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명의 변곡점, ‘시’의 가치가 드러난다

인간만이 오랫동안 끝까지 해낼 수 있는 일은 무엇일까? 인공지능이 문장을 만들고 그림과 음악 심지어는 사랑까지 생산하는 시대가 됐지만 여전히 인간만의 영역이 있다. 그 가운데 하나는 '시'가 아닐까? 역사학자인 내가 생각하는 시는 문학 장르를 넘어 인간이 세계와 관계를 맺고 존재의 의미를 탐색하는 가장 오래된 언어이다. 또 시인은 사물의 표면을 설명하는 해설자가 아니라 그 안에 숨어있는 질서와 떨림을 발견하는 탐험가이다.
나는 오랜 세월 자연과 가까이 지내온 편이다. 동굴을 탐험했고 산길을 걸었고 초원을 달렸으며 뗏목으로 긴 강과 대양을 항해했다. 그러면서 자연은 무질서하지 않다는 사실을 감지했다. 거친 파도에 리듬이 있고 사막의 적막에 흐름이 있으며 별들은 침묵 속에서 조화를 이루면서 빛났다. 생명은 홀로 존재하지 않았다. 모든 존재는 관계 속에서 살아가며 자연은 거대한 순환과 공명의 체계로 이뤄져 있다. 하지만 현대 문명은 이러한 관계의 감각을 약화시킨다.
현대인은 세계를 살아있는 '전체'로 보기보다 분석과 통제의 '부분'으로 이해한다. 자연은 자원으로 환원되고 인간은 경쟁과 소비의 대상으로 전락한다. 효율과 속도는 매우 높아지지만 성찰과 경외심은 약해져만 간다. 많은 정보를 얻었지만 깊은 통찰은 잃었고 지식은 늘어났지만 지혜는 얕아졌으며 연결망은 촘촘해졌지만 존재와의 관계는 멀어졌다.
이 문명의 변곡점에서 시의 숨겨진 가치가 다시 드러난다. 시는 정보를 전달하는 '기호'만이 아니라 존재를 일깨우는 '의미'이다. 한 편의 시를 읽고 마음이 움직이는 순간 잊혀진 감각이 깨어나고 무뎌진 영혼이 흔들린다. 존재의 깊은 자리와 마주하면서 다시 세계와 연결된다. 그래서 시를 쓰는 일은 수행과 비슷할 수밖에 없다. 오래 바라보고 오래 침묵하며 오래 기다린 끝에야 비로소 잘 삭은 언어를 얻기 때문이다. 좋은 시는 잘 꾸며진 문장이 아니라 존재와 깊이 만난 뒤에 탄생한 언어이다.
특히 시에서 중요한 것은 운율이다. 시는 심장의 박동과 파도의 반복, 계절의 순환과 별의 운행처럼 우주와 생명이 지닌 리듬을 인간의 언어 속에 담아내려는 노력이며 존재의 울림을 서로 공명하는 행위이다. 그런데 오늘날은 시가 설명과 주장, 상처입은 감상의 언어로 변색되곤 한다. 시인의 언어가 거칠면 정신도 거칠고 아름다움을 잃으면 영혼도 황폐해진다. 현실의 해석과 비판은 더욱 중요해지지만 그것만으로 시를 쓰는 것은 아니다. 시는 현실을 넘어 존재를 만나야 한다. 보이는 것 너머를 바라보고 말할 수 없는 것을 언어로 불러내야 한다.
이미 다가온 시의 위기는 곧 인간 감각의 위기이며 존재와의 단절이 만들어낸 시대적 징후이다. 문명의 위기가 깊어질수록 시의 역할은 더욱 중요해질 수 밖에 없다. 더 많은 시보다는 더 오랜 침묵 끝에 나온 시, 삶과 자연을 온몸으로 통과한 시가 필요해 진다. 시는 인간이 세계와 다시 공명하도록 이끄는 가장 오래된 미래의 언어이며 잃어버린 존재의 감각을 회복시키는 힘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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