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세를 월세로 바꾸고 전부 주식 투자”…증권사 창구에 현금 다발 들고 줄 섰다[머니무브 뉴웨이브]

홍태화 2026. 6. 18. 18: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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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 한 증권사 투자센터에서 60대 이상 투자자가 상담을 받고 있다. 문이림 기자

[헤럴드경제=홍태화·송하준·문이림 기자] “전세 대신 월세를 살기로 했어요. 그 돈은 지난 2월에 주식에 전부 넣었습니다.”

6월 초 서울 한 증권사 투자센터. 점심시간이 막 지난 시간이지만, 객장은 사람들로 가득 차 있었다. 번호표 발급기 앞에는 대기 줄이 늘어섰고 상담 창구마다 고객들이 자리를 메웠다. 직원들은 계좌 개설부터 상장지수펀드(ETF) 매수 방법, 의무교육 이수 절차를 설명하느라 분주했다.

눈에 띄는 건 연령대였다. 객장 대부분은 60~70대 고객들이었다. 돋보기안경을 코끝에 걸친 채 스마트폰 화면을 확대하거나, ETF 이름이 적힌 종이를 창구 직원에게 내밀었다. 자녀와 함께 계좌 개설 서류를 챙겨온 이들도 곳곳에서 눈에 띄었다.

번호표를 뽑은 고객들은 벽면 시황 전광판과 휴대전화 주식 앱을 번갈아 바라보며 자신의 차례를 기다렸다.

“교육까지 다 들었는데 레버리지 ETF가 왜 매수 안 되느냐”, “ISA 계좌를 만들려면 뭘 준비해야 하느냐”는 등의 질문이 쏟아졌다. 증권사 객장은 마치 시니어 투자 교실 같은 풍경이었다.

▶안부보다 먼저 묻는 삼전 주가…레버리지 사러 ‘한달음’ = 이 센터에서 만난 60대 A씨는 “요즘 모임에 가면 인사보다 주식 얘기를 먼저 한다”고 손사래쳤다. “삼성전자로, SK하이닉스로 얼마 벌었는지가 요즘 가장 큰 화두이지. 예전엔 물가, 건강 얘기를 했는데 이젠 반도체 얘기가 더 많아.”

70대 B씨도 “최근처럼 주변에서 투자 이야기를 많이 하는 건 유례가 없었다“고 했다. 이어, “반도체가 좋다, ETF가 좋다 하는 이야기를 계속 들으니 관심을 안 가질 수가 없다”고 덧붙였다.

이날 객장을 찾은 고령층 고객의 가장 큰 관심사는 단일종목 레버리지 ETF였다. 해당 상품이 상장됐다는 소식에 바로 지점부터 찾았다는 이들이 다수였다. 온라인으로도 관련 교육을 이수 받고 매수가 가능하다. 하지만 스마트폰이 익숙하지 않은 고령층 고객들은 지점으로 발걸음을 재촉했다.

또 다른 서울 한 증권사 투자센터. 이날은 단일종목 레버리지 ETF가 상장된 날이었다. 이날 오후 2시 30분 기준 대기인원은 23명. 이 중 60~70대 고령층이 13명이었다.

번호표 발급을 담당하는 직원은 “지금 번호를 뽑으면 1시간 30분 정도 기다리셔야 한다”고 안내했다. 오후 3시가 되자 번호표 발급마저 마감됐다.

서울 양천구에 거주하는 C(59)씨는 “한 달 전쯤 뉴스에서 SK하이닉스 레버리지 상품이 나온다는 소식을 보고 관심을 가졌다”며 “직접 사보려고 했는데 교육 사이트 접속이 원활하지 않아 지점에서 도움을 받을 수 있을까 해서 찾아왔다”고 말했다.

한 고령층 투자자가 투자 상담을 받은 뒤 관련 서류를 들고 있다. 문이림 기자

센터 관계자는 “국내 첫 단일종목 레버리지 상품이 상장되면서 사전 의무교육 이수 방법을 문의하는 고령 고객들이 지점에 많이 찾고 있다”며 “평소보다 지점이 훨씬 붐비는 상황”이라고 말했다.

급한 마음에 심지어 현금을 들고 주식을 매수하겠다며 지점을 찾는 이들도 있었다. 이 관계자는 “지방에서 현금다발을 들고 직접 지점을 찾아온 분도 있었고, 은행 이체 한도 때문에 하루에 옮길 수 있는 금액만큼만 인출해 투자 상담을 받으러 온 고객도 있었다”고 말했다.

부동산에서 주식으로 자금을 옮긴 고령층 투자자도 쉽게 찾을 수 있었다. 78세인 D씨는 “이사를 해야 하는 상황에서 (전세가 아닌) 월세를 살기 시작했고, 해당 자금은 지난 2월 주식에 전부 넣었다”고 말했다.

처음 증시에 발을 들이려는 노년층의 발길도 이어졌다. 딸의 손을 잡고 지점을 찾은 오모 씨(62)는 직원에게 “소득이 없는데 개인종합자산관리계좌(ISA) 계좌를 만들 수 있냐”고 물었고 직원은 “소득증명 확인서를 발급받아야 계좌 개설이 가능하다”고 안내했다.

▶객장 뿐만 아냐…예배당에서도 주식 토론 삼매경 =서울 은평구의 한 교회. 예배를 마친 장년층 신도들이 삼삼오오 모여 웅성거렸다. 입에서는 자연스럽게 주식 이야기가 흘러나왔다. 성경책을 가방에 넣던 손으로 주식 앱을 켜는 풍경은 이제 이곳에서 낯선 일이 아니다.

노인 세대들이 위험 자산인 주식시장으로 발을 들인 가장 큰 이유는 ‘예금금리에 대한 갈증’이다. 경기도에 거주하는 65세 주부 E씨는 “은행에 돈을 묻어두자니 이자가 너무 아쉬웠다”며 “그나마 뉴스를 틀면 매일 나오는 게 삼성전자, SK하이닉스라 안심하고 투자하기 시작했다”고 말했다.

생활고와 투자의 경계에서 아슬아슬하게 줄타기하는 이들도 많다. 서울 은평구 불광동에 거주하는 62세 주부 F씨는 “주식이 오를 것 같아 더 사고 싶다가도 생활비나 카드값, 헬스장 비용 등 생활비가 걱정되니 결국 보유 종목을 일부 정리하게 된다”고 했다.

공격적인 투자도 늘고 있다. 강민국 국민의힘 의원실이 국내 10대 증권사를 통해 취합한 60대 신용거래융자 잔고는 지난 4월 기준 전년 동기 대비 두배 이상 늘어난 8조3035억원에 달했다. 신용거래융자 잔고는 투자자가 주식 투자를 위해 증권사로부터 자금을 빌린 뒤 갚지 않은 금액이다. 통상 주가 상승을 기대하는 투자자가 많을수록 신용거래융자는 늘어난다.

업계에서는 최근 증시 상승세가 이어지면서 ‘상승장에서 소외될 수 있다’는 불안 심리가 투자 확대를 부추긴 것으로 보고 있다. 특히 고령층은 은퇴 이후 소득 공백을 메우거나 노후 자산을 빠르게 늘리기 위해 레버리지 투자를 선택하는 경향이 강해졌다는 분석이다.

그러다 보니 고령층을 노리는 덫도 많아졌다. 유튜브나 SNS를 통해 무분별한 종목 추천이 쏟아지고 그에 따라 무분별하게 투자에 뛰어들 수 있어서다. 서울 구로구에 거주하는 60대 초반 회사원 F씨는 “주변에서 그런 경우를 본 적은 있는데 결국 다 사기더라”고 토로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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