호스피스를 권유한다는 것

광주일보 2026. 6. 19. 01:5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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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승규 대한요양병원협회 전남회장
호스피스를 권유하는 의사의 말은 치료를 포기하라는 의미일까? 의료 현장에서 종종 마주하게 되는 이 질문은 지금까지 많은 사람의 마음 속에 선명한 불안으로 남아 있다. 호스피스라는 단어에 끝이라는 이미지를 투영하면서 환자와 보호자 모두 그 단어 앞에서 주저하게 되는 것이다.

하지만 호스피스는 치료를 포기하라는 선언이 아니다. 오히려 더 나은 삶을 위한 새로운 치료의 시작일 수 있다. 실제 현장에서는 이런 일들이 벌어진다. 폐암 4기로 타 요양병원에 있다가 코로나19 감염 후 회복되었지만 호흡곤란이 지속되어 우리 병원으로 온 환자분이 계셨다. 호흡곤란으로 제대로 움직이지도 못하면서도 암 식단을 끊임없이 찾으시는 모습에서 삶에 대한 의지를 읽을 수 있었다. 그러다 아침에 호스피스를 문의하셨는데 식은땀을 흘리고 산소포화도가 떨어지는 상황에서도 나는 포기할 수 없었다. 보호자도 환자도 아직 포기하지 않았기에 코로나 후유증 치료가 더 필요하다고 판단하여 응급실 전원을 결정했다.

이것이 바로 호스피스 권유가 갖는 복잡성이다. 의사에게는 가야 할 때와 멈출 때를 판단해서 친절한 죽음을 선택하도록 도와야 한다는 요구도 있지만 이는 모든 인간을 영원히 죽지않고 살아있게 하라는 것만큼 불가능한 일이다. 때로는 진행하는 것이 친절함이고, 때로는 멈추는 것이 친절함일 수 있다. 그 경계는 명확하지 않으며 매 순간 선택의 갈림길에서 환자와 보호자, 의료진이 함께 최선의 길을 찾아가야 한다.

또 다른 환자분은 폐암 4기로 뇌 전이가 있어 두 달 전 치료를 시작했는데 반신마비는 호전되었으나 타 요양병원에서 섬망이 심해져 다시 우리 병원으로 오셨다. 1주일이 지났으나 호전 기미가 없는 상황으로 이때가 제일 어려운 순간이다. 이제 선택의 순간이 다가온다.

환자와 보호자의 선택은 그동안의 삶의 경험, 철학, 가족 간의 관계 등 결정 요소가 참 많다. 의료진의 뜻으로 이끌지 않고 죽음에 관한 여러 견해를 포용하면서 그것들을 지지해 주되, 전문가의 견해와 죽음에 대한 경험이 있는 사람으로서 조언을 해주고 최종적인 결론은 받아들여 주는 것, 그것이 친절한 의사가 되기 위한 노력이다.

요즘은 암 진단을 받은 환자 대부분이 병명을 인지하고 있으며 자신의 병기까지 알고 치료에 참여하는 시대가 되었다. 1기에서 4기, 말기 암까지 환자의 이해도가 높아졌고 치료 목적에 대해서도 인식이 점차 개선되고 있다. 더 이상 암인지도 모르고 항암을 받는 시대는 아니다. 나아가 많은 환자분이 완치, 완화, 연명의 개념을 어느 정도 이해하고 계시고 스스로 자신의 삶과 치료 방향을 결정하는 경우가 많다.

완화치료에 대한 안내와 호스피스 서비스에 대한 설명은 암 초기부터 함께 이루어지는 것이 맞다. 그러나 현실은 그렇게 녹록지 않다. 암 진단을 받는 순간 환자와 보호자는 완치를 위한 치료 계획 수립과 수행에만 몰두하게 되고 완화의료와 호스피스는 후순위로 밀려나기 일쑤다. 게다가 치료가 가장 중요한 시기에 호스피스를 이야기하는 것은 오히려 환자와 보호자의 심리적 불안을 자극할 수 있다는 점에서 의료진도 조심스러울 수밖에 없다.

하지만 현실적 제약에도 불구하고 암 진단 초기부터 완화의료와 호스피스에 대해 환자와 보호자가 자연스럽게 정보를 접하고 준비할 수 있도록 하는 노력은 필요하다.

과거에는 모르고 치료받는 환자가 주류였다면 이제는 암이라는 사실을 알고 병기를 이해하며 치료 목적까지 파악하는 환자로 이동하고 있다. 그러나 아직도 많은 환자와 보호자가 말기 상황을 준비하지 못한 채 치료를 이어가도 호스피스를 억지로 받아들이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호스피스는 어느 날 갑자기 찾아오는 것이 아니라 암 진단과 함께 자연스럽게 설명되어야 할 과정의 일부이다. 호스피스가 두려운 단어가 아니라 내가 준비할 수 있는 선택지로 받아들여질 수 있도록 우리 모두의 인식 전환이 필요하다. 그런 시대를 향한 발걸음, 이제 함께 시작해야 한다.

이제는 다음 단계로 나아가야 한다. 호스피스에 대해 미리 안내를 받고 말기라는 상황을 준비할 수 있는 시대. 그리고 더 나아가서는 학생들이 학교 교육 과정에서 ‘웰다잉(well-dying)’을 배우는 문화. 이것이 바로 우리가 지향해야 할 미래의 의료, 그리고 사회의 모습이다.

/지승규 대한요양병원협회 전남회장 passji@gma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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