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대가 던진 난제… AI도 기억을 잃을까?

“인공지능(AI)도 인간처럼 망각할 수 있는가?” “생명의 시계를 제어할 수 있을까?”
서울대가 18일 서울 관악캠퍼스에서 ‘그랜드 퀘스트(SNU Grand Quest)’ 포럼을 열고 학교 연구 역량을 투입해 규명에 나서겠다며 6가지 과제를 선정해 발표했다. SNU 그랜드 퀘스트는 실패할 가능성이 있어도 인류와 사회가 직면한 근본적인 질문을 탐구하겠다며 서울대가 추진 중인 사업이다. 연구 과제는 김빛내리 생명과학부 석좌교수 등 서울대 석학 18명이 합숙 토론을 거쳐 선정했다. 서울대는 연구팀에 연간 5억씩 최대 5년간 지원하기로 했다.
서울대가 이날 공개한 연구 도전 과제는 인공지능(AI)·생명·지속가능 분야에 걸쳐 있다. AI는 인간처럼 망각할 수 있는가, AI는 손상을 스스로 회복할 수 있는가, 생명의 시계를 제어할 수 있는가, 삶의 의지를 분자 수준에서 설명할 수 있는가, 에너지 시스템은 자율적으로 균형을 찾을 수 있는가, AI 시대에 민주주의와 자본주의는 지속 가능한가 등이다. 한 분야 지식만으론 규명하기 어려워 여러 분야 연구자들이 힘을 합쳐 연구해야 할 난제(難題)들이다.

‘AI는 인간처럼 망각할 수 있는가’라는 질문은 인공지능과 구별되는 인간의 정체성이 무엇인가에 대한 질문에서 시작됐다. 질문 개발에 참여한 이석재 철학과 교수는 “인간에게 망각은 맥락에 따라 불필요한 데이터를 걸러내는 진화의 결과”라며 “AI가 인간처럼 스스로 맥락을 파악하고 무엇을 잊고 기억할지를 가려낼 수 있는 것인가 답을 찾아야 한다”고 했다. 이 교수는 “이 난제 해결을 위해선 컴퓨터공학뿐만 아니라 뇌과학, 철학, 심리학 등 다양한 학문의 융합이 필수적”이라고 했다.
‘삶의 의지를 분자 수준에서 설명할 수 있는가’라는 질문을 두고는 교수들 간에 치열한 논쟁이 벌어졌다고 한다. 우울증과 자살 문제를 논의하는 과정에서 ‘무엇이 인간을 좌절하게 만드는가’가 아니라 ‘무엇이 인간을 다시 일어서게 만드는가’라는 질문이 연구 과제로 선정됐다는 것이다. 이정동(공학전문대학원 교수) 그랜드퀘스트 이니셔티브 연구단장은 “정신적인 영역인 ‘삶의 의지’와 물리적 영역인 ‘분자 수준’을 어떻게 연결할 수 있을지 교수 간에 논쟁이 치열했다”며 “그러다 인간을 다시 살아가게 만드는 정신을 과학적으로 규명하자는 데 뜻이 모였다”고 했다.
‘AI 시대, 민주주의와 자본주의는 지속 가능한가’라는 질문은 공학·사회과학·법학·철학·교육학을 아우르는 과제다. 서울대 교수들은 AI가 인간의 경제 활동과 의사 결정까지 대신하는 시대를 대비해 질문을 만들었다고 했다. AI가 시장을 완벽히 통제하면 자본주의가 흔들리고, 사람들이 판단을 기계에 맡기면 민주주의가 사라질 수 있다는 전망을 규명해보자는 것이다. 서울대 관계자는 “AI 시대에 한국 사회를 지탱하는 두 기둥(민주주의·자본주의)이 통째로 무너질 수 있다는 우려를 담은 과제”라고 했다.
서울대는 지난 5월 부산 기장의 한 호텔에서 김빛내리 석좌교수 등 교수 18명이 참여하는 2박 3일간의 합숙 토론을 거쳐 그랜드 퀘스트 과제를 선정했다. 토론에는 인문·사회 계열 교수도 참여했다. 토론 과정에서 ‘해답의 실현 가능성’은 배제했다고 한다. 현택환 화학생물공학부 석좌교수는 “처음부터 실현 가능성을 따지면 획기적인 성과를 낼 수 없다”며 “실패를 두려워하지 않고 대담하게 저질러 볼 수 있는 난제를 만드는 데 집중했다”고 했다.
서울대는 오는 9월부터 6가지 과제의 가설 검증을 맡을 ‘탐색 연구팀’(과제당 5팀씩 총 30팀)을 선발할 계획이다. 탐색 연구팀에는 6개월간 5000만원씩 지원한다. 이어 내년 4월에는 본격적인 해결책 도출에 나설 ‘도전 연구팀’(과제당 2팀씩 총 12팀)을 선정해 팀당 매년 최대 5억원씩 최대 5년간 지원한다. 서울대는 이 사업에 총 1000억원을 투입할 것으로 알려졌다. 이정동 단장은 “예측 가능한 방식으로 문제를 풀겠다는 연구팀은 뽑지 않을 것”이라고 했다.
서울대는 그랜드 퀘스트 사업에 참여한 연구팀에 결과물 제출을 요구하지 않기로 했다. 연구에 실패하더라도 책임을 묻지 않겠다는 것이다. 서울대 관계자는 “연구팀이 연구 과정에서 얻은 경험과 데이터는 학계와 공유하게 할 것”이라고 했다. 유홍림 서울대 총장은 “서울대는 주어진 문제를 잘 푸는 모범생을 넘어 세상에 없는 질문을 던지는 개척자가 돼야 한다”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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