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CTV도 목격자도 없다···남은 건 진술뿐, 진실은 어떻게 밝혀질까[책과 삶]
20년차 프로파일러의 ‘증거 찾기’
9개 실제 사건 사례 통해 보여줘
“진술의 표면은 흔들릴 수 있지만
그 바다 깊은 곳 심층은 고요하다“

인터뷰 룸
최규환 지음 | 돌베개 | 280쪽 | 1만8500원
20대 초반 남녀가 식당에서 식사하고 술을 마신 뒤 성관계를 맺었다. 여성은 스스로 옷을 벗었고 가지고 있던 콘돔을 남성에게 건넸다. 여성은 관계 후 사진 촬영에도 응했다. 이 사실에 대해 여성과 남성은 동의한다.
여성은 다음날 경찰서를 찾아 성폭행을 당했다고 신고했다. 폐쇄회로(CC)TV나 목격자는 없다. 이 여성은 성폭행 피해자일 수 있을까.
<인터뷰 룸>의 저자 최규환은 20년 차 프로파일러다. 그동안 1000명 이상의 피해자와 범죄자를 인터뷰하며 진술분석을 해왔다. 진술분석이란 심리학적·언어학적 원리로 진술이 진실한지 여부를 분석하는 과학적 기법이다.
프로파일러에 대한 세간의 이미지란 행동 패턴이나 심리를 분석해 사이코패스 살인범을 추적하는 것이었다. 2010년대 이후엔 디지털 포렌식의 발전, CCTV 등 기술 고도화로 이러한 역할이 줄어들었다. 프로파일러에게 새롭게 요구되는 역할은 증거가 미약한 사건에서 진술의 의미를 가려 증거로 채택되게 하는 것이 됐다. 많은 성폭력 사건이 이에 해당한다. <인터뷰 룸>은 피해자와 가해자의 진술이 엇갈리는 사건 9건을 사례로, 불완전하고 흔들리고 때로 모순되는 진술 속에서 단단한 증거를 찾는 과정을 보여준다.
사건마다 개요와 엇갈리는 주장을 소개한 후 저자가 피해자, 가해자와 차례로 인터뷰한 내용을 싣는 방식으로 구성됐다. 인터뷰이와 인터뷰어 사이의 신뢰·친밀감이 중요하기에, 인터뷰 룸의 분위기와 대상자의 반응도 상세하게 묘사했다. 서두에 언급한 피해 여성은 “오랜 구조를 기다리다 지친 조난자”처럼 보였다. 피해자는 성폭행 전후 정황을 묘사한 뒤 “제가 원하는 건 절대 아니었지만, 저는 성관계를 허락할 수밖에 없었어요”라고 말했다. 배경엔 가해자의 강압적인 언행이 있었다. 아프지 않게 하라고 말한 것도, 스스로 옷을 벗은 것도, 콘돔을 건네고 저항을 멈춘 것도 죽음의 위협 앞에서 살아남겠다는 선택이었다. 피해자의 입가에 남은 희미한 손톱자국과 목 주변 푸른빛을 포착한 사진은 피해자가 언급한 가해자의 행동을 뒷받침했다. 가해자는 3년형을 선고받았다.
프로파일러를 곤란하게 하는 사례도 있다. 친족에게 수년간 성폭력을 당했다며 저자와 인터뷰했던 한 피해자는 1주일 만에 진술을 번복했다. 법정에서도 피해자와 피고인이 모두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았다”고 증언한 상황이었다. 결국 프로파일러는 번복 이전의 진술을 토대로 범행을 증명해야 했다.
통상의 성폭력 사건은 맥락을 중시한다. 성관계가 있었다는 사실에 양측이 동의하더라도, 성적 교감이 자연스러웠는지 강압이 있었는지에 따라 사법 처리 결과가 달라진다. 반면 친족성폭력이나 미성년자 성폭력의 경우 가해자는 행위를 전면 부정한다. 가해자의 진술 속에는 사건이 존재하지 않기에, 결국 피해자의 이야기만으로 사건에 다가서야 한다. 이 사건의 경우 피해자의 번복 이전 진술은 신빙성을 판단하는 주요 근거인 객관성·통일성·개연성·구체성 등을 모두 갖추고 있었다. 게다가 피해자가 고소하기 전 친구에게 피해 사실을 알리거나 지인과 통화하며 도움을 요청했던 기록도 남아 있었다. 법원은 프로파일러의 진술분석 보고서를 인용하며 유죄를 선고했다. 저자는 “진술의 표면은 흔들릴 수 있다. 다만 그 바다 깊은 곳 심층은 고요하다”고 표현했다.

저자는 생존한 피해자의 용기에 감탄하고, 그 고통을 외면하지 않겠다는 의도를 숨기지 않는다. 그러면서도 피해자의 진술을 의심하고 허점을 살피는 직업적 냉정도 잊지 않는다. 책에는 무고한 피의자의 사례도 나온다. 한 프랜차이즈 치킨집에서 일하던 30대 여성이 40대 남성 매니저를 성추행 혐의로 고소했다. 둘은 평소 업무 방식 등의 문제로 사이가 좋지 않았다. 저자는 해당 피해자의 반응이 통상적이지 않다는 점을 의심하면서도 혹시 자신이 진실을 간과하고 있지 않은지 자문한다. 저자는 인터뷰 룸을 벗어나 해당 치킨집 사장과 인터뷰하고, 매장 구조, CCTV 위치 등을 확인했다. 이렇게 보강된 사실은 피해자 진술의 객관성을 약화하고 가해자 진술의 개연성을 보강했다. 성범죄자로 낙인찍힐 뻔했던 남성은 혐의를 벗었다. 한 이주 여성 노동자 성폭행 사건에서도 유사한 일이 있었다. 저자는 한국 사회의 잣대, 문화적 배경이 다른 피해자의 진술 때문에 진실을 놓치지 않을까 걱정하지만, 피해자와 가해자의 진술, 구체적인 현장 증거 등을 분석해 진상을 밝혀낸다. 저자는 “범죄 상황에서의 인간의 경험과 감정이 문화적 차이를 넘어서는 원초적 유사성”을 지닌다고 적었다.
법 위에서 죄의 유무는 선명하게 갈린다. 70%의 범인, 40%의 피해자는 없다. 인간의 말과 기억은 그렇지 않다는 것이 문제다. 때로 피해자와 가해자가 모두 나름의 진실을 말할 수 있다. 피해자의 흐릿한 기억과 모호한 진술에 진실이 있을 수도, 가해자의 확신에 찬 선명한 진술에 거짓이 있을 수도 있다. 양비론 혹은 양시론도 얼마든지 가능하다. <인터뷰 룸>은 사법기관의 최전선에서, 명확함을 요구하는 법과 흐릿할 수밖에 없는 진술 사이 균형을 잡으려는 노력의 기록이다. 그 노력은 “아주 무례한 질문일 수 있다는 걸 압니다” “비난하려는 의도는 전혀 없습니다” “힘드시겠지만 자세히 말씀해주실 수 있을까요”같이 배려가 담긴 태도로 더욱 섬세해진다.

백승찬 선임기자 myungworry@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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