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란 호르무즈 통행료 강행하면 쪽박 찰 수 있다 [이규화의 지리각각]

이규화 2026. 6. 19. 01: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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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쟁 중 호르무즈 우회, 파이프라인 이용 급증
대체로 개척 활발…에너지 물류지도 재편 가속
UAE 오만만 항구 대폭 확장, 해협 탈피 계획
사우디 아람코, 육로 파이프라인 증편 추진 중
사우디·튀르키예, 걸프-유럽 잇는 회랑도 구상


호르무즈해협. 로이터 연합뉴스

미국과 이란이 전쟁 종식을 위한 합의에 도달하면서 호르무즈 해협은 다시 열릴 전망이다. 이란은 60일간 자유 통행을 보장하겠지만, “해협이 이전 상태로 돌아가진 않을 것”이라며 통행료 부과에 대한 꿈을 꾸고 있다. 하지만 단기적으로는 영향력을 행사할 수 있을지 몰라도 장기적으로는 스스로의 전략적 가치를 갉아먹는 결과를 초래할 가능성이 크다.

호르무즈해협을 우회하는 수송로가 예상보다 빠르게 그리고 대규모로 구축될 전망이다. 전쟁 기간 동안에도 중동 산유국들과 에너지 기업들은 호르무즈 해협을 우회하는 수송망 구축에 예상보다 빠르게 대응했다.

전쟁 전 하루 약 2000만 배럴이 통과하던 세계 최대 에너지 길목인 호르무즈해협은 교전이 격화되면서 사실상 기능이 마비됐다. 그러나 국제 원유 공급망은 완전히 붕괴하지 않았다. 산유국들이 그동안 준비해온 대체 수송망을 본격 가동했기 때문이다.

골드만삭스는 최근 보고서에서 “전쟁 이전 호르무즈 통항량의 70%가 새로운 100%가 될 수 있다”고 전망했다. 전쟁의 일시적 충격 때문이 아니라, 에너지 물류 체계 자체가 구조적으로 변화하고 있다는 의미다. 한때는 호르무즈를 거치지 않고서는 중동산 원유 수출이 불가능하다는 평가가 지배적이었다. 그러나 이번 전쟁은 그 전제를 뒤집었다.

사우디아라비아는 홍해 연안 얀부항으로 연결되는 동서 횡단 파이프라인 가동을 대폭 확대했다. 이 파이프라인은 페르시아만 동부 유전지대와 홍해를 직접 연결한다. 즉, 원유가 호르무즈 해협을 통과하지 않고도 유럽과 북미 시장으로 향할 수 있다는 뜻이다.

사우디 국영 에너지기업 아람코는 이번 사태를 계기로 이 시설의 수송능력 확대를 적극 검토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이란이 호르무즈해협 통제 야심을 키울수록 사우디 입장에서는 파이프라인 증설의 경제성이 더욱 커지기 때문이다.

아랍에미리트(UAE)의 움직임은 더욱 공격적이다. UAE는 이미 아부다비 유전지대와 오만만 연안 푸자이라를 연결하는 송유관을 운영하고 있다. 푸자이라는 호르무즈 해협 바깥에 위치해 있어 이란의 영향권에서 상당 부분 벗어나 있다. UAE 정부는 최근 푸자이라를 중심으로 항만시설을 대폭 확장하고 신규 항구를 건설하는 계획까지 발표했다. 목표는 ‘호르무즈 의존도를 완전히 벗어난다는 것’이다. UAE 당국은 해협이 재개방되더라도 우회 인프라 확충을 멈추지 않겠다고 공개적으로 선언했다.

이라크 역시 상황은 비슷하다. 이라크 북부에서 튀르키예 지중해 항구인 제이한으로 연결되는 육상 파이프라인 활용이 확대되고 있다. 육상수송은 과거엔 보조 수단에 불과했지만, 이제는 국가 에너지 안보의 핵심 축이 됐다.

더 주목할 변화는 아예 호르무즈를 완전 벗어난 육상 물류망의 확대다. 지난 9일 사우디아라비아와 튀르키예는 걸프지역에서 튀르키예, 나아가 유럽으로 연결되는 철도·물류 구축 양해각서를 체결했다. 이는 중동 에너지 지형 변화의 획기적 사건으로 평가된다. 양국은 걸프 지역에서 요르단과 시리아를 거쳐 튀르키예와 유럽을 연결하는 대륙간 물류 회랑 구축하기로 했다. 과거 오스만제국 시대의 헤자즈 철도를 현대적으로 부활시키겠다는 구상이다.

이 프로젝트가 현실화되면 중동 물류 인프라에 지정학적 격변이 일어날 수 있다. 걸프지역의 에너지와 상품이 호르무즈 해협을 통과하지 않고도 유럽으로 이동할 수 있게 되기 때문이다. 후티 반군의 홍해 위협과 이란의 호르무즈 통제 위험을 동시에 우회하는 새로운 공급망이 만들어지는 셈이다. 중동 국가들이 더 이상 특정 해협 하나에 국가경제를 의탁하지 않겠다는 선언과도 같다.

미국과 유럽 역시 호르무즈를 우회 물류망에 긍정적 입장을 보이고 있다. 워싱턴과 브뤼셀은 수년 전부터 특정 해상 통로에 대한 의존도를 줄이는 공급망 다변화 전략을 추진해 왔다. 우크라이나 전쟁 이후 에너지 안보의 중요성이 커지면서 중동과 유럽을 연결하는 새로운 철도·항만·파이프라인 프로젝트에 대한 관심이 높아진 것이다. 에너지 시장의 관점에서 보면 호르무즈는 여전히 중요하지만 더 이상 대체 불가능한 존재는 아니라는 인식이 확산되고 있다.

이란이 간과해서는 안 될 대목도 여기에 있다. 지정학적 요충지는 희소성이 있을 때 가치가 높다. 지나치게 자주 무기화되면 시장은 결국 우회로를 찾게 된다. 1970년대 석유파동 이후 서방 국가들이 전략비축유 제도를 만든 것처럼, 이번 중동전쟁은 세계 각국에 새로운 교훈을 남겼다. 호르무즈에 모든 것을 걸어서는 안 된다는 것이다.

만약 이란이 앞으로도 통행료 징수 및 인상이나 부분 봉쇄 같은 압박 수단을 반복한다면 단기적으로는 협상력을 높일 수 있을지 모르나, 장기적으로는 중동 산유국들의 탈(脫)호르무즈 움직임만 더욱 가속시킬 것이다. 결국 통행료를 많이 받으려다가 통행 자체가 줄어드는 상황에 직면할 수 있다는 의미다.

호르무즈해협을 우회하는 새로운 에너지 지도가 생각보다 빠르게 현실화되고 있다. 그에 비례해 이란이 가진 ‘호르무즈 카드’ 역시 가치를 상실해 갈 것이다.

이규화 기자 david@dt.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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