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호르무즈 넘겨주고 빈손 퇴장”… 美언론, “트럼프의 실패한 외교” 파상 공세
60일 뒤 상선 통행료 징수 길 열려…협상 카드 다 내주고 이란 요구에 끌려다녀
“3000억달러 미끼로 혁명 포기 안 해”…트럼프·밴스의 안이한 정세 인식 비판
NYT “트럼프는 이 전쟁에서 패배”…공언했던 조건 무산에 동맹 관계 악화 우려

미국과 이란의 종전 양해각서(MOU) 전문이 전격 공개되면서 현지 주요 언론들이 도널드 트럼프 행정부의 외교 성과를 향해 일제히 포문을 열었다. 이번 합의로 미국이 챙긴 실리는 전무한 반면, 이란에 호르무즈 해협 통제권이라는 거대한 지정학적 특혜를 공식적으로 쥐여줬다는 비판이 지배적이다.
보수 성향으로 분류되면서도 국익 문제에 목소리를 높여온 월스트리트저널(WSJ)은 17일(현지시간) 사설을 통해 “이란 정권은 전쟁 기간 호르무즈 해협을 인질로 잡고 있었다”며 “(이번 합의의) 진짜 위험은 이란의 갈취를 기존보다 악화된 새로운 현상유지 상태로 공식화하는 데 있다”라고 강하게 비판했다.
이 같은 지적은 MOU 서명 후 두 달이 지나면 이란이 해당 해협을 통과하는 선박으로부터 통행료를 받아낼 수 있도록 길을 열어준 독소조항에서 비롯됐다. 당일 공개된 MOU 제5조는 “이란은 페르시아만에서 오만해로, 또는 그 반대로 향하는 상선들이 60일 동안만 아무런 비용 없이 안전하게 통항할 수 있도록 최선을 다해 준비할 것”이라고 규정하고 있다. 사실상 60일 이후의 유료화나 통제 가능성을 묵인한 셈이다.
WSJ은 이에 더해 “이번 합의는 또한 이란이 비굴한 오만과의 협의를 통해 호르무즈 해협의 향후 관리 방식을 정의할 권한까지 부여한다”라며 “호르무즈 해협을 이란 외교정책의 명령에 넘겨주는 처방이나 다름없다”라고 질타했다.
아울러 협상력의 핵심 카드를 이미 소진한 트럼프 대통령의 무능을 꼬집으며 “해상 봉쇄와 석유 제재, 동결된 자금이라는 협상 지렛대를 이미 내준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이 60일 후 더 나은 결과를 얻어낼 것이라 누가 확신할 수 있겠느냐”라고 반문했다. 이어 “이란은 더 많은 것을 요구할 것이고 트럼프 대통령이 최근 보인 모습처럼 분쟁 종식에 절박하다면 그런 요구를 더 들어줄 것”이라고 경고했다.
신문은 같은 날 발표한 별도의 사설에서도 행정부의 안이한 정세 인식을 정조준했다. “JD 밴스 부통령과 트럼프 대통령은 번쩍이는 호텔과 3000억달러(약 465조3000억원) 규모의 투자라는 미끼만으로 이란 정권이 혁명의 대의를 포기할 것이라 믿는 듯하다”라는 비판이다. 그러면서 “이란은 수십 년 전부터 그런 호텔과 번영을 누릴 수 있었지만 언제나 혁명과 테러를 선택했다”라며 “이란 정권이 핵 프로그램을 포기하지 않는다면, 그것은 곧 혁명의 대의를 선호한다는 뜻”이라고 쐐기를 박았다.
진보 성향의 뉴욕타임스(NYT) 역시 트럼프 대통령이 4개월간의 전쟁을 매듭짓는 과정에서 당초 공언했던 조건을 단 하나도 관철하지 못했다고 판단하며 “트럼프 대통령은 이 전쟁에서 패배했다”라고 단도직입적인 진단을 내놓았다.
NYT는 지난 15일 사설에서 “트럼프 대통령은 정권 교체가 일어날 것이라고 암시했고, 이란에 우라늄 농축을 전혀 허용하지 않을 것이며 이미 보유 중인 핵무기급에 가까운 핵물질을 모두 발굴해 제거할 것이라고 말했지만, 이 중 어느 것도 실현된 것으로 보이지 않는다”라고 조목조목 짚었다.
나아가 미군의 군사적 자존심에 가해진 타격과 향후 과제도 함께 언급했다. NYT는 “미군은 다수의 장거리 미사일과 요격미사일을 소진했음에도 훨씬 작은 상대를 제압하지 못하는 모습을 보였다”라며 “이 피해를 복구하기 시작하려면 미국은 이 전쟁의 군사·경제적 영향으로 신경이 곤두선 유럽과 중동, 아시아와의 동맹 관계를 복구하는 게 현명할 것”이라고 조언했다.
권순욱 기자 kwonsw87@dt.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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