핀란드, 핵무기 금지 족쇄 풀었다… ‘노르딕 4국’ 안보 업그레이드
노르웨이는 프랑스 핵우산에 참여
스웨덴·덴마크, 여성 징집제 도입
4국 전투기 통합, 연합 공군 추진
핀란드 의회가 17일 1980년 제정된 ‘핵무기 금지법’을 폐기했다. 핀란드 의회는 이날 국가 방위를 위해 필요한 경우 영토 내에서 핵무기를 수입·운용·공급·보유할 수 있게 하는 법안을 찬성 125표, 반대 61표로 통과시켰다. 안티 하카넨 국방장관은 “국방력을 강화하고 나토(NATO·북대서양조약기구)의 핵 억지력을 보호 수단으로 최대한 활용할 수 있게 됐다”며 환영했다. 핀란드는 2022년 2월 러시아가 우크라이나를 침공하자 중립 지위를 포기하고 이듬해 나토에 가입했다. 이로부터 3년 뒤 핵무기를 자국에 들이지 않겠다는 봉인까지 해제한 것이다.

핀란드를 비롯해 스웨덴·노르웨이·덴마크 등 ‘노르딕 4국’으로 불리는 북유럽 국가들의 안보 강화에 속도가 붙고 있다. 이 나라들은 오랫동안 군비 증강을 멀리하고 평화·복지·인권을 앞세우며 국제사회에 영향력을 끼쳐왔다. 하지만 러시아·우크라이나 전쟁의 장기화와 도널드 트럼프 2기 미국 행정부의 고립주의적 노선으로 세계 정세가 불투명해지면서 이들 나라들도 국방력 강화를 중시하는 안보 정책으로 급선회하고 있다.
이러한 흐름은 핀란드가 주도하고 있다. 러시아와 1340㎞의 국경을 맞대고 있고, 실제로 러시아 지배·침공 경험을 가진 핀란드는 오랫동안 민주주의·인권·법치에 기반한 다자주의 외교노선을 핵심 정책으로 삼았지만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 이후 ‘자주국방’에만 진력하는 모습이다. 핀란드는 나토 가입과 핵무기 금지법 폐기 뿐 아니라 국경 장벽 건설에도 팔을 걷어붙였다. 러시아가 자국 국경 쪽으로 난민을 밀어내고 있어 대응조치가 필요하다며 러시아 국경 지대에 140㎞의 철제 장벽을 세웠다.
‘노벨평화상 시상국’ 노르웨이도 안보 강화에 나섰다. 요나스 가르 스퇴레 노르웨이 총리는 지난 5월 에마뉘엘 마크롱 프랑스 대통령과 ‘프랑스 핵우산’에 참여하는 방위 협정을 체결했다. 유럽의 공식 핵 보유국 프랑스를 중심으로 한 집단 안보 체제에 편입하겠다는 선언이었다. 2009년 취임 1년 차인 버락 오바마 미국 대통령에게 ‘핵 없는 세상’을 주창한 공로로 노벨 평화상을 안겨준 노르웨이가 자국 안보를 핵무기에 의존하는 상황이 전개된 것이다.
노르웨이 역시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 이후 북극권과 바렌츠해 상공에서 러시아 공군과 수차례 대치하면서 전례 없는 안보 위협을 느꼈다. 이에 자국 항구에 미 핵잠수함 기항을 확대하는 등 집단 안보 협력에 속도를 내고 있다. 최근에는 노르웨이 군 수뇌부가 “러시아의 침공에 대비 중”이라는 공개 입장을 밝히기도 했다.

핀란드와 함께 동시에 나토의 새 식구가 된 스웨덴도 오랫동안 추구해온 평화 노선을 탈피하며 안보 강화에 힘을 쏟고 있다. 지난 5월 발트해의 요충지인 고틀란드 섬에서 스웨덴군 1만6000여 명과 나토 동맹군 및 우크라이나가 실시한 대규모 합동 훈련은 변화된 안보 노선을 보여주는 장면으로 평가됐다.
트럼프가 자국령 그린란드를 미국 땅으로 삼겠다는 입장을 공개적으로 밝히며 홍역을 치른 덴마크의 안보 정책은 보다 극적으로 변화했다. 덴마크는 지난 1월 미군이 그린란드 강제 병합을 노리고 침공할 수 있다는 시나리오까지 세우고 유사시 그린란드 공항을 폭파하는 등의 작전 계획을 수립했다. 이어 덴마크군의 그린란드 주둔을 늘리는 방안도 추진했다. ‘동맹에 대한 공격은 전체에 대한 공격으로 간주한다’는 집단안보조약으로 똘똘 뭉친 나토 동맹 사이에 무력 충돌이 발생할 수 있다는 극단적 시나리오가 표면화한 것이다.
노르딕 4국이 집단 안보로 뭉치는 상황도 전개되고 있다. 이 나라들은 지난 2023년 전투기 250대를 통합해 ‘노르딕 연합 공군’을 창설하는 데 합의했다. 공중 자산을 통합해 단일 방공망을 구축하자는 것이다. 노르딕 4국을 주축으로 한 훈련 규모도 커지고 있다. 지난 3월 노르웨이가 주도하는 ‘콜드 리스폰스’ 훈련엔 노르웨이와 핀란드를 포함, 미국·영국 등 14국에서 총 3만2000여 명이 참여했다. 노르웨이·스웨덴·덴마크는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 이후 여성 징병제 도입 방침을 밝혔다.
노르딕 4국이 안보 강화와 각자도생에 나서는 배경으로 러시아의 위협뿐 아니라 국익 극대화를 추구하는 트럼프 미국 행정부의 고립주의 외교 노선도 꼽힌다. 지난해 나토 정상회의에서 트럼프가 동맹국에 2035년까지 국방비를 국내총생산(GDP) 대비 5%까지 증액할 것을 요구하고, 그린란드 강제 병합 가능성까지 시사하면서 노르딕 4국의 안보 강화에 속도가 붙었다는 분석이 나온다. 미국 싱크탱크 전략국제문제연구소는 최근 발간한 보고서에서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으로 위협이 가중되고, 미국은 무조건적인 보호자에서 예측하기 어려운 전략적 위험 요소로 인식되면서 노르딕 국가들은 자국에 핵무기를 배치하는 선택지까지 검토하기 시작했다”고 했다.
☞노르딕 4국
나토 체제 아래서 안보 협력을 강화하는 노르웨이·스웨덴·덴마크·핀란드를 국제정치 맥락에서 가리키는 용어. 우크라이나 전쟁 이후 북유럽의 긴장감이 고조되면서 자주 쓰이고 있다. 민족적 뿌리가 다른 핀란드를 제외한 나머지 세 나라를 문화적 공동체로 지칭할 때는 통상 ‘스칸디나비아 3국’이라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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