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퍼 스트롱] 보타이 고르며 하루 시작… 91세 청춘 비결은 ‘정신력’

김경은 기자 2026. 6. 19. 00:4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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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0대에도 ‘파워 라이터’
박정기 前 한전 사장
박정기 전 한국전력 사장은 “매년 직접 그린 그림으로 연하장을 제작해 800여 명에게 보낸다”고 했다. 인쇄된 상용 연하장 대신 일일이 마음을 담아 전하는 그만의 특별한 소통 방식이다. /남강호 기자

서울 여의도 한 오피스텔 사무실에서 만난 박정기(91) 전 한국전력공사 사장은 구순을 넘긴 나이가 무색했다. 셔츠 깃 위에는 감각적인 보타이가 단단히 매여 있었고, 그는 손님이 오자 직접 찻잔을 꺼내 따뜻한 녹차를 우려냈다. “여러 나라 차를 마셔봤는데 우리 녹차가 제일 맛있어요.” 말투는 부드러웠지만 눈빛은 또렷했다.

그에게 건강 비결을 묻자 그는 먼저 손사래를 쳤다. “늙으니까 척추도 안 좋고 발도 저려요.” 그러나 그의 진짜 건강 비법은 젊은 몸이 아니라 늙지 않는 정신에 있었다. 그는 특별한 일정이 없으면 매일 사무실로 출근한다. 신문을 읽고, 신간 서적을 펼치고, 책 집필을 위한 단상을 메모한다. 90대에도 에세이집을 내고, 지금까지 10권 넘는 책을 쓴 ‘파워 라이터’다.

박 전 사장이 꼽는 첫 번째 비법은 독서다. “딴 거 없어요. 책을 많이 읽어야 돼요. 특히 인문학 책을 읽어야지.” 그는 나이가 들어도 머리를 계속 써야 한다고 말한다. 과거의 기억을 붙잡고 사는 것이 아니라, 현재의 문제와 미래의 변화를 계속 생각해야 정신이 늙지 않는다는 것이다. 실제로 그는 수십 년 전 연도와 원전 기술 용어까지 정확히 기억했다.

두 번째 비법은 매일의 루틴이다. 그는 은퇴 뒤에도 하루를 그냥 흘려보내지 않는다. 출근하고, 읽고, 쓰고, 생각한다. 일정한 생활 리듬이 몸과 마음을 흐트러지지 않게 붙잡아준다. 나이가 들수록 중요한 것은 거창한 운동보다 규칙적인 일상이다. 매일 같은 시간에 움직이고, 사람을 만나고, 할 일을 정해두는 것만으로도 삶의 긴장이 유지된다.

세 번째 비법은 직접 몸을 움직이는 습관이다. 그는 손님이 오면 직접 차를 끓인다. 옷매무새도 스스로 챙긴다. 보타이를 고르고, 책을 꺼내고, 사무실을 오간다. 사소해 보이지만 이런 작은 움직임이 노년의 자립심을 지킨다. 남에게 모든 것을 맡기는 순간 몸도 마음도 빨리 늙는다.

네 번째 비법은 이타적인 삶의 태도다. 박 전 사장이 평생 붙들고 살아온 원칙은 ‘선공후사’와 ‘이타’다. 그는 “인생을 왜 사느냐고 묻지 말고, 어떻게 살아야 하느냐를 물어야 한다”고 했다. 남을 위해 사는 삶은 손해처럼 보이지만, 오래 살아보니 결코 손해가 아니었다고 했다. 누군가에게 필요한 사람이라는 감각은 노년의 중요한 활력이다. 역할이 있는 사람은 쉽게 무너지지 않는다.

다섯 번째 비법은 마음의 속도를 늦추는 일이다. 그는 젊은 시절 광주 셋방살이 때 보았던 문구, “인생은 유희”를 아직 기억한다. 젊을 때는 이해하지 못했지만 구순을 넘기니 그 말의 뜻을 알겠다고 했다. 그에게 유희란 아무렇게나 노는 것이 아니다. 숨 가쁜 경쟁 속에서도 인간으로서의 중심을 잃지 않는 여유다.

그는 AI 시대일수록 사람에게 필요한 것은 속도가 아니라 사색이라고 했다. “이제 앞만 보고 막 내달릴 게 아니라 걸음을 좀 늦춰야 해요. 템포도 낮추고 스피드도 떨어뜨려야 합니다. 고전과 문학 책을 읽으면서 사람이 AI의 주인 노릇을 할 수 있도록 생각을 많이 해야 해요.”

박 전 사장의 건강법은 특별한 약이나 비싼 운동법이 아니었다. 매일 읽고, 쓰고, 사람을 만나고, 직접 움직이고, 마음의 중심을 지키는 삶이었다. 몸은 세월을 피할 수 없지만 정신은 단련할 수 있다. 91세에도 스스로 차를 끓이고, 보타이를 매고, 인문학 책을 펼치며 미래 기술을 사유하는 힘. 그것이 그가 온몸으로 보여주는 진짜 건강 비법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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