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큭, 흡" 숨 몰아쉬며 버틴 20초…중력 6배 견디는 공군 조종사들[르포]
'대한민국 지키는 가장 높은 힘' 공군 조종사 비행환경적응 체험

(서울=뉴스1) 김기성 기자 = 정면의 전투기를 응시하며 숨을 가다듬고는 조정간을 당겼다. 순식간에 중력의 6배가 온몸을 덮쳤다. 현기증이 나면서 눈앞의 전투기 형상은 흐려졌고, 형형색색의 무늬가 시야를 채웠다. 삶에서 가장 긴 공포의 20초가 시작됐다.
지난 17일 충북 청주 공군 항공우주의학훈련센터에서 △가속도 내성 훈련(G-TEST) △비상탈출 훈련 △공간감각상실(SD)훈련, 고공 저압 환경 훈련 등 '공군 비행환경 적응훈련'을 체험했다. 적응훈련은 조종사 과정, 고공강하요원 과정, 항공촬영사 과정, 항공기 탑승 과정 등으로 구분되는데 이날 받은 훈련은 항공기 탑승 과정이었다.
각 훈련은 공군 조종사가 실제 임무 환경에서 겪게 되는 극한 상황을 미리 경험하고 대처방법을 익히는 과정이다.
중력의 6배를 견디다…배·엉덩이·다리에 힘주고 짧고 굵게 "큭, 흡!"
가장 먼저 마주한 것은 중력과의 싸움이었다.
G-TEST는 전투기 조종사가 기동 중 중력의 6배(6G)에서 최대 9배(9G)가 넘는 하중에 의해 겪는 호흡 및 시력 장애 등을 경험하고 이를 극복하는 'L-1 호흡법'과 '가속도내성증진법'(AGSM·Anti-G Straining Maneuver)을 익히는 훈련이다.
L-1 호흡법은 머리로 가는 혈류량을 유지하기 위해 성대를 닫은 상태로 3초에 1회 짧게 숨을 내뱉고 도로 마시는 호흡법이다. 수많은 G-TEST 영상에서 피훈련자들이 짧고 굵게 "큭, 흡" 소리를 내는 장면이 바로 L-1 호흡법이다.
AGSM은 배와 엉덩이, 허벅지와 종아리 근육의 긴장을 유지해 높은 중력에 의해 혈류가 하체로 쏠리는 것을 방지하는 근육긴장법이다.
체내 혈액이 뇌로 가지 못할 경우 시야가 점차 흐려지다가 끝내 일시적인 의식상실상태(G-LOC)에 빠지고, 심각할 경우 전투기 추락이라는 대형 사고로 이어질 수 있다.
전투기 콕핏(Cockpit)을 그대로 구현한 훈련 장비에 올라타고 얼마 뒤 장비가 시계방향으로 돌기 시작하면서 1.4G로 정속 운행을 시작했다.
조정간의 트리거(Trigger) 당기고 숨을 반쯤 들이마신 상태에서 하체 근육에 힘을 주고 몸쪽으로 조정간을 당기자 중력은 초당 1G씩 가파르게 올랐고, 몸무게의 6배에 달하는 압력이 온몸을 덮쳤다.

눈앞에 보이는 전투기 꼬리를 뒤따라가면서 오른쪽으로 선회하는 모습이 눈에 들어오자 볼살이 뼈에 달라붙는 느낌을 받았고, 몸은 점차 말을 듣지 않았다.
숨을 참으면 하체에 힘이 실리고, 정작 호흡을 하려고 하면 온몸의 힘이 빠지면서 '몸 따로 마음 따로'가 됐다.
3초에 한 번 할 호흡은 이내 리듬을 상실했고 닥치는 대로 짧은 숨을 몰아쉬면서 '버티기'에 들어갔다. 눈앞에 전투기 모습은 점점 흐릿해졌고, 현기증이 날 때 눈앞에 나타나는 형형색색의 무늬들이 보이기 시작하면서 공포감이 몰려왔다.
"머리는 뒤로 고정! 하체랑 복부 강하게 유지! 패스하셨습니다."
조종사들은 머리는 등받이에, 팔꿈치는 허리에 붙인 상태에서 손목의 힘만으로 탈출 손잡이를 당기는 연습을 한다고 한다. 실제 사출 시 조종사가 받는 온몸으로 받는 충격은 최대 20G에 달할 수 있지만 훈련 장비는 최대 6G로만 운용된다.

7600m 상공 산소포화도 67%…판단력 흐려져 엉뚱한 기호 쓰기도
저압실비행훈련장에서는 고고도에서의 저산소 환경 적응 훈련이 이어졌다.
고도가 높아질수록 기압은 낮아지고, 공기의 부피는 팽창한다. 이를 보일의 법칙이라고 한다. 이에 따르면 신체에서는 고막의 안쪽과 바깥쪽의 기압 차가 발생해 귀가 먹먹해지는 현상이 나타난다. 압력 차에 의해 귓속에서 통증이 느껴지고 이것이 심해지면 중이염으로 이어질 수 있다.
고고도에서 산소의 압력이 떨어지면서 호흡으로 얻는 산소의 양이 줄어 혈액 속 산소포화도가 낮아진다. 1만 8000피트(약 5486m) 상공의 산소 분압은 지상의 절반이고, 3만 4000피트(약 10km) 상공부터는 100% 산소 공급이 필요해진다. 혈액 산소포화도가 낮아지면 두통, 열감, 집중력 저하 등 '저산소성 저산소증'이 나타난다.
훈련은 조종사들이 사용하는 산소호흡기를 착용한 상태로 훈련실 내부에 2만 5000피트 상공(약 7620m)과 같은 기압을 조성하고, 산소호흡기 제거 이후 산소포화도 하락에 따른 신체 변화를 확인하는 방식으로 진행됐다.
훈련실 내부 압력을 점차 낮추자 훈련실 내벽에 걸린 붉은 풍선이 점차 부풀어 올랐다. 이어 고도가 점차 올라가자(압력이 점차 내려가자) 훈련실 내부에 안개가 깔리고 기온이 내려가는 단열팽창 현상도 나타났다. 귀가 먹먹해질 때면 입과 코를 막고 숨을 내뿜어 기압을 맞추는 '발살바 호흡'(Valsalva maneuver)으로 해소하기도 했다.

2만 5000피트 상공의 여건이 조성되자 산소마스크를 벗고 피훈련자들이 각기 간단한 사칙연산을 하거나, 특정 단어를 따라 쓰는 시험이 시작됐다.
산소마스크를 벗자 손가락에 착용한 산소포화도 측정기는 99%를 가리키다가 빠른 속도로 하락했다. 9단부터 구구단을 써 내려가다가 '8 곱하기 5'를 쓸 때 곱하기(×)를 등호(=)로 잘못 쓰고 있었다.
마스크 제거 후 3분여 흐른 시점에 산소포화도 측정기가 67%를 가리키자 조교가 급히 산소마스크를 채웠다. 약간의 어지럼증, 열감이 있었고 판단 능력이 떨어졌음을 두 눈으로 직접 볼 수 있었다. 일반인은 해당 고도에서 3~5분이면 의식을 잃는다고 한다.
F-15K 전투기 조종석을 옮겨 놓은 기계에서 진행하는 공간감각상실훈련은 조종사들이 비행 상황에서 인체 균형을 담당하는 반고리관의 한계를 경험하고, 전투기 계기장비와 신체 감각의 교차확인 필요성을 각인하기 위해 만든 훈련이다. 계기장비에는 현재 정면 위치와 고도, 속도, 좌우 기울기 등이 표시된다.
훈련이 시작되자 지면으로부터 10도를 유지한 상태로 이륙할 때 더욱 높은 각도로 상승하고 있다는 착각이 들기도 했고, 이륙 후 속도를 줄일 때 마치 하강하는 듯한 느낌을 받을 수 있었다.
기체를 오른쪽으로 꺾은 상태에서 오른쪽으로 고개를 돌리면 더 강하게 방향이 꺾이는 '전향성 착각'도 경험했다. 이런 이유에서 공군 조종사들은 고개를 움직이기보다 눈만 움직여 주변 상황을 살핀다고 한다.
공군의 주력 전투기 F-35A 조종사 1명을 양성하기 위해서 들어가는 비용은 약 62억 원으로, 숙련 전투기 조종사를 양성하는 데 천문학적인 비용이 들어간다.
그렇게 탄생한 조종사들은 최대 9G의 압력과 열악한 외부 환경에서 사실상 목숨을 내놓고 평소와 같은 판단력과 신체능력을 발휘하며 임무를 완수하고 있다.
7시간의 짧은 경험이 끝난 뒤에야 '대한민국을 지키는 가장 높은 힘'의 무게를 조금은 알 수 있었다. 눈앞이 검게 변하는 순간에도 끝까지 정신을 붙드는 사람들의 훈련과 인내가 지금 우리 하늘을 지키고 있었다.
goldenseagull@news1.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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