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르포] 미·이란 담판 앞둔 해발 874m 스위스 리조트…푸니쿨라도 멈췄다

김계연 2026. 6. 19. 00:3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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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전 MOU 체결 후 첫 대면 협상…리조트 주변 곳곳 통제
2024년 우크라 평화회의 등 국제 분쟁 회의 개최지
평화 기대 속 트럼프 비판 여론도
뷔르겐슈토크 리조트 [촬영 김계연]

(뷔르겐슈토크<스위스>=연합뉴스) 김계연 특파원 = "뷔르겐슈토크 리조트 가는 기차(푸니쿨라) 운행 안합니다."

18일 오전(현지시간) 스위스 루체른 호수 선착장에서 배를 타자마자 안내방송이 나왔다. 승객은 10명 남짓이어서 2층으로 된 배가 텅 비었다. 안내방송을 한 직원 뷔티코퍼는 "어제부터 손님이 적다"고 전했다.

미국과 이란이 종전 양해각서(MOU)를 체결한 이후 첫 대면 협상을 오는 19일 스위스 뷔르겐슈토크 리조트에서 하기로 하면서 평온한 관광도시인 이곳에도 약간 긴장감이 돌고 있다. 호숫가 곳곳에 케이블카 운행 중단 같은 각종 통제를 알리는 안내문이 붙었다. 미국과 이란 협상단의 공식 대면은 4월 12일 파키스탄에서 '노딜'을 선언한 지 2개월여 만이다.

협상이 열리는 뷔르겐슈토크 리조트(해발 874m, 호수면 기준 약 500m)는 호수 건너편 절벽처럼 솟아오른 산꼭대기에 있다. 배에서 내려 리조트로 올라가는 푸니쿨라는 17일 오후 6시부터 협상 이튿날인 20일 오후 8시까지 운행을 중단했다. 이 지역은 관광객과 주민이 즐기는 등산 코스지만 상당수 등산로가 폐쇄됐다. 산에서 내려오던 한 노인은 "더 못 올라간다. 트럼프 때문에 전부 막혔다"며 손을 내저었다.

푸니쿨라 운행 중단 [촬영 김계연]

뷔르겐슈토크가 속한 스위스 니드발덴주 정부는 미국과 이란 고위인사 경호를 위해 리조트 주변 차로와 등산로는 물론 자전거도로까지 차단했다. 리조트 반경 46㎞ 상공을 비행금지구역으로 설정하고 주민에게는 검문을 예고했다. 리조트에서 숙박하던 관광객들은 인근 5성급 호텔로 방을 옮겼다.

호숫가에서 출발한 321번 버스는 10분 정도 산길을 구불구불 오르다가 멈췄다. 버스가 이곳까지밖에 운행하지 않는다는 기사의 말에 한 승객이 따져 물었다. 버스정류장에서는 행사 준비에 동원된 노동자들을 태우고 갈 승합차가 기다리고 있었다. 버스 기사는 "리조트에서 일한다고 말하면 승합차를 타고 더 올라갈 수 있다"고 귀띔했다.

버스에서 강제로 내리게 된 러시아계 스위스인 베라는 "오늘 친구와 리조트 안 식당에서 점심을 먹기로 했다"며 분통을 터뜨렸다. 이곳에서 밥을 먹으러 취리히에서 1년에 두세 번 찾아온다는 그는 "정치인들은 내일 오고 트럼프가 어제 베르사유 궁전에서 서명했는데 오늘은 왜 닫느냐"고 물었다. 버스 기사는 "며칠 전에 제네바에서 시위로 난리 난 것 못 봤느냐"고 면박을 줬다. 제네바는 전날 막을 내린 주요 7개국(G7) 정상회의 반대 시위로 가게들이 대거 문을 닫는 등 도시가 사실상 마비됐었다.

리조트 진입로 [촬영 김계연]

마지막 버스정류장 앞 리조트 진입로에는 외교차량 번호판을 단 승용차가 간간이 오갔다. 인근에서는 경찰과 군인들이 작업복 차림으로 구조물을 설치하는 등 행사 준비를 하고 있었다. 이들은 모두 "언론과 대화할 수 없게 돼 있다"며 고개를 돌렸다.

지난 14일 종전 MOU에 전자서명한 미국과 이란은 당초 제네바에서 대면 서명식을 할 것으로 알려졌었다. 그러나 행사 장소가 사흘 전 뷔르겐슈토크로 바뀐 데 이어 전날은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과 마수드 페제시키안 이란 대통령이 '실물 문서'에 서명하면서 MOU 효력이 발효됐다. 이 때문에 당초 예정된 서명식이 열릴지도 불분명하다. 스위스 외무부는 중재국 파키스탄과 카타르가 참여한 가운데 후속 협상이 진행된다고 밝혔다.

행사 장소가 바뀐 데는 뷔르겐슈토크 리조트에서 2024년 100여개국 대표단이 참석한 우크라이나 평화회의가 문제 없이 치러졌고 카타르 국부펀드가 소유한 시설이라는 점도 작용한 것으로 보인다. 스위스 외무부는 미국과 이란을 비롯한 4개국이 모두 이곳을 만남 장소로 제안했다고 전했다. 이란 협상단은 전쟁 초기 최고지도자를 비롯한 군과 정부 수뇌부가 대거 폭사하는 바람에 파키스탄에 협상하러 오갈 때도 파키스탄 공군의 호위를 받는 등 안전에 극도로 신경 쓴 것으로 알려져 있다.

뷔르겐슈토크 리조트(산꼭대기 건물) [촬영 김계연]

뷔르겐슈토크 호텔은 과거에도 수단 내전 등 분쟁을 국제사회가 중재할 때 회의 장소로 자주 쓰였다. 카타르 국부펀드는 1873년 산속에 세워진 호텔을 인수한 뒤 대대적 보수공사를 거쳐 2017년 스위스 최대 관광단지로 재개장했다. 루체른에 63년 살았다는 디아네는 "어렸을 때는 괜찮았는데 카타르 자본에 넘어간 뒤로는 너무 비싸서 가지 못한다"고 전했다. 다른 지역 주민들도 비싸다는 말을 반복했다.

지역 주민들은 대체로 통제가 불편하다면서도 협상이 잘 돼 전쟁이 완전히 종식되길 기대하는 분위기였다. 디아네는 "스위스가 중립국으로서 이번 행사를 준비해주는 건 좋은 일"이라며 "트럼프도 스위스 정치인처럼 좋은 일도 하고 나쁜 일도 한다. 나는 트럼프 비판에 중립이고 다른 스위스 사람들도 대부분 그럴 것"이라고 말했다.

트럼프 대통령이 전쟁을 일으켜놓고 명분도 실리도 잃었다는 비판의 목소리도 있었다. 뷔르겐슈토크 진입로에 있는 편의점 주인 잔은 "우리 아버지가 보스니아 사람이라서 전쟁에 대해 잘 안다. 중동과 이스라엘의 종교전쟁은 영원할 것"이라며 "5개월 전이랑 달라진 게 뭔가. 트럼프가 돈만 쓰고 헛수고하고 있다"고 지적했다.

dada@yn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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