결국 철수했다. 앤디 그로브 당시 CEO는 메모리반도체를 포기하는 대신 PC용 CPU 사업에 집중하는 전략을 꺼내들었고, 이는 인텔에 신의 한 수가 됐다.
50년 가까이 CPU 시장을 지배하던 인텔은 모바일 시대를 맞아 위기를 맞았다. 이어 AI 시대가 대두하면서 시장을 엔비디아의 그래픽처리장치(GPU)에 대거 넘겼다. 2023년 1분기 약 28억 달러라는 사상 최악의 적자를 본 인텔은 2024년과 지난해 내리 순손실을 기록했다. 2년 동안 전 직원의 약 20%에 육박하는 2만 명가량을 해고했다. 회사의 구원투수로 등판한 립부 탄 CEO는 지난해 8월 트럼프 대통령과 만나 지분 매입을 제안했고, 그 뒤 인텔은 간신히 산소 호흡기를 달았다.
인텔은 AI 시장이 에이전트(업무 도우미) 중심으로 재편되면서 전통적인 주력 제품인 CPU 수요 확대 효과를 톡톡히 봤다. 이에 힘입어 인텔은 4월 23일 장 마감 후 시장 기대를 웃도는 1분기 실적을 내놓으며 월가를 깜짝 놀라게 했다. 인텔은 1분기 매출이 136억 달러(약 20조 1000억 원)로 지난해 같은 기간보다 7% 증가했다고 발표했다. 4월 1일에는 아일랜드의 반도체 제조공장 관련 합작법인(JV) 지분을 2년 만에 재매입하는 결정을 내리기도 했다. 해당 합작법인은 팹34에서 생산하는 반도체 웨이퍼의 권리를 갖는 회사다. 팹34는 인텔의 주요 CPU 제품군인 ‘인텔 코어 울트라’와 ‘인텔 제온6’ 등의 공정으로 제품을 생산하는 핵심 시설로 꼽힌다. 각종 호재로 인텔의 주가는 지난해 말 36.90달러에서 18일 133.99달러로 무려 263.12%나 급등했다.
관건은 파운드리다. 인텔은 2012년 파운드리 사업에 진출한 뒤 막대한 투자를 쏟았지만 사업 부진으로 6년 만에 철수했다. 이후 2021년 사업 재진출을 선언했지만 경쟁사들과의 격차는 이미 너무 많이 벌어졌다. 시장조사 업체 트렌드포스에 따르면 파운드리 시장의 지난해 연간 시장 점유율은 TSMC가 69.9%, 삼성전자가 7.2%다. 인텔은 세계 10위권에도 못 들 정도로 존재감이 없는 상태다.

인텔은 이 같은 격차를 기술 개발로 단숨에 따라잡겠다는 복안이다. 당장은 AI 칩에 대한 수요 폭발로 TSMC의 생산에 병목 현상이 발생한 점을 기회 요인으로 삼고 있다.
실제 인텔은 지난해 12월부터 애리조나 공장에서 ‘18A(1.8㎚(나노미터·10억분의 1m))’ 공정을 시작했다. 인텔은 이어 이달 16일 하와이 호놀룰루에서 열린 반도체 전문학회 VLSI 심포지엄에서 ‘18A-P’ 공정 기술도 시범 생산을 시작했다고 발표했다. 18A-P는 18A를 개량한 기술이다. 인텔은 이 기술이 18A보다 9% 더 나은 성능을 내거나, 동일 기준에서 전력을 9% 덜 쓴다고 설명했다. 또 18A 공정 생산 설비와도 완전히 호환된다고 덧붙였다. 나가 찬드라세카란 인텔 파운드리 부문 책임자는 성명에서 “이번 개발 성과는 인텔 파운드리가 고객사와 협력사들에 장기적인 최첨단 공정 혁신에 전념하겠다는 의지를 보여주는 신호”라고 말했다.
물론, 인텔은 아직 18A와 관련한 주요 고객사를 확보하지는 못한 상태다. 90% 이상의 수율을 달성할 때까지는 시간이 더 걸릴 전망이다. 인텔 파운드리 사업부는 지난달부터 한승훈(숀 한) 삼성전자 부사장을 수석부사장 겸 총괄 매니저로 영입하기도 했다.
IT 전문매체 디인포메이션은 지난 8일 구글이 오는 2028년 자체 개발 칩인 텐서처리장치(TPU) 300만 개 이상을 인텔 파운드리에 맡길 것이라고 보도하기도 했다. TSMC의 생산 시설이 요청 수량을 따라가지 못하자 인텔이 낙수 효과를 누리게 됐다는 내용이었다. 디인포메이션은 또 엔비디아 역시 4개의 GPU를 하나로 묶는 형태의 차세대 프로세서를 만드는 데 인텔의 기술을 사용할 수 있는지 시험하고 있다고 전했다. 이 소식에 인텔의 주가는 당일 11.19% 치솟았다.
일본 니혼게이자이신문에 따르면 탄 CEO는 5일 도쿠나가 도시아키 히타치 사장과 피지컬 AI(AI와 물리적 세계를 결합한 기술)의 분야에서도 협력하기로 약속했다. 히타치가 인텔 반도체 공장의 제조 장비 데이터를 자체 AI로 분석해 정비 업무를 효율화한다는 구상이다. 이를 통해 반도체 생산 수율을 높이고 생산 기간을 단축하겠다는 게 협력의 핵심 목표다. 궁극적으로는 TSMC와 삼성전자에 대한 추격 속도를 높이기 위한 방편이기도 하다. 인텔은 파운드리와는 별도로 4일 세계 최대 전자제품 위탁생산업체 대만 폭스콘(훙하이정밀공업)과도 손잡고 차세대 AI 인프라(기반시설)와 지능형 컴퓨팅(연산 능력) 플랫폼을 공동 개발하기로 했다.

인텔은 당시 “초고성능 반도체를 대규모로 설계·제조하는 인텔의 역량이 연간 1TW(테라와트)의 연산 능력을 생산해 AI와 로봇 공학의 발전을 뒷받침하는 목표를 가속화하는 데 이바지할 것”이라고 강조했다. 탄 CEO도 자신의 X 계정에 글을 올리고 “머스크 CEO는 산업 전반을 새롭게 구상하는 검증된 실적을 보유하고 있고 이는 오늘날 반도체 제조에 필요한 것”이라며 “테라팹은 앞으로 실리콘 로직·메모리·패키징이 제조되는 방식에 큰 변화를 가져올 것”이라고 기대했다.
테라팹은 머스크 CEO가 AI와 로봇공학, 우주 데이터센터 등에 사용될 자체 반도체를 생산하기 위해 추진하는 초대형 반도체 생산기지다. 머스크 CEO는 그간 반도체 생산량이 자사 수요에 미치지 못한다며 테라팹 생산의 필요성을 수차례 역설했다. 3월에는 텍사스주 오스틴에 첨단 기술 팹부터 건설하겠다고 발표했다. 머스크 CEO가 구상하는 테라팹은 TSMC에 필적하는 규모가 될 것으로 추정된다. 현재 테슬라의 AI 칩은 삼성전자와 TSMC 등이 나눠 생산하고 있다.
탄 CEO는 이달 2일 대만 타이베이에서 열린 아시아 최대 IT 박람회 ‘컴퓨텍스’ 기조연설에서 “AI 에이전트의 발전에 따라 새로운 시스템 아키텍처(설계 구도)가 필요하다”며 “최근 4주 동안 매우 많은 CEO가 직접 내게 전화해 더 많은 CPU를 확보하길 희망했다”고 밝혔다. 탄 CEO는 그러면서 “앞으로 경쟁이 단일 칩의 성능이 아니라 전체 AI 생태계를 둘러싸고 전개될 것”이라며 “올해는 인텔에 전환의 해이고, 완전히 새로운 회사를 만드는 작업은 이제 겨우 시작”이라고 강조했다.
인텔이 CPU의 부활을 토대로 글로벌 파운드리 시장에서도 존재감을 드러낼지는 아직 불확실하다. 일단은 애플, 엔비디아, 테슬라, 구글 등 인텔에 손을 내민 회사 대다수가 미국의 거대 기술기업(빅테크)이라는 점에 주목할 만하다. AI 반도체 생태계를 미국 중심으로 완전히 재구성하겠다는 트럼프 대통령의 야욕이 인텔을 통해 부각되고 있다.

뉴욕=윤경환 특파원 ykh22@sedaily.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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