거식증·넷카마·나비약···청소년 현실 있는 그대로, “위로 대신 화내고 싶었다”
가장 젊을 때 다뤄야 하는 청소년 이야기
젊고 힘 있게 10대 청소년 문제 총망라

영화 <충충충>(17일 개봉)은 거칠다. 벌레가 부화하는 모습을 이어붙인, 현대미술관에 어울릴 법한 영상을 지나면 곳곳이 재개발 중인 오래된 빌라촌이 나온다. 이 투박한 배경 앞에 교복 차림의 주인공들이 선다.
이미 학교에 지각인데 담배 피울 시간을 달라는 ‘지숙’(백지혜)을 ‘용기’(주민형)는 헤벌쭉한 표정으로 기다린다. 소위 ‘불량’한 행동을 하고, 그것이 자연스러워 보이는 둘은 나쁜 아이들처럼 보이지는 않는다. 이들의 행동은 남보다는 제 자신을 찌르는 편이다. 그래서 더 위태로워 보이는 아이들을 카메라는 핸드 헬드(삼각대 없이 들고 촬영하는 것)로 흔들흔들 따라간다.

서울예대 영화과와 한국예술종합학교 영상원 전문사 과정을 졸업한 한창록 감독(36)의 장편 데뷔작이다. 지난해 신설돼 쟁쟁한 해외 감독들이 두루 초청됐던 제30회 부산국제영화제 경쟁부문에서 심사위원특별상을, 최근 폐막한 제14회 무주산골영화제에서 감독상을 받은 독립영화계 화제작이다.
화려한 수상 경력만큼 젊고 힘 있는 영화다. 단순히 신예 감독이 만든 영화여서가 아니다. <충충충>은 10대 청소년 문제를 용감하게 총망라한다.


지숙은 ‘뼈말라’가 되고 싶어 하는 거식증 환자다. 텔레그램에서 ‘나비약’(마약류 식욕억제제)을 구매한다. 용기의 친구 ‘덤보’(신준항)는 인터넷 게임·채팅방에서 여성을 사칭하는 ‘넷카마’다. 둘에게 부적절하게 성적으로 접근하는 성인이 수없이 많다. 친구들을 지켜보는 용기는 평범해 보이지만, 정작 “세상에 잘난 사람이 많은 것 같다”고 읊조리는 그는 평범하기가 싫다.
개봉을 이틀 앞둔 지난 15일 한 감독을 서울 중구 경향신문사에서 만났다. 그는 “나이가 들수록 청소년과 거리가 멀어지니, 청소년 이야기는 어쩌면 가장 젊을 때 해야 하는 작업”이라는 어느 감독의 인터뷰를 인상 깊게 본 것이 10대의 이야기를 만들게 했다고 했다. 2018년 미국 워싱턴주 벤턴 지역에서 벌어진 청소년 치정 범죄 사건에서 모티브를 얻고, 한국 청소년들의 음지 문화를 이야기에 접목했다.

10대들의 영상 브이로그와 청소년이 연루된 사건·사고 기사를 참조했다. 한 감독은 그 과정에서 “연민의 마음이 들었다”고 했다. “스마트폰을 쥐고 태어나는 세대라고 하잖아요. 잘난 사람들을 너무 쉽게 구경하게 되는데, 저성장의 시대에서 미래를 꿈꾸기는 어렵죠. 화려한 삶을 동경하지만 충족되지 않는 현실이 사람들을 온라인으로 향하게 하는데, 온라인은 안전지대가 없는 무방비한 공간이에요.”
영화를 일종의 사회 고발물처럼 보이게 하는 건, ‘사건 기사’로 접한 청소년 문제들이 청소년의 시각을 투과해 보여져서다. 영화의 한 장면에서는 2023년 10대 여학생이 서울의 한 고층 건물에서 SNS로 실시간 방송을 하던 중 목숨을 끊은 사건이 연상된다. 그를 본 용기는 말한다. “(이런 일이 벌어졌는데도 변하지 않는) 세상이 미친 것 같다.”
한 감독은 “실제 벌어진 사건들의 영향을 받은 장면들이 있다”며 “표현 방식에 있어 고민이 많았다”고 했다. 그는 “동시대의 많은 감독들이 청소년을 위로하는 영화를 많이 만드시니, 저는 세상에 화를 내는 영화를 만들고 싶었다”고 했다.


이질적이게도 영화는 90년대의 질감을 추구한다. 파나소닉 HVX2000 등 구형 캠코더를 사용하는 등 일부러 1990년대~2000년대 초반 영상의 분위기를 냈다고 한다. 한 감독은 “Y2K가 유행한 지 꽤 됐는데, 90년대 말 IMF 사태와 2000년대를 앞두고 불거진 종말론 등 ‘미래가 없을 것 같은’ 시대적 감성이 통해서가 아닐까 싶다”며 “90년대가 아날로그에서 디지털로 넘어가는 때였다면, 지금은 인간이 AI(인공지능)로 대체되는 게 아니냐는 얘기가 나온다. 그런 혼란스러운 감각이 닮았다고 생각했다”고 말했다.
한 감독은 대체로 수줍은 얼굴이었으나 영화 얘기를 할 때만큼은 명확히 주관을 세워 얘기했다. “힘이 있는 영화, 관객을 압도하는 느낌이 드는 영화”를 만들고 싶다는 그에게 ‘압도당했던’ 영화를 물었다. 그 목록은 다음과 같다. <파이트 클럽>, <곡성>, <데어 윌 비 블러드>, <위플래시>, <블랙 스완>, <챌린저스>…. “몰입되다 못해 영화가 나를 덮치는 느낌이 나는 그런 영화를 만들어보고 싶습니다.”
전지현 기자 jhyun@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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