반도체 쏠림에 양극화 늪, 남 얘기 아니다…‘먼저 온 미래’ 대만의 경고음


“남의 나라 얘기가 아니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대만의 경제 양극화 현황을 조사한 한국은행 실무자는 최근 ‘한겨레’에 이렇게 말했다. ‘반도체 수출 호황’으로 이례적인 고성장을 이어가는 대만 경제 내부의 격차 확대, 양극화 문제가 한국 경제의 미래를 보여주는 거울 같다는 얘기다.
한국 경제도 대만처럼 반도체에 편중된 수출·성장 호조를 보이고 있다. 제도를 통한 ‘재분배의 통로’를 서둘러 마련하지 않으면, 체감 경기 악화를 넘어 경제 양극화와 노동시장의 격차 고착화, 자산 쏠림 등 구조적 불균형이 심해질 수 있다는 경고가 나오는 이유다.
18일 대만의 경제지표를 집계하는 행정원 주계총처 통계를 보면, 올해 1분기(1~3월) 대만의 실질경제성장률(전년 동기 대비 국내총생산 증가율)은 무려 14.55%를 기록했다. 대만 경제의 연간 성장률은 2022년 2.68%, 2023년 1.08%로 저성장의 초입에 놓여 있었다. 그러나 2024년 5.27%를 찍은 뒤 지난해 4분기부터 ‘두자릿수 분기 성장률’이라는 초고속 성장세를 보이는 상황이다.
한국에 견줘 인구수 절반, 영토 면적 3분의 1 남짓인 섬나라 대만이 이처럼 두드러진 경제적 성과를 낸 배경에는 단연 반도체 수출 호조가 있다. 대만은 세계 최대 파운드리(반도체 수탁생산)인 티에스엠시(TSMC)를 중심으로 설계·제조·후공정 등 반도체 전 공정에 걸친 산업 생태계를 보유하고 있다. 인공지능(AI) 투자 열풍과 수요 확대에 힘입어 반도체 산업이 국가 성장을 이끄는 핵심 동력으로 작동하고 있는 것이다.
문제는 반도체 호황의 온기가 대만 경제 전반으로 번지지 않고 있다는 점이다. 외려 대만의 수출·생산 등 주요 지표들은 반도체와 비반도체 간 격차가 확대되고, 저임금과 민간 소비 부진이 지속되는 등 경제 양극화가 심화되고 있다. 세계불평등연구소의 ‘2026 세계 불평등 보고서’에 따르면, 대만의 상위 10%가 전체 소득의 48%를 차지하고 있는 것으로 집계됐다. 하위 50%의 소득 비중은 12%에 불과했다. 소득 상위 10%가 전체 부의 37%를 차지하는 한국(하위 50%는 전체 부의 18% 차지)보다 소득 집중도가 높다.
최저임금 수준도 한국에 크게 못 미친다. 지난해 기준, 1인당 국민총소득(GNI)에서 한국을 앞질렀지만 대만의 월 최저임금은 2만8590대만달러(138만원)로 한국의 월 환산 최저임금(215만원)의 65% 수준에 그쳤다. 대만 경제가 반도체 호황에 힘입어 고성장을 기록하고 있지만, 청년층과 중산층을 중심으로 상대적 박탈감이 커지고 있다는 분석이 나온다.
반도체 산업 의존도가 높은 탓에 반도체 호황이 둔화하면 대만 전체 경제가 빠르게 경색될 수밖에 없다는 위험도 안고 있다. 올해 1분기 실질경제성장률(14.55%)에서 반도체 수출을 제외할 경우, 성장률은 4%대 초반으로 대폭 하락한다. 대만 정부가 공개한 ‘산업생산지수’를 봐도, 지난 4월 대만의 반도체(집적회로) 생산지수는 152.80으로 전체 제조업 생산지수(127.81)를 크게 웃돌았다. 반도체 부문의 생산 증대가 전체 제조업 지수를 이끌고 있다는 뜻이다.
한국 역시 반도체 산업에 대한 의존도가 높다는 점에서 사정은 크게 다르지 않다. 올해 1~5월 전체 수출에서 반도체 수출액이 차지하는 비중은 약 37%로, 지난해 연간(약 24%)에 견줘 그 비중이 대폭 확대되고 있다. 올해 1분기 실질성장률(전기 대비 1.8%) 역시 ‘반도체 제조업’을 빼면 0%대로 내려가게 된다. 한국은 반도체 등 정보기술 제조업 부문 종사자 수 비중이 지난해 1~10월 기준 전체의 1.9%로 대만(10.5%)보다 훨씬 작은 터라, 반도체 경기 호조로 인한 과실이 특정 대기업 정규직 등 소수에게 집중되는 구조이기도 하다.
국제금융센터는 지난달 보고서를 통해 “대만은 반도체 등 인공지능 관련 업종을 제외한 전통 제조업과 서비스업이 투자 소외, 구인난에 시달리는 등 반도체 쏠림이 심화되고 있다”며 “우리나라도 반도체 쏠림 심화 등으로 대만과 같이 소득계층별·산업별 양극화가 심화될 가능성에 유의해야 한다”고 지적했다.
박종오 배지현 기자 pjo2@hani.co.kr
Copyright © 한겨레신문사 All Rights Reserved. 무단 전재, 재배포, AI 학습 및 활용 금지
- 인텔·애플 메모리 날갯짓이 한국엔 태풍으로…‘K자 양극화’ 심화 우려
- 밴스 “‘종전 MOU’ 60일 협상 시작”…미, 이란 해상봉쇄 해제
- 멕시코전에 무궁화 핀다…‘역동적 에너지’ 담은 연보라 유니폼 월드컵 첫선
- 극단적 ‘혐중 집회’ 막으랬더니…평화적 연대 시위도 덩달아 제한
- ‘어린 백성을 어여삐 여겨’ 만든 한글? 글쎄… [.txt]
- [단독] 미 의회 군사위, ‘한국 내 중국 공산당 영향력’ 평가 첫 요구
- ‘비상임 겸직’ 시·도 선관위원장, 선거 있는 해에도 ‘월 1회’만 출근
- 내년 ‘최저임금 업종별 차등적용’ 안 한다…최임위 표결서 부결
- 인천 쓰레기장 ‘사람 다리’, 80대 절단 수술 환자 유전자와 일치
- 9월부터 OTT 구독 내역 한곳에서 확인…‘시야제한석 사전고지 의무화’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