종전 합의 ‘진짜 수혜자’는 파키스탄…대미 관계 복원해 존재감 키워
미·이란·걸프국·중국 모두에 채널

이란 전쟁 종전 협상에서 파키스탄이 예상 밖의 최대 수혜국 중 하나로 부상했다. 미국과 이란을 중재해 4월11일 이슬라마바드 협정 서명을 끌어낸 파키스탄은 대미 관계 복원, 이슬람권 내 외교 지위 제고, 중동 역내 새로운 다자 협력체 구성이라는 세가지 성과를 동시에 확보했다는 평가를 받는다.
이란 전쟁 발발 이전 파키스탄의 외교적 입지는 취약했다. 알카에다 지도자 오사마 빈 라덴 은신 의혹 등으로 테러와의 전쟁 과정에서 대미 신뢰는 크게 손상된 상태였다. 트럼프 1기 이후 미·인도 밀착이 가속화하는 한편 파키스탄은 기존 중국과의 밀착 관계를 강화해 워싱턴과의 거리를 더 벌렸다. 2025년 5월 인도와의 군사 충돌은 파키스탄의 지역 고립 우려를 키웠다. 이스라엘에 대한 강경 적대 정책 역시 서방과의 조율을 어렵게 했다.
파키스탄은 트럼프 2기 출범과 함께 대미 전략을 전면 재조정했다. 미국과 대테러 공조 재개, 희토류 등 핵심 광물 접근권 제공, 트럼프 연계 암호화폐 기업과의 양해각서 체결 등이 잇따랐다. 인도와의 군사 충돌 휴전과 관련해서는 트럼프의 중재 역할을 공개적으로 치하하며 관계 복원 의지를 드러냈다. 지난해 6월엔 파키스탄 정부가 트럼프를 노벨평화상 후보로 추천하기도 했다. 이후 트럼프는 지난해 10월 파키스탄의 실권자인 아심 무니르 육군참모총장을 “내가 가장 좋아하는 야전사령관”이라고 공개 언급했다.
파키스탄이 중재에서 주도권을 쥘 수 있었던 것은 지정학적 위치와 복합적 네트워크가 맞물린 결과다. 이란과 국경을 접하면서도 전화에서 벗어난 제3지대적 입지, 트럼프 행정부와의 복원된 채널, 이란과의 역사적 관계가 복합적으로 작용했다. 4월11~12일 이슬라마바드에서 미·이란 종전 협상이 열려, 파키스탄은 중동 분쟁의 주변부에서 협상 테이블의 주재자로 올라섰다.
휴전 이후 파키스탄은 사우디아라비아·튀르키예·이집트와 함께 호르무즈해협 개방·관리를 위한 협의체, 이른바 ‘이슬라마바드 그룹'을 출범시켰다. 트럼프 행정부가 이스라엘과 수니파 아랍국 간 관계 정상화를 목표로 추진해온 아브라함 협정 구도가 이란 전쟁으로 급격히 약화한 자리에, 이 협의체가 대안적 지역 외교 프레임으로 기능할 가능성이 제기된다. 걸프 국가들이 미국의 안보 보장만으로는 역내 안정을 담보할 수 없다는 인식이 확산된 결과이기도 하다.
하지만, 외채 비율이 높고 구제금융 의존이 반복되는 경제적 취약성, 핵보유국으로서의 안보 리스크, 미·중 모두와 긴밀한 관계를 유지하는 전략적 모호성은 언제든 부담으로 작용할 수 있다. 이슬라마바드 그룹 역시 협의 초기 단계로, 제도적 구속력을 갖춘 협력체로 발전할지는 미지수다.
그런데도 파키스탄이 미국·중국·이란·걸프 국가 모두와 실무 채널을 유지하고 영향력을 가진 드문 위치를 점하고 있어, 이란 전쟁 이후 중동 질서 재편 과정에서 그 역할이 주목된다.
정의길 선임기자 Egil@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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