HD현대중공업, 한화오션에 이기고도 졌다…KDDX 승패 가른 ‘1.2점 감점’
[비즈니스 포커스]

7조8000억원 규모 한국형 차기 구축함(KDDX) 사업은 한화오션의 승리로 끝났다. 그러나 기술평가에서는 HD현대중공업이 앞섰다. 최종 승패를 가른 것은 함정 설계 역량이 아니라 1.2점의 보안 감점이었다.
방위사업청 제안서 평가 결과 양사의 최종 점수 차는 0.5867점에 불과했다. HD현대중공업은 기술 분야에서 우위를 기록했지만 감점이 적용되면서 순위가 뒤집혔다.
2년 넘게 이어진 국내 최대 해양방산 수주전은 일단락됐지만 업계 관심은 승자보다 평가 과정에 쏠린다. 기술 경쟁으로 결론 나야 할 사업이 보안 감점과 행정 절차 논란으로 귀결됐기 때문이다.
7.8조 수주전, 기술 아닌 감점이 갈랐다
KDDX 수주전은 국내 특수선 시장 양강인 HD현대중공업과 한화오션의 자존심 대결로 불렸다. HD현대중공업은 기본설계를 수행한 경험을 바탕으로 기술평가에서 우위를 확보했다.
반면 최종 결과는 달랐다. 과거 군사기밀 유출 사건에 따른 보안 감점이 적용되면서 순위가 역전됐다. 함정 사업은 통상 소수점 단위 점수 차로 승부가 갈린다. 이번 역시 1점도 채 되지 않는 점수 차가 승패를 갈랐다.
최기일 상지대 군사학과 교수 겸 한국방위산업연구소장은 “기술평가가 사업자 선정의 핵심 요소가 돼야 하는데 결과적으로 보안 감점이 당락을 결정한 상황이 됐다”며 “제도적으로 보완이 필요한 부분”이라고 말했다.
물론 HD현대중공업이 보안 감점 자체를 문제 삼기는 어렵다는 지적도 나온다. 감점의 원인이 된 군사기밀 유출 사건이 실제 발생했고 법원 역시 관련 쟁점을 이미 판단한 바 있기 때문이다. 법조계와 방산업계에서는 우선협상대상자 선정 결과가 뒤집힐 가능성은 높지 않다는 관측이 우세하다.

가처분 기각 이후…절차적 하자 논란 불씨
HD현대중공업은 앞서 보안 감점 적용을 둘러싸고 효력정지 가처분을 신청했지만 받아들여지지 않았다.
최 교수는 추가 소송 가능성에 대해 신중한 입장을 보였다. 그는 “이미 보안 감점과 관련한 주요 쟁점은 법원 판단을 거쳤다”며 “제안서 평가 결과가 나온 이후 사업 방향 자체를 뒤집을 정도의 법리적 가능성은 극히 낮다”고 말했다. 방위사업청이 디브리핑이나 민원을 이유로 사업자를 번복한 전례가 사실상 없다는 점도 현실적 제약으로 꼽힌다.
다만 일각에서는 국가계약법에 따른 보안 감점 적용 과정의 절차 문제가 향후 새로운 쟁점으로 부상할 가능성을 제기한다. 업계에 따르면 방위사업청은 보안 감점 적용 기간을 연장하는 과정에서 관련 내용을 HD현대중공업 측에 별도로 통보하지 않았다는 주장이 제기되고 있다.
국가계약법은 절차적 적법성을 중시하는 법체계다. 행정처분 과정에서 고지나 통보 절차가 적절하게 이뤄졌는지가 향후 법적 다툼의 대상이 될 수 있다고 분석한다.
최 교수는 “감점 연장 과정에서 당사자 통보가 이뤄지지 않았다면 향후 절차적 하자를 둘러싼 논란이 발생할 수 있다”며 “다만 실제 소송으로 이어지더라도 사업 결과 자체를 바꾸기는 쉽지 않을 것”이라고 말했다.
HD현대중공업 입장에서도 추가 법적 대응은 부담이 적지 않다. 사업 지연으로 이어질 경우 해군 전력화 일정 차질과 안보 공백 논란이 불거질 수 있어서다. 전력 누수에 따른 안보 공백 상황은 정부와 방산업계, 시장으로부터 도덕적 해이(모럴 해저드)라는 비판을 자초할 수 있어 기업 입장에서도 쉽게 선택하기 어려운 카드라는 관측이 나온다.
업계 일각에서는 HD현대중공업이 법적 대응의 끈을 완전히 놓지 않는 배경에 향후 사업을 고려한 전략적 판단도 깔려 있다고 본다. 당장 KDDX 선도함 사업 결과를 뒤집기는 쉽지 않더라도 보안 감점 기준과 사업자 선정 절차를 둘러싼 문제를 지속적으로 제기함으로써 향후 후속함 건조 사업이나 차기 수상함 사업에서 제도 개선 논의를 이끌어내려는 의도라는 해석이다.
업계 관계자는 “실제 승소 여부와 별개로 회사 입장에서는 기술평가 우위를 시장에 계속 각인시킬 필요가 있다”며 “수조 원 규모 사업에서 아무 대응 없이 물러났다는 평가를 피하려는 측면도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HD현대·한화, 왜 KDDX에 사활 걸었나
KDDX는 단순한 구축함 건조 사업이 아니다. 총 6척 규모의 차세대 구축함 사업으로 국내 해군 전력 현대화의 핵심 프로젝트로 꼽힌다. 선체부터 전투체계, 각종 센서와 무장체계 통합 기술이 집약되는 사업인 만큼 국내 해양방산 기술력을 가늠하는 시험대로도 평가받는다.
업계가 KDDX 결과에 민감하게 반응하는 이유도 여기에 있다. 상세설계와 선도함 건조를 수행하는 업체는 향후 함정 건조 과정에서 핵심 통합 역량을 축적하게 된다. 선도함 1척 수주 이상의 의미가 있다. 향후 국내 수상함 사업과 해외 함정 수주전에서 활용할 수 있는 실적과 경험을 확보하는 셈이다.
KDDX 사업은 시작 단계부터 국내 대표 특수선 업체 간 경쟁 구도가 형성됐다. 개념설계는 대우조선해양(현 한화오션)이 수행했고 이후 기본설계는 HD현대중공업이 맡았다. 업계에서는 사업 연속성과 기술 축적 측면에서 양사 모두 쉽게 물러설 수 없는 구조였다고 평가한다.
결국 사업자 선정 방식을 둘러싼 갈등이 장기화되면서 당초 계획보다 사업 일정도 크게 늦어졌다. 방산업계에서는 이번 수주전이 단순한 계약 경쟁을 넘어 국내 해양방산 주도권 경쟁의 성격까지 띠게 되면서 갈등이 더욱 증폭됐다는 분석을 내놓고 있다.
2년간 갈등의 골 깊어진 빅2…정부는 무엇을 했나
업계에서는 사업이 2년 넘게 표류한 배경으로 방위사업청의 판단 지연을 지목한다. KDDX 사업은 공동수급 방식과 경쟁입찰 방식, 수의계약 방식 등을 놓고 장기간 결론을 내리지 못했다. 그사이 양사 갈등은 법정 공방으로 번졌고 사업 일정도 2년 넘게 지연됐다.
특히 국내 해양방산 시장은 HD현대중공업과 한화오션 두 업체가 사실상 경쟁하는 과점 구조다. 업계에서는 정부가 보다 적극적으로 중재와 조정에 나설 수 있었던 것 아니냐는 지적이 나온다.
최 교수는 “이번 사태는 시장의 실패라기보다 정부의 실패에 가깝다”며 “사업자 선정 방식을 조기에 결정하고 추진했다면 2년 가까운 지연을 막을 수 있었을 것”이라고 말했다. 이어 “결국 방위사업청의 역할과 기능에 한계가 드러난 사례”라고 덧붙였다.
승자는 정해졌지만 남은 후유증
문제는 KDDX가 단순한 국내 사업에 그치지 않는다는 점이다. 해양방산 분야는 자국 해군 납품 실적이 해외 수주 경쟁력으로 이어진다.
국내 사업에서 확보한 설계·건조 경험은 향후 해외 구축함과 잠수함 사업 수주 과정에서 중요한 이력으로 활용된다. 수년간 이어진 법정 공방으로 양사 간 감정의 골도 깊어졌다.
업계에서는 캐나다 잠수함 사업 등 대형 해외 프로젝트가 추진되는 상황에서 국내 갈등이 수출 경쟁력 약화로 이어질 수 있다는 우려를 내놓는다.
조선업계 관계자는 “국내 시장 경쟁은 끝날 수 있어도 양사 관계가 예전으로 돌아가기는 쉽지 않을 것”이라며 “해외 사업에서까지 갈등이 이어진다면 결국 K-해양방산 전체에 부담이 될 수밖에 없다”고 말했다.
최 교수는 “아무에게도 책임을 묻지 않고 누구도 책임지지 않는 구조가 유지된다면 제2, 제3의 KDDX 사태가 반복될 수밖에 없다”며 “이번 사태를 계기로 대형 방산 사업의 분쟁 조정 체계와 사업 추진 방식 전반을 점검할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안옥희 기자 ahnoh05@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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