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커상 양솽쯔 작가가 그 시대에 천착하는 이유

일본 제국의 촉망받는 여성 작가 아오야마 치즈코는 찹쌀경단을 한 번에 네 개씩 먹어 치우는 대식가이자 미식가다. 그렇게 많이 먹으면 어떻게 하느냐는 가족의 핀잔에도 개의치 않는다. 어느 날 자신의 소설을 원작으로 한 영화 〈청춘기〉가 개봉하면서 그는 타이완의 초청을 받아 여행길에 오른다. 타이완 음식을 다 먹어볼 생각에 들뜬 마음으로 도착한 그곳에서 매력적이고 박식하며 요리 솜씨까지 뛰어난 타이완 통역사 왕첸허를 만난다. 두 여성은 타이완 곳곳을 여행하며 길거리 음식부터 연회 요리까지 갖가지 미식을 경험한다. 치즈코는 왕첸허에게 점점 마음을 빼앗기지만 왕첸허는 무엇 때문인지 계속해서 그와 거리를 둔다.
얼핏 보면 소설 〈1938 타이완 여행기〉는 미식과 여행에 관한 작품이다. 쌀국수 간식 비타이박, 돼지고기 조림 러우싸오, 황마로 끓인 무아인텅 등 다양한 타이완 음식에 대한 묘사가 끝없이 이어진다. 하지만 정말 전하고 싶은 메시지는 좀 더 심오하다. 그 힌트가 소설 제일 처음에 나온다. ‘이 소설은 제가 타이완이라는 섬에 보내는 러브레터입니다. 저는 이 타이완의 이야기를 통해 전 세계가 이해하기를 바랍니다. 타이완 사람은 일본 사람도 아니고 중국 사람도 아니라는 것을요.’ 지난 5월19일 양솽쯔 작가는 〈1938 타이완 여행기〉로 세계 최고 권위의 문학상 중 하나인 영국 부커상 ‘인터내셔널 부문’을 수상했다. 타이완 문학 최초이자 중국어 소설 최초였다.
양솽쯔 작가는 수상 이후 첫 공식 행사로 한국을 방문했다. 그의 또 다른 작품 〈꽃피는 시절〉이 국내에 출간된 직후였다. 〈1938 타이완 여행기〉와 마찬가지로 일제강점기 타이완을 배경으로 한 여성들의 이야기다. 6월1일 기자간담회에 참석한 작가는 문학 연구자이자 소설가로 수상 소감을 밝혔다. “연구자로서 말씀드리면 한강 작가의 노벨문학상 수상과 마찬가지 방향이라고 생각한다. 우리는 여성 의제를 다루고 국가가 민족에게 어떤 폭력을 가했는지, 어떤 상처를 남겼는지 말한다. 사회의 가장자리에서 목소리를 내고 있다.” 소설가로서의 소회는 좀 더 간결했다. “나는 타이완을 위해 이 상을 타고 싶었다.”
“타이완을 위해 이 상을 타고 싶었다”
타이완을 위해 상을 타고 싶었다는 게 무슨 의미일까? 시상식 참석 전 차이잉원 전 타이완 총통을 만난 자리에서 작가는 물었다고 한다. “타이완을 위해 이 상을 정말 받고 싶은데 이런 마음가짐을 가져도 좋은가? 건강한 생각일까?” 총통이 ‘그게 왜 건강하지 않은 생각이냐’고 되물었다는 일화를 전했다. 양솽쯔 작가는 현재 타이완이 처한 정치적 상황을 언급했다. “2026년 국제 정세 속에서 타이완은 큰 압박을 받고 있다. 이 상황에서 타이완의 다양한 모습을 세계에 보여주고 싶었다. 문학이라는 수단을 통해 타이완을 알리고 싶었다.”
〈1938 타이완 여행기〉 한국어판은 지난해 11월 출간됐다. 책을 기획·번역한 김이삭 소설가는 2020년 초 타이완에 방문해 현지 작가들과 일제강점기를 배경으로 한 작품에 대해 이야기를 나눴다. 두 나라 모두 식민지를 경험했지만 서로의 기억이나 관점이 달랐다. 김 작가는 일제강점기를 배경으로 하는 작품이 더 많아져야 한다고 생각했다. “타이완이 일제강점기를 미화한다는 시선이 있었다. 그게 편견일 수도 있고, 실제 그렇다 하더라도 어떤 이유로 그렇게 되었는지 알아야 할 것 같았다. 특히 오늘날의 관점이 중요하다고 생각했다. 타이완 창작자들은 식민 시기를 왜 다르게 바라보는지, 또 그게 어떤 의미인지 궁금했다.” 일제강점기를 배경으로 한 백합 소설(여성 인물들 간의 애정을 중심으로 서사를 풀어가는 장르)을 쓰는 양솽쯔 작가의 존재를 알게 된 그는 언젠가 그의 작품을 한국에 소개하겠다고 마음먹었다.
일은 생각처럼 간단하지 않았다. 역사 백합 소설 자체가 낯선 데다 타이완 문학은 해외 문학 중에서도 비주류였다. 일제강점기를 배경으로 한국과 타이완 작가들의 앤솔러지 작품을 기획했지만 모두 난색을 표했다. 소설가로서 출판사 관계자와 만날 때도 양솽쯔 작가의 작품을 홍보하던 어느 날, 드디어 연이 닿아 출간을 하게 되었다. 그사이 작품은 스스로 운명을 개척하고 있었다. 영문판이 정식 출간되기 전에 전미 도서상 번역부문 후보에 올랐고 한국 판권 계약이 마무리될 무렵 수상 소식이 들려왔다. 〈1938 타이완 여행기〉는 2024년 전미 도서상 번역부문, 2024 일본 번역대상을 받았다.
부커상 심사위원단은 이 작품이 “로맨스 소설의 매력과 포스트식민주의 소설의 날카로운 문제의식을 동시에 성취했다”라고 밝혔다. 소설 속 일본인 치즈코는 제국의 남진 정책을 비판하고 본섬(타이완) 사람을 향한 내지인의 편견에 불만을 드러내지만, 또 한편으로는 천진하게 말한다. “제국이 남쪽 섬에서 확실히 아름다운 것들을 탄생시켰어요. 원석을 다듬어서 보석이 빛을 발하도록 만들었죠.” 식민지를 경험한 국가의 독자로서 마음이 복잡해지는 장면이다. 그런데 이를 바라보는 소설 속 타이완 사람들의 모습도 어딘가 낯설다. 양솽쯔 작가는 부커상 인터뷰에서 “한국과 타이완은 모두 과거 일본 제국의 식민지였지만, 한국인들은 그 역사에 대해 한결같이 원망을 품고 있는 반면, 타이완인들은 혐오와 향수가 뒤섞인 훨씬 복잡한 감정을 가지고 있다. 현대 타이완인의 시각으로 과거 타이완인들이 직면했던 복잡한 상황을 풀어내고, 우리가 추구해야 할 미래는 어떤 모습일지 탐구하고 싶었다”라고 말했다.

소설은 일제강점기 한 일본인 소설가가 타이완에 체류하며 연재했던 여행기를 소설로 쓰고 이를 타이완 번역가가 번역 출간한다는 설정으로 이루어진다. 번역가라는 설정 때문에 주석을 통해 적극적으로 독자의 해석에 개입한다. 양솽쯔 작가는 왜 계속해서 100년 전 식민지 시대를 다루는 걸까? 타이완은 일제 식민지에서 벗어난 뒤에도 장제스가 이끄는 중화민국의 통치를 받고 38년간 계엄을 겪었다. “개가 가고 나니 돼지가 오더라”는 말이 나온 배경이다. 양솽쯔 작가는 〈꽃피는 시절〉 한국어판 서문에서 “일제의 억압과 수탈은 사실”이지만 “중화민국 정권이 타이완 사람에게 미친 해악은 전자를 완연히 압도한다”라고 밝힌다. 중화민국 사관이 담긴 교과서로 역사를 배운 작가와 작가 또래의 1980년대생은 일제강점기 타이완의 모습에 대해 배울 기회가 거의 없었다. 1987년 계엄이 해제되고 1996년에야 처음으로 직접 투표로 뽑힌 국가 지도자가 탄생했다. 양솽쯔 작가는 “중국과 합병될지도 모른다는 위기의식 때문에 식민 역사를 다룬 소설을 쓰게 되었다. 우리가 다시는 식민 지배 시절로 돌아가서는 안 된다는 말을 하고 있다”라고 말했다.
그의 창작 활동에 가장 큰 영향을 미친 사건은 3·18 학생운동이다. 2014년 학생과 시민들이 국민당 정부의 친중국 법안 강행 처리에 반대하며 국회를 점거했던 사건이다. 이를 계기로 양솽쯔 작가는 ‘타이완인의 정체성을 응집시키는 일’을 자신의 사명으로 삼았다. 이 운동은 동세대 작가들에게도 중요한 전환점이 됐다. “이전까지 나 스스로를 중국인이자 타이완인이라고 인식했다면 이 운동을 계기로 타이완인이라는 정체성을 갖게 되었다. 창작 주제 역시 타이완과 중국이 과연 어떻게 다른가에 집중하기 시작했다. 동료 작가들 역시 각기 다른 장르를 다루고 있지만, 가장 집중하는 것은 ‘중국은 쓸 수 없고 오직 타이완만이 쓸 수 있는 이야기’에 관한 것이다.”

〈1938 타이완 여행기〉를 보면 ‘이 책을 양솽쯔 중 동생인 양뤄후이에게 바친다’는 구절이 나온다. 양솽쯔 작가의 본명은 양뤄츠다. 2014년 쌍둥이 동생 양뤄후이와 함께 양솽쯔(쌍둥이라는 의미)를 공동 필명으로 삼으며 작가 활동을 시작했다. 2015년 동생이 세상을 떠난 뒤 기존 필명으로 창작을 이어가고 있다. 양솽쯔 작가는 어린 시절 집안 환경이 어려워 고등학교와 대학교를 모두 야간으로 다니며 15세부터 음식점에서 일했다. 그의 소설에 음식이 자주 등장하는 이유다. “가난한 청소년 시절에는 무얼 먹느냐가 깊은 인상을 남겼다. 대학 때 호텔에서 일하면서는 음식과 계급의 연관성을 의식하게 됐다. 음식은 계급, 민족, 성별, 연령과 관계가 있다. 결국 음식은 권력의 문제다. 정체성과도 밀접한 연관이 있다.”
간담회에서는 여성의 눈으로 역사를 바라보고 해석하는 작업의 의미를 묻는 질문도 나왔다. 양솽쯔 작가는 자신을 성소수자라고 밝히며, 여성 성소수자의 입장에서 오래 품어온 문제의식을 이야기했다. 여성의 이야기가 충분히 여성의 시각으로 서술되고 있는지에 대한 얘기다. 그는 어린 시절 즐겨 본 일본 야구 만화를 예로 들며, 여학생의 역할이 대부분 매니저에 한정돼 있었다고 말했다. “내가 어릴 때는 여성이 성장하는 이야기를 찾기 어려웠다. 그래서 젊은 여성들에게 다른 이야기를 들려주고 싶었다. 내 작품 속 여성들도 꿈을 품고 있지만 그런 꿈이 역사에 기록되는 경우는 드물다. 기록되지 못한 여성들의 삶과 열망을 문학을 통해 알리고 싶었다.”
다원성의 사회, 문학적 토양
양솽쯔 작가는 타이완 문학의 다양성에 대해서도 강조했다. “타이완은 매우 복잡하면서도 깊은 다양성을 지닌 사회다. 민족 구성은 물론 언어, 신앙, 민속 문화도 지역과 집단에 따라 큰 차이를 보인다. 한국에도 천쓰홍, 천쉐 등 여러 작가의 작품이 소개되고 있는데, 독자들이 이를 통해 다양한 상상력이 공존하는 공간으로 타이완을 인식하면 좋겠다.” 그의 말대로 타이완 문학은 최근 몇 년 사이 국내에서 꾸준히 독자층을 넓혀가고 있다. 지난해 열린 서울국제도서전에서는 타이완이 주빈으로 참가하기도 했다. 현대사를 관통하는 가족사와 퀴어 서사의 천쓰홍, 타이완 문학을 대표하는 퀴어·페미니즘 작가 천쉐, 역사와 자연을 배경으로 환상성을 선보이는 우밍이 작가의 작품 등이 번역 출간되며 좋은 반응을 얻었다.
한국 독자들은 중국 문학과 다른 타이완 고유의 역사적 경험과 다층적인 정체성에 관심을 보이고 있다. 퀴어, 페미니즘, 소수자 등 한국 문학 독자의 관심사와 맞닿는 소설 중심으로 반응을 얻는 모양새다. 김이삭 작가는 “타이완은 한국과 비슷한 역사적 경험을 공유하면서도 전혀 다른 길을 걸어왔다. 이민자 사회를 바탕으로 다원성을 국가 정체성의 핵심 가치로 삼았고, 동성혼 법제화는 이를 보여주는 대표적인 사례다. 다원성을 중요한 과제로 마주하고 있는 한국 역시 타이완의 경험에 귀를 기울여볼 필요가 있다”라고 말했다.
작품 활동 10년 만에 타이완을 대표하는 작가의 위치에 선 양솽쯔 작가는 종종 이런 질문을 받는다. ‘강력한 정권 앞에서 문학이 과연 힘을 갖고 있나.’ 그는 여전히 문학의 효용을 믿는다고 답한다. “약을 먹거나 수술받아 병을 치료하는 것처럼 빠른 변화는 아닐지라도, 우리는 문학을 통해 계속해서 대화한다. 어쩌면 한 사람의 생애보다 더 긴 시간이 걸리는 일이다. 문학은 개인의 수명을 넘어 이어진다. 다음 세대가 그 대화를 물려받고 이어가기를 희망한다.” 그가 계획 중인 세 번째 역사소설은 100년 전, 직업을 가진 여성들의 이야기다.
임지영 기자 toto@sisain.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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