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빌리티 넘어 더 나은 삶에 투자합니다

최보윤 기자 2026. 6. 19. 00:3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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리모와
리모와 디자인 프라이즈 시상식&쾰른 플래그십 부티크 오픈
청각 장애인과 비장애인 간의 원활한 의사소통을 가능하게 하는 웨어러블 팔찌 '누라(NURA)'. EMG 센서와 표정 인식 기술을 통해 수어를 음성 언어로 변환하고, 음성 언어는 시각적인 도트 인터페이스로 표시. 첨단 기술과 만타가오리(가오리 종류) 유연한 형태에서 영감을 받은 디자인을 통해 보조 기기를 세련되고 감각적인 웨어러블 액세서리로 재해석했다.

독일 베를린의 대표 문화 공간 쿨투어포룸(Kulturforum). 제4회 ‘리모와 디자인 프라이즈(RIMOWA Design Prize)’ 시상식이 열린 지난 5월 무대는 명품 가방이 아니라 독일 디자인 학교 학생들의 아이디어로 완성된 제품들로 채워졌다.

수어를 음성 언어로, 음성을 시각 텍스트로 실시간 변환해 청각장애인과 비장애인 간의 소통을 매개하는 웨어러블 팔찌 ‘누라(NURA)’. EMG (근전도·근육에서 발생하는 전기적인 활동을 기록한 신호) 센서로 근육 활동을 읽고 카메라로 표정을 분석하며, 만타가오리의 유연한 형태에서 모티프를 얻었다.

이탄(泥炭) 습지(물에 잠긴 채로 퇴적된 습지·식물 잔해가 그대로 쌓여 탄소 저장고로 불리는 곳)의 생태계를 지키며 갈대를 수확하는 ‘팔루디 하베스터’, 외로움을 겪을 수 있는 노인들을 연결하는 장치….

리모와가 시작된 독일 쾰른에 새롭게 문을 연 플래그십 부티크 외관.

‘모빌리티’(이동성)라는 디자인 주제에 따라 더 나은 삶을 위한 미래형 디자인의 경쟁 현장이었다. 마치 사회와 환경 보호를 위한 임팩트 산업가들이 치열하게 아이디어를 설파하는 모습에 언뜻 미 실리콘 밸리의 무대 같다. 럭셔리 여행 가방 브랜드의 디자인상이라면 아마 여행 가방을 어떻게 좀 더 혁신적으로 디자인 했을까 하는 생각에 머물렀을 지도 모른다. 하지만 리모와는 이 개념을 해체·확대했다. 의사 소통, 미래 식량, 고립감 해소 같은 우리 삶의 ‘순환’에 더 방점을 뒀다.

리모와 CEO 베아트리체 몬구이디(Beatrice Monguidi)와 글로벌 앰버서더 루이스 해밀턴(Lewis Hamilton).

다음 날, 무대는 베를린에서 약 290㎞ 떨어진 쾰른으로 옮겨졌다. 1898년 리모와의 첫 수리 워크숍이 있던 자리 인근, 쾰른 대성당 바로 옆에 약 500㎡ 규모의 새 플래그십 부티크가 문을 열었다. 이 자리를 빛낸 것은 통산 7회 포뮬러1(F1) 월드 챔피언이자 리모와 글로벌 앰버서더인 루이스 해밀턴이었다. 극한의 스피드로 트랙을 돌며 공기 저항을 최소화 해 0.1초 승부를 가르는 전설적인 레이서다.

'Crafted for You'는 안감, 가죽, 이니셜, 컬러 및 마감 옵션을 선택해 수트케이스를 개인화할 수 있는 맞춤 제작 서비스. 실버 컬러의 클래식 수트케이스에 한해 쾰른 부티크에서만 제공한다.

수트케이스 회사가 디자인 인재를 길러내고, F1 챔피언을 앞세워 매장을 열며, 스스로를 ‘모빌리티 브랜드’라 부른다. 1898년 쾰른의 작은 마구(馬具) 공방에서 출발한 이 독일 메종은 리모와의 대표적인 디자인이자 럭셔리 러기지의 상징처럼 자리잡은 ‘알루미늄 그루브’ 그 너머로 무엇을 향하고 있을까. 어떤 점에서 리모와가 여느 럭셔리 러기지 브랜드와 다른 지, 독일 디자인 프라이즈와 쾰른 플래그십 스토어 오프닝 등 이벤트 현장을 찾아 그 답안을 찾아갔다. 지난해 합류한 리모와 최고마케팅책임자(CMO) 마티유 플레니외와 나눈 이메일 인터뷰는 이를 풀어갈 중요한 열쇠가 됐다.

리모와 글로벌 최고마케팅 책임자 마티유 플레니외(Mathieu Plenier).

플레니외 CMO는 디자인 프라이즈에 대해 “신진 디자이너와 모빌리티의 미래에 투자하는” 일이자, “리모와를 시대정신과 연결하는 장치”라고 강조했다. 시상식 개막사에서 참여 학교가 15곳에서 40곳으로 늘었다고 밝혔다. 독일 명품 카메라 라이카의 사진·디자인 부문 부사장 스테판 다니엘, 지멘스 헬스니어스의 산업 디자인 책임자 팀 리히터 등 독일 산업 디자인의 거장들이 멘토와 심사위원으로 참여하며, 이 상의 무게감을 키웠다. 디자인 시상식이 리모와가 설계하는 미래 지형도의 한 단면이라면, 쾰른 플래그십 스토어는 리모와의 헤리티지를 되새기며 진화의 역사를 한눈에 보게 한다. CMO 마티유 플레니외는 ‘헤리티지’라는 단어를 곧장 ‘엔지니어링’으로 옮겨놓는다.

“1898년 쾰른에서 시작된 리모와는 20세기를 거치며 이동의 인프라가 변할 때마다 소재와 디자인, 구조를 함께 진화시켜 왔습니다.” 그가 말하는 진화의 좌표는 명확하다. 1937년 알루미늄 그루브, 2000년 폴리카보네이트 도입, 그리고 까다로워진 환경에서도 부드러운 이동을 가능하게 한 멀티휠 시스템 등이다. “점점 더 까다로워지는 환경에서도 손쉬운 여행을 가능하게 했죠. 우리는 이를 ‘잉게니어스쿤스트(Ingenieurskunst), 즉 엔지니어링의 미학’이라 부릅니다.” 이 철학을 떠받치는 것은 전 세계 150곳이 넘는 매장 내 고객 서비스 센터와 외부 수리 센터다. “가방이 어떻게 움직이고 다뤄지며, 마모를 견뎌내고, 시간이 흘러도 신뢰받는 동반자로 남을 수 있는지에 대한 이해에서 출발하는 접근입니다. 자원 활용에 대한 인식이 높아지는 시대에, 내구성에 대한 강조는 ‘지속성’을 핵심 가치로 자리매김합니다.” 흥미로운 것은, 그가 헤리티지를 “지난 시간의 보관함”이 아니라 “현재의 신뢰성을 설계하는 알고리즘”으로 다룬다는 점이다.

왼쪽부터 1위 수상자 사무엘 나겔(Samuel Nagel)과 폴 파일러(Paul Feiler), 그리고 리모와의 CEO 베아트리체 몬구이디 (Beatrice Monguidi). /리모와 제공

리모와가 LVMH에 인수된 2017년 이후의 성장은 외신도 주목한다. LVMH 합류 이후 리모와의 럭셔리 브랜드로서의 궤적을 두고 그룹의 핵심 성장 동력 중 하나라고 평가했다. 쾰른 플래그십은 그 성장의 상징적 무대다. 1898년 첫 수리 워크숍이 있던 역사적 장소 인근. 다시 말해, 리모와의 ‘0번지’에서의 재출발이다. 쾰른 부티크는 현지 크리에이티브 스튜디오 메이레 & 메이레와의 협업으로 완성됐다. 입구의 웅장한 콜로네이드(지붕을 떠받치도록 일렬로 세운 돌기둥)를 지나면 쾰른 하늘의 장미목도리앵무새에서 영감받은 애니메이션이 펼쳐지고, 쾰른의 상징적 다리에서 따온 녹청색 파티나 컬러 브뤼켄그륀 이 대형 계단과 엘리베이터를 감싼다. 도시의 풍경이 그대로 인테리어 문법이 된 셈이다. 20세기 초 제품부터 최신 협업 컬렉션까지 아우르는 헤리티지 월(wall·벽면), 전문 수리를 담당하는 클라이언트 케어 센터가 한 공간에 모였다. 핵심은 메자닌 층 아틀리에에서만 운영되는 비스포크 주문 제작 프로그램 ‘크래프티드 포 유(Crafted for You)’다. 고객이 케이스의 크기와 비율은 물론 이니셜 각인, 가죽, 라이닝, 컬러, 마감까지 직접 고를 수 있다. 실버 알루미늄 케이스 기준 100만 가지 이상의 조합이 가능하다는 점에서, ‘평생 보증’의 다른 얼굴이 곧 ‘평생의 개인화’임을 보여준다. 첫 작품으로는 해밀턴을 위한 맞춤형 바이닐(LP) 케이스가 공개됐다. 베아트리체 몬구이디CEO는 “쾰른은 리모와의 고향이자 영감의 도시”라며 “‘크래프티드 포 유’를 선보이기에 가장 적합한 장소”라고 했다.

‘모빌리티(이동)’에는 문화의 확산도 빠질 수 없다. 그런 점에서 플레니외 CMO는 혁신 키워드로 ‘K컬처’를 빼놓지 않았다. “한국은 우리의 창의적 활동에 지속적으로 영감을 주는 원천이었습니다. 혁신적인 한국 아티스트·크리에이터와 협업해 온 풍부한 역사가 있죠. 앞으로 현지 아티스트, 문화 혁신가들과의 파트너십을 더 발전시킬 계획입니다.” 그는 “전 세계적으로 급부상하는 한국 문화의 영향력을 활용해, 음악·스포츠·영화 등 다양한 분야의 한국 인재들과의 협력을 확대하는 데 점점 더 집중하고 있다”고 덧붙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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