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삶은 어쩌면 살아남은 자가 밀고 가는 관성에 불과할지도"

(서울=뉴스1) 박정환 문화전문기자 = '소년은 바다처럼 운다'는 불안과 허무 속에서도 끝내 살아가야 하는 이유를 친구의 부재와 함께 파고든다. 저자 임세병은 4막 4장 구성 속에 에세이, 소설, 시, 그림을 겹쳐 놓으며 파리와 코르시카를 오간 시간, 현수의 부재, 살아남은 자의 관성을 한 흐름으로 묶는다.
삶이 육지보다 바다에 가깝다는 감각은 이 책의 출발점이자 끝까지 이어지는 비유다. 출렁임은 불안과 후회, 좌절을 뜻하지만 동시에 앞으로 밀어내는 힘이기도 하다. 책은 그 파도를 버텨내는 일과 그 파도에 몸을 맡기는 일을 함께 묻는다.
살아남은 자의 시간과 친구의 부재
이야기의 중심은 먼저 세상을 떠난 친구 현수다. 삶을 망설이는 순간마다 들려오는 "그만 일어나. 살아 있는 쪽으로 돌아와야지"라는 목소리는 단순한 회상이 아니라 서사의 추진력으로 놓인다. 살아남은 사람의 시간이 어떻게 죄책감과 애도의 시간을 함께 품는지 이 대목에서 드러난다.
현수는 물의 세계로 떠난 인물로 남지만, 부재의 자리에서 오히려 더 자주 호출된다. 저자는 그를 그리움의 대상으로만 두지 않고 지금의 삶을 밀어붙이게 하는 존재로 세운다. 상실을 견디는 방식이 과거를 붙드는 일이 아니라 현재를 계속 통과하는 일이라는 뜻이다.
그래서 후반부의 문장들은 추모를 넘어 다짐에 가깝다. "억지로, 무심히, 때로는 기꺼이, 더디게"라는 표현은 결연한 선언보다 흔들리는 지속에 가까운 말이다. 이 책이 비극의 정리보다 남겨진 삶의 리듬을 붙드는 쪽으로 기울어 있는 이유도 여기에 있다.
에세이와 소설, 시와 그림을 겹친 구성
형식은 4막 4장으로 짜였다. 1막 '살아 있는 쪽으로'에서 질문과 흔들림을 열고, 3막 '그 파도 속에 무엇이 있었는지'를 지나 4막에서 돌아봄과 다짐으로 나아간다. 막과 장을 따라 움직이는 방식은 산문집의 느슨한 묶음보다 장면 전환이 분명한 연극 구조에 가깝다.
한 권 안에 에세이, 소설, 시, 그림이 교차하는 점도 눈에 띈다. 한 문단에서는 회상의 산문이 이어지고, 다른 대목에서는 시에 가까운 호흡이 등장한다. 이미지와 문장이 번갈아 전면에 서면서 한 가지 문체로 감정을 밀어붙이지 않는다.
목차를 채운 제목들도 이런 결을 뒷받침한다. '파도의 파동', '무인 대륙', '윤슬로 모이는 곳', '시인과 화가의 대화', '노랑 계피' 같은 장면들은 설명보다 감각을 먼저 세운다. 추상어만 남기기보다 파리의 계절, 바다의 표면, 사물의 촉감 같은 구체적 이미지로 문제의식을 고정하려는 방식이다.

파리와 코르시카, 사물과 장면의 기록
공간은 파리와 코르시카 사이를 오간다. 이국의 풍경을 전면에 세우기보다 그곳에서 맞닥뜨린 고독과 이동의 감각이 더 중요하게 다뤄진다. 서울을 떠난 뒤 다른 도시를 지나는 시간은 낭만의 배경이 아니라 삶의 기울기를 확인하는 자리로 놓인다.
책속 문장에 자주 등장하는 파도, 햇빛, 소금물, 가스등, 계피 같은 사물은 감정을 직접 설명하는 대신 우회해 붙잡는 장치로 쓰인다. 상처를 곰팡이 핀 이불에 비유하거나, 눈물이 바다를 이룰 때 파도가 태어난다고 적는 대목은 감정의 원인을 길게 해설하지 않는다. 구체적인 사물 하나가 서사의 온도를 대신 끌어올린다.
질문도 반복한다. "왜 우리는 언제나 살아남아야 하지"라는 물음은 생존 의지를 찬양하는 방향으로 흘러가지 않는다. 버텨야 한다는 명령과 떠나고 싶다는 충동이 동시에 존재한다는 사실을 그대로 드러내며, 책은 그 사이를 오가는 마음의 진폭을 좇는다.
이 책이 붙드는 건 상실을 극복하는 법이 아니라 상실 이후에도 계속되는 시간이다. 친구에게 보내는 편지이자 자기 자신을 흔드는 독백의 형식을 취하면서, 남겨진 사람이 어떤 속도로 다시 살아갈 수 있는지 묻는다. 책장을 덮고 나면 거창한 해답을 얻는 것도 아니다. 오히려 불완전하고 더딘 삶을 끝내 밀고 가야 한다는 감각, 그리고 그 움직임이 누군가를 잊지 않는 방식일 수 있다는 인식을 마주한다.
임세병은 부여에서 태어나 인천에서 자랐고 서울과 베르사유를 거쳐 파리와 코르시카 사이에 머물고 있다. 프랑스 베르사유시립미술학교에서 회화와 판화를 전공했고, 그림과 글을 함께 다뤄왔다.
△ '소년은 바다처럼 운다'/ 임세병 지음/ 304쪽
art@news1.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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