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외로운 청년 급증… 포퓰리스트가 이들을 노린다”
정치경제학자 노리나 허츠 교수

“전 세계적으로 외로움과 고립 현상이 악화됐습니다. 단순히 친구가 없는 개인적 외로움을 넘어 국가·정치와 연결되지 못하고 버림받았다고 느끼는 구조적 단절감이 심해졌습니다. 한국에도 고립감을 느끼는 청년이 50만명이나 되죠.”
영국에서 가장 영향력 있는 정치경제학자 중 한 명인 노리나 허츠(Noreena Hertz·59) 유니버시티칼리지런던 세계번영연구소 명예교수가 이같이 말했다. 영국 언론들은 ‘세계를 이끄는 가장 위대한 지성 중 하나’(옵서버) ‘영국 최고의 지식인’(가디언)으로 부른다. 영국에선 2020년, 한국에선 2021년 출간된 저서 ‘고립의 시대’(웅진지식하우스)에서 허츠는 현대인이 겪는 외로움과 사회적 고립이 개인의 감정 문제뿐만 아니라 정치·경제 시스템과 연관된 사회적 위기라고 진단한다. 하루에 담배 15개비를 피우는 것만큼 개인 건강에 해로운 ‘외로움’이 정치적 극단주의와 포퓰리즘을 부르는 원인이라는 것이다. 2026년 이 문제는 더 심각해졌다고 본다. 국내 포럼 참석차 한국을 찾은 허츠를 17일 서울 중구 조선일보사에서 만났다.

“한국의 높은 1인 가구 비율, ‘혼밥’ ‘혼술’ 그 자체를 나쁘게 볼 필요는 없습니다. 혼자 사는 것과 외로운 것은 다르니까요.” 허츠가 보기에 ‘고독’은 스스로 원해서 갖는 자발적 충전 시간이다. 반면 ‘외로움’은 타인과 연결되고 싶으나 그럴 기회가 없을 때 느끼는 고통이다. 이는 ‘사회적으로 버려졌다’는 감각과 연결된다. 포퓰리스트들은 이 지점을 파고든다. 그는 “공동체에서 소외되는 경험은 시스템에 대한 불신으로 이어지고, 포퓰리스트들이 던지는 ‘당신을 이해한다’는 메시지에 강하게 반응하게 된다”고 했다.
AI의 등장은 상황을 악화시켰다. “한국인의 62%가 AI가 자신의 일자리를 뺏을 거라 생각해요. 전 세계인도 마찬가지죠.” 그간 기술 발전이 주로 블루칼라의 경제적·실존적 두려움을 만들었다면 이젠 화이트칼라도 마찬가지가 됐다. 그는 “트럼프 대통령의 재집권 등에서 봤듯 ‘빼앗기고 있다’는 감정은 포퓰리스트의 표적이 된다”며 “어느 대륙을 막론하고 정치가 더 극단화할 수 있다”고 했다.
그가 최근 세계 각국의 18~22세 청년들을 포커스 그룹 인터뷰한 결과, 사회적 상호작용을 AI로 대체하는 움직임도 국적에 관계없이 뚜렷했다. 친구와 싸웠을 때 누구의 잘못이 큰지 AI에 판단을 맡긴다. 부모의 잔소리에 답장하는 것도 AI에 넘긴다. 그가 한국에 와서 만난 청년들도 같은 상황이었다. “철저히 인간의 말에 동의하는 AI의 특성 때문에 청년들은 나와 다른 생각이나 신념을 가진 사람과 소통하고 어울리는 기술을 배울 기회가 없어지고 있습니다.”

허츠는 한국 청년들의 ‘콜 포비아(전화 공포증)’도 세계적 현상이라고 했다. “런던에 있는 나의 16세 딸은 심지어 메시지 대신 ‘스냅챗’으로 사진만 주고받기도 해요.” 다만 이런 현상은 ‘연결 거부’가 아닌 ‘방식의 문제’라고 했다. 서울에서도 여러 콘서트 등에 청년들이 몰리듯 집단적 행위에 대한 갈망은 여전하다. “인간은 본능적으로 타인과 연결되기를 바라는데 소셜미디어와 AI는 부분적으로만 충족시키기 때문이죠.” 그는 “충족되지 않은 영역은 우울과 공허함으로 바뀐다”면서 “바로 이런 이유 때문에 영국·호주가 청소년 소셜미디어 규제를 시작했듯이 한국도 청소년이 무분별하게 소셜미디어를 이용하는 것에 대해 규제를 검토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허츠는 “국가와 국민의 사회적 계약을 복원해야 한다”고 말했다. 구체적으로 “각 세대가 관계 맺을 수 있는 인프라를 조성하고, 소셜미디어 등 빅테크에 대한 규제를 통해 국민이 위기에 처했을 때 국가가 자신을 돌보고 있다는 확신을 줘야 한다”는 것. 개인 단위에서는 ‘마이크로 커넥션’을 강조했다. 그는 “카페, 헬스장 등 일상 공간에서 수시로 짧은 인사와 대화를 시도해야 한다”고 했다. “그렇지 않으면 현대인들은 ‘초연결 세계’ 속에 격리되고 말 테니까요. 사람들이 서로 만나지 않으면 결국 사회는 붕괴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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