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미란의 무게여 안녕] 역도보다 무거운 편견, 시원하게 내던지자

장미란 용인대 교수·역도 올림픽 금메달리스트 2026. 6. 18. 23:3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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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수 시절 문신·염색에 편견이 있었다
“쟤는 어떡하려고…” 탄식 뱉으며 걱정
강단에선 다양한 모습들 이해하려 노력
슬리퍼 신고 온 학생에겐 상냥한 협박
그런데 질책 아닌 관심이 그를 변화시켜
서로의 다름 이해해야 변화가 시작된다
/일러스트=양진경

새로운 학생들을 만나는 일은 늘 신나고 재미있다. 보통 내 수업을 듣는 학생들은 다 착하다. 그들이 내 기대에 부응하기 위해 노력하는 모습에 고마움을 느낀다. 기질과 성향이 다른 학생들을 가르치는 일이 쉽지는 않지만 고마운 학생들을 위해 나도 성심껏 수업을 준비한다. 관계는 한쪽만 노력해선 균형을 맞추기 어렵다. 학생들과 나는 서로의 입장을 배려하며 함께 노력한다. 물론 한쪽 의견만으로는 모든 것을 알 수 없지만, 내가 느낀 감정들은 그들도 어느 정도 느꼈을 것이라고 생각한다.

내 공부는 어려워도 재밌게 할 수 있는데 누군가를 가르치는 일은 해도 해도 부족한 것 같아 늘 마음이 무겁다. 가끔 “선수 시절 세운 세계 신기록이 지금보다 더 가벼웠던 것 같아”라는 혼잣말로 당시와 지금의 무게를 저울질하며 강의실로 향한다. 그렇게 무거운 발걸음으로 들어가면 환한 미소로 나를 반기는 학생들이 있다. 사실 매번 웃지는 않지만 그럴 때면 나는 더 큰 목소리로 인사하고 웃으며 들어간다. 아침은 뭘 먹었는지, 잠은 잘 잤는지 등 소소한 일상을 나누고는 “오늘은 날씨가 좋으니 더 열심히 공부하자”며 집중력을 끌어올린다.

우리 학교에는 체육 특기자가 많은데 운동과 학업을 병행하느라 애쓰는 모습이 안쓰럽고 대견하다. 시대가 변하면서 대학 스포츠 환경은 점점 열악해지고 있다. 특히 덥거나 추운 방학에 시합이 몰려 학생들이 힘들어하는 모습을 보면 마음이 무거워진다. 피곤한 몸을 이끌고 온 그들을 위해 나는 웃음총을 가득 장전하고 수업에 들어간다. 다양한 학생들 속에서 유난히 눈에 띄는 아이들이 있다. 샛노랗게 머리를 염색한 아이, 휘황찬란한 문신을 한 채 뒤에 앉아 나를 신기한 듯 바라보는 아이….

사실 나는 염색과 문신에 대해 편견이 있었다. 선수 시절 후배들이 과한 염색과 문신을 하고 오면 세상 끝난 것 같은 탄식을 내뱉으며 “쟤는 앞으로 어떡하려고 저러나…” 걱정했다. 여동생이 한쪽 귀에 4개의 귀걸이를 하고 온 날도 나는 그녀를 위해 기도했다. 나와 다른 이들의 행동에 의문을 품을 때가 많았는데 이제는 멈추었다. 나도 귀를 뚫었고, 검은 뿌리가 보이면 바로 염색하러 간다. 이전엔 차분하고 단정한 모습이 좋았다면 지금은 좀 화사한 것도 좋다. 어려서부터 무게와 관련이 깊은 삶을 살아서인지 발랄한 분위기에 마음이 기운다. 주변 사람들이 잘 어울린다고 말해주고 예쁘다고 칭찬해주니 그것도 큰 기쁨이다.

역도 선수 출신 장미란 용인대 교수 /이신영 영상미디어 기자

간혹 물음표가 생길 땐 ‘혹시 나도 언젠가…’라는 마음으로 사람들을 바라본다. 그러다 보니 ‘그럴 수도 있지’라는 이해가 쉬워졌다. 나는 표정이 좀 굳은 아이들에게 말을 걸고 별명을 지어준다. 팔목에 사슴 문신을 한 ‘루돌프’와 등에 호랑이 한 마리를 지고 있던 ‘타이거’는 지금도 기억난다. 철없던 시절을 후회했던 루돌프와 타이거는 늘 맨 뒤에서 내 수업을 들었다. 그러던 어느 날 맨 앞자리에서 웃으며 나를 기다린 적이 있었는데 그때의 감격을 잊을 수 없다. 나의 말을 잘 따라 주는 학생들에게 나는 더욱 최선을 다하려 노력했다. 그렇게 우리는 서로 마음에 들고 싶어 노력하면서 관계가 자라났다.

어느 날, 한 학생이 수업 시간에 슬리퍼를 신고 왔다. 순간 욱하는 마음을 누르고 ‘어떻게 하면 저 아이의 기분을 상하지 않게 슬리퍼를 벗길 수 있을까’ 고민하며 수업을 시작했다. 그리고 쉬는 시간, 나는 그에게 웃으며 다가가 “발 시리지 않아?”라고 물었다. 그 아이는 “아니요!”라고 답했다. 따스하고 화사한 5월이었던 것 같다. 나는 다시 웃으며 “발 시릴 것 같은데?”라고 했고 그 아이는 잠시 난처한 표정을 지었다. 나는 더 가까이 다가가 이렇게 말했다.

“나는 네가 좀 더 좋은 태도로 수업을 들으면 좋겠고 잘했으면 좋겠어. 그런데 이렇게 슬리퍼를 신고 들어오면 나는 속상해. 사람은 보이는 모습도 중요하거든. 내 수업은 괜찮지만 습관이 되어 다른 수업에도 신고 갈까 봐 걱정되기도 하고. 그리고 슬리퍼를 신으면 평소와는 다른 발 움직임과 근육 사용으로 다칠 수도 있으니 이왕이면 더 나은 선택을 하는 게 어때? 또 만약 네가 선생님인데 학생이 수업에 슬리퍼 신고 오면 기분이 어떨지 너무 궁금한 걸?”

나는 숨 쉴 틈도 안 주고 이렇게 따발총처럼 이야기했다. 머쓱해하는 그 아이를 위해 나는 “오늘은 괜찮아, 처음이니까. 하지만 다시 반복되면 알지? 내가 무슨 운동을 했었는지 기억해 줘”라고 상냥한 협박을 함께 건넸다. 그 아이는 다시는 슬리퍼를 신고 오지 않았고 수업에 더 열심히 참여했다. 다행히 우리는 서로의 입장을 이해해 주었고 한 학기를 잘 마칠 수 있었다. 편견만 가지고 있었다면 이해하기 어려웠을 텐데 ‘이유가 있겠지, 그럴 수도 있겠구나’라고 조금 넓게 생각하니 내 마음이 더 편하고 여유가 생기기 시작했다.

살면서 나와 다른 생각을 가지고 행동하는 사람을 많이 본다. 그때마다 ‘왜?’라고 생각하면 계속 물음표가 생길 것이다. 그냥 지나칠 수 없는 내 모습을 보며 내가 더 괴로울 수도 있을 것이다. 거꾸로 ‘나도 그럴 수 있어, 내가 모르는 상황이 있을 거야’라고 상대의 입장을 조금 더 생각해 보자. 부모님은 “이 세상은 혼자 살 수 없다”고 하셨다. 둥글게 둥글게 사는 세상이 결코 쉽지 않지만 함께 살아가는 기쁨과 행복감을 맛본다면 힘겹던 모든 것이 싹~ 잊힐 것이다. 내 마음을 어렵게 한 것들은 휙~ 내던져 보자. 오늘은 새로운 날, 홀가분한 마음으로 새롭게. 날마다 다시 시작!

2012 런던올림픽 당시 메달 획득에 실패한 역도의 장미란이 바벨을 어루만지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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