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핵’ 미루고, 탄도미사일 쥐고, 호르무즈 통제권까지 챙긴 이란

정유진 기자 2026. 6. 18. 21:3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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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4개 조항에 어떤 내용 담겼나
마크롱과 식사 중 서명하는 트럼프 트럼프 대통령이 17일(현지시간) 프랑스 베르사유궁에서 마크롱 대통령과 저녁 식사를 하다 이란과의 종전 양해각서에 서명하고 있다. 백악관 엑스

미국 ‘무상 통항’ 강조하던 호르무즈…이란 “60일 이후엔 수수료”
이란 재건 기금 조성에 원유 제재 유예…동결 자산 해제 약속도
대부분 트럼프 목표와 배치…핵 관련 쟁점 모두 본협상으로 미뤄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은 17일(현지시간) 공개된 이란과의 종전 양해각서(MOU)를 놓고 “우리는 목표 그 이상을 이뤘다”고 말했다. 하지만 MOU 조항들을 뜯어보면 트럼프 대통령이 이번 전쟁을 통해 이루고자 했던 목표와 상당 부분 상반된 내용이 담겨 있음을 알 수 있다.

트럼프 대통령이 공언했던 이란 탄도미사일 능력 파괴 등은 합의 대상에서 사라졌다. 이란 핵 프로그램 제거 문제는 본협상으로 미뤄졌다. 반면 이란 정권은 ‘호르무즈 해협 통제권’이란 강력한 레버리지를 얻었고 경제난을 돌파할 재정적 인센티브까지 챙겼다.


14개 항으로 구성된 종전 MOU는 1항부터 논란에 휩싸였다. 이 조항은 레바논을 포함한 모든 전선에서 군사작전의 즉각적이고 영구적인 종료를 선언하며, 레바논의 영토 보존과 주권 보장도 약속한다. 이스라엘은 자신들은 MOU 체결 당사자가 아니므로 합의에 구속되지 않는다며 레바논에서 군사작전을 중단할 뜻이 없음을 분명히 했다. 이 조항은 이란이 이스라엘의 헤즈볼라 공격을 빌미로 언제든 미국에 합의 위반을 선언할 수 있는 근거로 작용할 수 있다.

5항은 가장 논쟁적인 조항 중 하나다. 이 조항의 핵심은 호르무즈 해협이 60일 동안만 무료 개방되며, 호르무즈 해상 서비스 체계는 이란·오만이 함께 정한다고 돼 있다. 이란은 60일간의 ‘무상 통항’ 기간이 끝나면 해협을 통과하는 선박에 해협 관리 대가로 ‘서비스 수수료’를 받겠다고 선언한 상태다.

6항은 미국이 역내 파트너들과 함께 이란의 재건 및 경제 개발을 위해 최소 3000억달러(약 450조원) 규모의 기금을 조성하고 그 이행 계획을 60일 안에 최종 합의의 일부로 확정할 것을 명시했다. 이는 이란의 재건을 지원할 기금이 없으면 최종 합의도 없다는 조건을 뜻한다.

재건기금은 이란이 요구해온 ‘전쟁 피해 배상금’의 대안으로 나왔다. 미국은 여기에 미국의 세금은 한 푼도 들어가지 않을 것이며 걸프 동맹국과 아시아 국가들이 출자를 약속했다고 주장했다. 미국이 일방적으로 일으킨 전쟁의 뒤처리를 동맹들에 떠넘기고 있다는 비판이 제기된다.

7항은 최종 합의가 성사되면 유엔 안전보장이사회와 국제원자력기구(IAEA)의 결의, 미국의 1·2차 제재를 포함해 이란에 대한 모든 종류의 제재를 종료한다고 명시했다. 이는 이란과의 비핵화 합의를 조건으로 테러, 인권침해, 대량살상무기 등에 대한 대이란 제재를 없앤다는 의미로 해석될 수 있다.

10항은 MOU 서명 즉시 이란의 원유 및 석유제품에 대한 모든 제재를 유예한다는 내용을 담고 있다. 트럼프 행정부는 그간 “MOU에 서명했다는 이유만으로 이란에 주어지는 돈은 한 푼도 없을 것”이라고 한 바 있다.

11항은 미국은 최종 협상 타결이 아닌 MOU가 이행되는 시점에 이란의 동결 자금을 사용 가능한 상태로 만들 것을 약속하고, 해당 자금은 이란이 지정하는 모든 최종 수혜자에게 지급될 수 있도록 한다고 적었다. ‘이란이 정하는 최종 수혜자’에게 자금이 제공된다는 문구는 이란군이나 미국의 제재 대상 명단에 오른 기업들이 수혜자가 될 수도 있음을 의미한다.

전쟁을 끝내고 이란과의 핵 협상을 지속하기 위해 이란에 ‘당근’을 제시하는 것 자체를 무조건 비판만 할 수는 없다는 지적도 나온다. 문제의 핵심은 이 같은 ‘당근’을 대가로 미국과 국제사회가 무엇을 얻어낼 수 있느냐는 것이다.

이란 핵에 관한 내용으로는 8항에 ‘이란은 핵무기를 획득하거나 개발하지 않을 것임을 재확인한다’고 명시됐다. 하지만 미국과 이란은 가장 민감한 쟁점인 이란의 고농축 우라늄과 핵 프로그램에 대한 구체적인 논의를 모두 본협상으로 미뤄놨다. 이 조항에서 확인할 수 있는 것은 이란이 IAEA 감시하에 고농축 우라늄을 희석하는 데 동의했다는 점뿐이다. 고농축 우라늄을 미국으로 반출해 폐기하겠다던 기존 입장에서도 물러선 것이다.

뉴욕타임스는 “이란의 다른 주요 핵시설은 어떻게 할지, 이란의 핵 프로그램 중단 기간을 몇년으로 해야 할지, 또 사찰 체제는 어떻게 구축할 것인지 등 본협상에서 해결해야 할 수많은 쟁점을 남긴다”고 지적했다. 트럼프 대통령은 18일 트루스소셜에 “주식시장이 방금 사상 최고치를 기록했고 유가도 ‘폭락’하고 있다”며 “그런데도 내가 이란을 충분히 강경하게 다루지 않았다고 생각하는 이 바보들은 질투심에 눈이 멀었거나, 악하거나 아니면 멍청한 사람들”이라고 비판했다.

워싱턴 | 정유진 특파원 sogun77@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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