꽃이, 들어왔다…조상들의 삶과 우리의 삶에 ‘손끝에서 핀 나날의 꽃’ [전시리뷰]
서적·도자기·회화 등 유물 115점 통해 화훼 농업의 역사·문화 조명
전시장 입구서 만나는 생화 향기 속, 일상과 사유 공간 넘나드는 조상들의 숨결

꽃은 문화를 피워낸 오래된 씨앗이다. 자연의 일부로 감상의 대상에서 농업과 문화, 산업으로 이어지며 스스로 피어났다. 자연에서 담장을 넘어 정원으로 들어왔고, 도자기와 회화의 주요 소재는 물론 약용으로도 쓰이며 안방과 부엌에도 자리했다.
국립농업박물관이 지난 9일부터 기획전시실에서 선보이는 2026년 소장품전 ‘손끝에서 핀 나날의 꽃’은 박물관이 수집하고 보존해 온 서적, 도자기, 회화 등 115점의 유물을 통해 자연의 꽃이 어떻게 우리 삶 속에 스며들어 농업과 문화, 산업으로 확장됐는지를 입체적으로 보여준다. 소장품을 통해 스스로 확장하며 피어나는 꽃, 도자와 그림 등으로 쓰이며 사람의 손끝에서 피어난 꽃의 주제가 향기처럼 은은하게 드러났다.
전시는 3부로 구성됐다. 제1부 ‘가까이 머물다’에서는 조선시대 궁중 정원에서 시작된 조선 시대 화훼의 역사를 보여준다. 조선시대 궁궐의 화훼 관리를 전담하던 관청 ‘장원서’의 기록과 ‘경국대전’을 통해 꽃이 제도 안에서 관리, 사용됐다는 것을 알 수 있다. 내의원과 왕실에서 사용하던 그릇에선 길상의 의미로 쓰인 국화문, 칠보문이 눈에 띈다.

왕실의 품격 뒤로는 선조들의 깊은 사유의 공간이 이어진다. 우리나라 최초의 원예서인 ‘양화소록’이 수록된 ‘진산세고’ 앞에서는 꽃의 구체적인 재배법과 감상법을 보며 자연의 이치를 탐구했던 선조들의 숨결이 담겼다.
밖으로 나가거나 어딘가로 향해야 즐길 수 있던 자연은 이제 방으로 들어왔다. 다산 정약용의 시와 서책이 담긴 보물 ‘다산사경첩’, 집안에 누워서 책을 보며 자연을 근처에서 즐긴다는 의미의 ‘외유청’은 문화는 자연을 삶의 가장 가까운 곳에 두고자 했던 조상들의 풍류와 학문적 수양이 옮겨졌다.
제2부 ‘울타리 안에서 피우다’로 들어서면 더욱 깊숙이 일상 공간으로 파고든 꽃을 만날 수 있다. 사랑방에서는 선비들의 입신양명을 기원하는 소망이 꽃과 함께 피어났고, 여인들의 공간인 안채에서는 가정의 안녕과 평안을 바라는 애틋한 마음이 꽃과 새, 곤충들로 수놓였다.
안채 병풍으로 애용되던 모란과 새 그림은 부귀영화와 다산, 자손의 번창을 기원하는 간절한 염원이 담겨 있다. 규방 문화의 정수를 보여주는 보자기와 수저집에 곱게 스며든 국화는 가정의 안녕을 기원하는 손끝의 기도가 서렸다.

전시 공간 양옆을 채운 미디어 영상은 조화롭게 배치된 유물들과 공명하며 관람객이 마치 조선의 어느 사대부 정원과 안채를 직접 거니는 듯한 몰입감을 선사한다. ‘치유의 꽃’ 섹션에서는 꽃이 아름다움의 대상을 넘어 실제 삶을 가꾸는 약재로 널리 쓰였음을 보여주며, 직접 디지털 기기를 통해 관람객이 체험을 할 수 있도록 했다.
조선 후기, 그림을 즐기는 문화가 대중적으로 활발히 전개되면서 꽃은 마침내 민가의 울타리를 완전히 넘어선다. 제3부 ‘손끝에서 피우다’에서는 민화 속으로 들어온 꽃과 그 주변을 맴도는 곤충들의 의미를 통해 화훼 문화의 대중화와 생활문화 산업으로의 확장을 살필 수 있다.
이번 전시는 박물관이 소장품을 유물을 넘어 현재 우리의 이야기, 선조들과 우리 삶·문화를 꽃처럼 자연스럽게 품어낸 점이 눈에 띈다. 전시장 입구에선 은은한 생화 향기도 맡을 수 있다. 매주 꽃을 바꿔가며 관람객을 맞이하는 전시장 입구의 생화는, 이번 전시가 박제된 과거의 유물전이 아니라 ‘지금도 우리 곁의 이야기’임을 증명한다. 전시 관람을 끝낸 뒤엔 디지털 기기를 활용해 나만의 병풍을 만들 수 있는 코너도 마련돼 있다.
오는 7월 10일에는 장경희 전 한서대 교수의 ‘공예품’ 주제 명사 초청 강연도 예정돼 있다. 전시는 10월 5일까지.
정자연 기자 jjy84@kyeonggi.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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