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 규제에도 몸 커진 ‘중국판 삼전닉스’…반도체 시장 판 흔드나


국내 반도체 기업들이 맞은 슈퍼사이클(초호황)의 전망을 좌우할 주요 변수의 하나로 ‘중국 반도체의 부상’이 거론된다. 거대한 내수시장을 발판 삼아 체력과 실력을 키워온 ‘중국판 삼전닉스’가 대대적인 투자와 증설에 나서며 시장의 판도를 흔드는 것 아니냐는 우려다.
18일 업계에 따르면, 중국 반도체 기업들의 메모리 생산 규모는 이미 무시할 수 없는 수준까지 올라와 있다. 시장조사기관 ‘옴디아’ 통계를 보면, 중국 최대 디(D)램 업체인 창신메모리테크놀로지(CXMT)의 연간 디램 웨이퍼(반도체 원판) 생산량 추정치는 354만장이다. 이는 삼성전자 생산량의 43.1%, 에스케이(SK)하이닉스 생산 물량의 53.5% 규모다. 공격적인 투자로 5년 전인 2021년(연 46만5천장)에 견줘 디램 생산 능력을 8배 가까이 키운 것이다.
낸드플래시 메모리 전문 기업인 양쯔메모리테크놀로지(YMTC) 역시 올해 연간 낸드 웨이퍼 생산량 추정값이 201만장으로, 에스케이하이닉스(279만장)를 바짝 추격하고 있다. 낸드의 경우 중국과 한국 기업 간 기술 격차가 고작 1~2년에 불과한 터라, 시장 경쟁도 더 치열해질 가능성이 크다.
중국판 삼성전자·하이닉스로 불리는 창신메모리와 양쯔메모리 등 중국 반도체 기업들은 중국 정부가 2014년부터 최근까지 6869억위안(약 155조원) 규모로 쏟아부은 ‘국가반도체산업투자기금’(1∼3기 포함) 등 정책 지원을 받으며 자체 기술력을 쌓아왔다. 그러나 미국 트럼프 1기 행정부 당시인 2019년 말 미국 정부가 첨단 반도체의 미세 회로를 그리는 데 필수적인 장비인 ‘극자외선(EUV) 노광장비’의 대중 수출을 금지하며 직격탄을 맞았다. 이 장비가 없으면 연산을 담당하는 로직 칩은 물론 메모리도 최첨단 칩을 만들 수 없기 때문이다.
하지만 최근 중국 기업들이 주목받는 건, 미국의 수출 규제를 우회할 수 있는 자체적인 기술적 돌파구를 마련하며 ‘반도체 자립’에 부쩍 속도를 내고 있어서다. 창신메모리는 글로벌 메모리 공급 부족과 가격 상승 덕분에 흑자 전환에 성공한 데 이어, 이달 말 증시 상장을 앞두고 있다. 영업이익과 상장을 통해 조달하는 투자금을 더해 대규모 ‘투자 실탄’을 장전하게 된 셈이다.
다만 중국 반도체 기업들이 지금 당장 국내 기업에 위협이 되는 건 아니라는 게 업계의 중론이다. 첨단 장비의 부재 등 해결해야 하는 과제가 여전하고, 인공지능메모리(HBM)·파운드리(반도체 수탁생산) 등은 우리 기업과의 기술력 격차가 여전히 3년 이상이다. 인공지능 투자의 발원지인 미국의 주요 테크 기업들이 기술안보 정책 등 보안 강화 탓에 중국산 반도체를 꺼린다는 점도 한국 업계에 유리한 사정이다.
이우근 성균관대 교수(반도체융합공학과)는 “중국의 강점은 내수시장이 크고 기초과학이 강하다는 점”이라며 “중국 기업들도 최근 슈퍼사이클 호재로 돈을 벌어들이고 있기 때문에 적극적으로 투자에 나설 것”이라고 말했다.
박종오 기자 pjo2@hani.co.kr 배지현 기자 beep@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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