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70년 파내려간 100m ‘땅의 속살’… 보석도시 빛낼 ‘돌의 신전’ 되다[박경일기자의 여행]
3대 화강암 ‘황등석’의 생산지
청와대 ‘13m 돌기둥’으로 쓰여
고갈 3년 남은 황등석산 채석장
복합문화공간으로 활용법 모색
파노라마 전망의 카페 만들고
폭 500m 석벽엔 미디어아트
호수·폭포·공연장 만들 예정
1980년대 귀금속보석으로 명성
중국 수입 열리며 보석공단 쇠락
다이아 대체 ‘큐빅’으로 전성기
테니스팔찌는 여전히 대표상품
보석산업, 문화관광산업과 연계
왕궁보석박물관 11만점 전시중
금 2133돈 미륵사지석탑 모형도

익산=글·사진 박경일 전임기자
# 최고의 화강암이 여기에 있다
모난 돌이 ‘먼저 맞는다’는 게 ‘정(釘)’이다. 석수장이들이 돌 깰 때 쇠망치와 함께 쓰는 장비. 전북 익산에서 출토된 유물 중에 고려 때 썼던 정이 있다. 국립 익산박물관이 소장하고 있는, 우리나라 최초의 철로 만든 정이다.
익산에서 돌 깨는 정이 나왔다는 건 의미심장하다. 익산에는 돌이 많다. 세상에 돌 없는 곳이 있을까만, 익산에 많은 건 ‘그냥 돌’이 아닌 ‘좋은 돌’이다.
익산은 돌로 이름났다. 구구절절 얘기할 것도 없다. 유네스코 세계유산인 미륵사지석탑이 익산에 있고 왕궁리 오층석탑도 있다. 두부 모처럼 잘라낸 미륵사지석탑의 색감과 왕궁리 오층석탑의 완벽한 비례를 이룬 지붕돌을 떠올려보자. 둘 다 익산의 좋은 돌이 재료다.
익산을 대표하는 돌은 화강암이다. 익산 하고도 황등면에서는 질 좋은 화강암이 많이 나서 황등면의 화강암을 따로 ‘황등석’이라 불렀다. 돌에다가 지명을 붙이는 건, 다른 특산물에 지명을 넣는 것보다 훨씬 더 적절한 일이다. 돌이야말로 ‘땅의 것’이라서 그렇다.
화강암이라고 다 같은 게 아니다. 파쇄석으로 만들어 철로 밑에 까는 하등품부터 거칠게 마감해 계단을 만드는 중등품, 매끄럽게 가공해서 내부 장식이나 기념비 등에 쓰는 상등품까지 다양하다.
황등석은 예나 지금이나 최상품의 화강암이다. 경기 포천에서 나는 포천석, 경남 거창의 거창석과 함께 ‘대한민국 3대 화강암’으로 일컬어졌다. 화강암의 질을 좌우하는 가장 큰 요소는 색이다. 시간이 가도 붉은 녹이 배어 나오지 말아야 하는 게 첫 번째 조건. 황등석은 철분이 적어 웬만해서는 붉은 녹이 나지 않는다. 오랫동안 밝은 회백색을 유지하고, 물에 젖으면 연한 초록색이다가 마르면 우아한 회백색으로 변한다. 미륵사지석탑이며 왕궁리 오층석탑을 보면 알 수 있다.
# 청와대를 받치는 돌기둥이 되다
서울로 올라가서 ‘출세한’ 황등석도 있다. 청와대 영빈관을 받치고 있는 기둥 얘기다. 1978년 지어진 청와대 영빈관은 18개 돌기둥이 건물 전체를 떠받들고 있는 형상의 웅장한 건물. 그중에서 전면의 4개 기둥이 큰 바위를 통째로 깎아서 만든 황등석이다. 돌기둥은 높이 13m에 둘레 3m의 ‘통짜’다. 기둥 어디서도 이음매를 찾을 수 없다. 이만한 기둥을 만든 돌이라면 대체 얼마나 컸다는 얘길까.
청와대 말고도 국회의사당과 대법원 청사에도 황등석이 쓰였다. 삼권분립의 중심기관에 황등석이 공평하게 다 들어간 셈이다. 양양 낙산사에서 동해를 내려다보고 있는 낙산사 해수관음상의 재료도 여기 익산에서 실어간 황등석 700여t이다. 황등석이 들어간 건축물을 꼽자면 한도 끝도 없다. 독립기념관, 전북도청, 익산경찰서, 부안 청자박물관, 영암 도기문화센터….
내로라하는 건축물에 두루 쓰인 황등석 대부분은 익산의 황등산(黃登山)에서 캐낸 것이다. 황등산은 익산시 황등면 황등리에 있다. 아니, 있었다. 산 전체가 화강암으로 된 해발 100m 남짓의 산이었는데, 170여 년 동안 땅을 파 들어가면서 돌을 캐내는 바람에 산은 진작 사라졌고 100m 깊이의 거대한 원형 구덩이가 됐다. 산은 사라지고 구덩이가 됐지만, 그곳은 여전히 황등석산(黃登石山)으로 불린다.
황등석산은 조선 철종 때인 1858년 청나라 사람이 처음 개발해 대를 이어 운영해왔다고 전해진다. 그게 누군지 어떤 연유로 여기까지 오게 됐는지는 알려진 게 없다. 청일전쟁 후 석산의 운영권은 일본인에게 넘어갔는데, 황등석의 명성이 시작된 건 이때부터다. 근대가 열리면서 전국에 지어지기 시작한 신식 근대건축물에 익산의 화강암이 대거 조달되면서 황등석 품질의 우수성이 알려지기 시작한 것이다. 그때 실려 나간 황등석이 지금은 사라진 조선총독부(중앙청)를 짓는 데 쓰였고, 아직 남아있는 한국은행 본점과 옛 서울역사가 됐다.

# 채석장과 고대 도시 유적
황등석산은 이제 ‘끝물’이다. 앞으로 3~4년이면 석산의 화강암 채석 작업이 마무리된다. 더 이상 캘 돌이 없어서다. 말하자면 황등석산은 수명을 다해가는 산업현장인 건데, 분위기는 그런 느낌과는 전혀 다르다. 거대한 고대도시의 신전이나 사라진 문명의 유적 발굴현장처럼 보인다.
황등석산은 아직 채석장인 채로 관광지 겸 복합문화공간으로 변모하는 중이다. 정식 명칭은 ‘황등석산 문화예술공원’. 보통 ‘어스 언더 파크(Earth under park)’로 불린다. 가장 먼저 들여놓은 제 1전망대 겸 카페의 상호가 ‘어스 언더 카페 앤 라운지’라서 그렇다.
카페는 순전히 석산 조망을 위해 채석장 한쪽에다 감각적으로 지은 것이다. 카페 건물은 위에서 내려다보면 삼각형 모양인데, 각 변마다 파노라마 시야가 있는 통창을 뒀다. 한 면의 통창으로는 석산 안쪽이 내려다보인다.
이곳에서 보는 황등석산의 모습은 ‘시각적 충격’이라 표현할 수 있을 정도로 압도적이다. 아득한 수직 벼랑 안쪽으로 깊고 거대한 타원형의 구덩이가 있다. 넓은 쪽 직경이 500m, 좁은 쪽은 300m다. 서울 잠실올림픽 주경기장을 이 구덩이에 통째로 넣는다면, 4개를 다 넣고도 공간이 남는다. 크기만 어마어마한 게 아니다. 두부 썰듯 화강암을 잘라낸 기하학적 흔적이 가득한 수직 절벽의 모습도 기이하다. 잘라낸 화강암 단면 틈으로 지하수가 새어들면서 비균질한 색감으로 물든 바위는 마치 추상미술 작품처럼 회화적이다.
까마득하게 내려다뵈는 채석장 바닥은 축구장 9개 넓이인 2만여 평쯤 되는데, 여기서는 아직도 채석작업이 이뤄지고 있다. 화강암을 자르는 거대한 절단장비와 자른 돌을 실어내 가는 대형 트럭이 마치 장난감처럼 보인다. 중장비와 트럭이 쉼 없이 들고나는 노동의 공간이자, 소음과 분진으로 골치 아픈 민원에 휘말리곤 했던 산업의 현장. 어스 언더 파크는 쇠락해가는 산업적 경관이 뜻밖에도 매력적인 관광과 문화의 공간으로 소비될 수 있음을 보여준다.
# 채석장 벽이 상영 스크린이 된다면
어스언더파크는 이제 막 출발선에 서 있다. 작년 10월 황등석산에 전망대 카페가 문을 열자마자 ‘MZ 세대’가 몰리면서 인기를 얻고 있지만, 아직 전체적인 공원 조성 공사 진척률은 10%에 불과하다. 카페 맞은편 북쪽 언덕 위에 한창 공사 중인, 3층 규모의 두 번째 전망 공간이 완공된다 해도 전체 공사의 진척률은 20~30%다.
황등석산의 경관을 콘텐츠로 가져다 쓰는 전망대가 30%라면, 거대한 구덩이를 채우는 공간 구성이 나머지 70%의 콘텐츠다.
구상단계의 다양한 아이디어가 있다. 폭 500m에 달하는 채석장 석벽 전체를 상영스크린 삼아 미디어아트를 보여주겠다는 계획도 있고, 호수를 만들고 폭포를 내건다는 아이디어도 있다. 한쪽에 오페라 극장이 들어설 수도 있겠고, K팝 공연장으로도 쓸 수 있겠다.
어스언더파크 조성을 진두지휘하고 있는 김대동 총괄PM은 “석산 내부로 관람객을 들여보내기 위해 내부의 타원형 벽면을 나선형으로 돌며 내려가는 모노레일을 구상하고 있다”고 설명했다.
조성공사는 아직 속도를 내지 않고 있다. 어차피 황등석산의 채석 기간이 남아있으니 서둘 수도 없다. 어스언더파크의 최종 완공은 5년쯤 뒤인 2031년으로 예정돼 있다. 속도조절을 하고 공간에 대한 수요와 조성된 공간에 대한 반응을 봐가며 밑그림을 계속 수정하면서 그려나간다는 계획이다.
어스언더파크 조성은 용도가 폐기된 산업 공간을 문화와 관광으로 다시 살려내려는 시도다. 이런 시도가 의미 있는 건 쓸모를 잃은 공간 재생의 측면도 있지만, 무엇보다 적잖은 경제적 이득이 있기 때문이다.
황등석산을 운영하는 황등산업은 채석작업이 끝나고 나면 채석장을 자연 상태로 복구해야 한다. 절개지를 덮고, 나무를 심어서 식생을 회복시키는 데는 엄청난 비용이 든다. 그런데 폐채석장을 근사한 복합문화공간으로 만들어낸다면 그 비용을 크게 줄일 수 있다. 문화공간으로의 재생이 기업 입장에서 적잖은 이익이 될 수 있다는 얘기다.

# 전 세계 ‘테니스팔찌’ 90%를 만들다
황등석만큼은 아니지만, 익산에서 유명한 게 또 있다. 이것도 ‘돌’ 얘기이긴 한데, 좀 다른 돌인 보석 얘기다. 한때 익산은 ‘보석도시’로 불렸다. 익산에서 보석이 나지 않는데도 그랬다. 익산이 보석도시가 된 건 순전히 ‘낙점’으로 인한 것이었다.
경위는 이렇다. 1970년대 초반 시작된 중화학공업 육성 정책의 일환으로, 정부는 전북 익산에 대규모 공업단지를 조성한다. 구미, 광주, 마산, 여수에 이은 다섯 번째 규모다. 익산의 공업단지는 부진했다. 입주하는 업체 수가 적어도 너무 적었다. 다른 도시들도 공업단지 운영에 어려움을 겪었다. 1973년 전국 22개 공업단지 업체의 가동 비율이 27%에 불과했다. 익산공업단지는 그중에서도 사정이 좋지 않은 쪽이었다.
고민하던 정부는 익산공업단지를 마산에 이은 두 번째 ‘수출자유지역’으로 지정하는 승부수를 던졌다. 그러고는 1975년 수출자유지역에 보석가공수출단지를 조성한다고 발표했다. 하필 보석 가공산업이었던 데는 이유가 있다. 오일 쇼크 직후였던 1975년 상반기 우리나라 수출총액이 전년 동기 대비 3분의 1토막이 났을 정도로 어려움을 겪고 있었는데, 귀금속과 보석만큼은 수출이 크게 늘었다. 귀금속과 보석 수출총액이 전년 동기 대비 205% 폭증했던 것. 스태그플레이션의 불황 속에서도 보석류 수출이 크게 늘자 정부는 보석을 미래 수출 성장산업으로 봤고, 그 산업의 적임지로 익산을 지목했던 것이었다.
익산의 귀금속보석산업은 1980년대 중반 최대 호황을 누렸다. 3저(低) 호황에 힘입은 경제성장으로 내수가 크게 증가하고 있을 때였다. 익산 보석산업의 전성기를 이끌었던 건 이른바 큐빅이었다. 큐빅은 다이아몬드의 대체 보석으로 각광 받았는데, 한때 익산은 전 세계 큐빅 수요량의 80%를 수출한 세계 최대 임가공생산기지였다.
# 쇠락한 산업을 살리는 구원투수
큐빅의 뒤를 이은 건 ‘테니스팔찌’였다. 미국 테니스 선수 크리스 에버트가 1987년 US오픈 경기 도중 평소 차고 다니던 다이아몬드 팔찌가 끊어지면서 코트 바닥에 떨어진 다이아몬드를 줍느라 경기가 중단되는 해프닝이 있었다. 관중들의 관심이 쏟아진 건 그가 착용한 팔찌. 작은 보석이 일렬로 박힌 형태였는데, 이후에 이런 모양의 팔찌에 ‘테니스팔찌’란 이름이 붙여졌다.
1980년대 말부터 1990년대 초까지 익산은 전 세계 테니스팔찌 수출물량의 90%를 점유하며 ‘귀금속 도시’라는 명성을 얻었다. 익산 큐빅의 명성이 합성보석의 연마기술에 힘입은 것이었다면, 테니스팔찌의 석권은 기술력을 넘어 세공기술이란 예술적 감각까지 두루 갖추게 됐다는 걸 증명했다.
테니스팔찌는 지금까지도 익산 보석의 대표상품이다. 테니스팔찌는 보통 3㎜ 크기의 보석 50여 개가 들어가는데, 보석의 종류와 팔찌의 귀금속 소재에 따라 가격은 천차만별. 다이아몬드가 물려있지 않아도, 순금팔찌가 아니어도 얼마든지 멋진 패션을 연출할 수 있다. 여행자들이 큰 부담 없이 주머니를 열 정도는 되는 가격의 테니스팔찌도 있다.
보석 도시 익산의 영광은 오래가지 않았다. 1991년 정부가 보석수입을 전면 자유화하면서 익산의 보석산업은 위기를 맞았다. 한·중 수교로 가공업체들의 중국행이 시작됐다. 외환위기도 보석산업에 치명상을 입혔다. 급기야 2010년 익산의 자유무역지역 지정이 해제되면서 보세구역이 갖고 있던 상징적 의미마저 사라졌다. 익산의 보석공단이 브레이크 없는 가파른 내리막길로 들어서게 된 과정이다.
경쟁력을 잃고 쇠락해가는 익산의 보석산업의 다른 출구로 모색된 게 ‘관광’이다. 보석산업을 문화관광산업의 영역으로 전환하는 시도가 이뤄진 것. 익산이 보석박물관을 개관하고 박물관을 중심으로 왕궁보석 테마관광지를 조성한 건 이런 배경이 있다. 뒤처지고, 무너지고, 쓰러져가는 것을 붙잡아 되살리기 위해 문화, 혹은 관광이 구원투수로 등판한 셈이다.

# 크기와 가격보다 보석의 광채를
왕궁보석박물관에서는 다양한 보석의 휘황한 광채를 볼 수 있다. 보석박물관을 제대로 즐기려면 필요한 건 ‘충분한 시간’이다. 전시 중인 보석이 11만 점이나 된다는데 이름을 아는 보석 종류는 스무 개나 될까. 이름도 모르는 보석을 보는 게 무슨 재미가 있을까 싶은데, 처음 본 보석이 뿜어내는 색깔과 화려한 광채가 신비롭게 느껴졌다. 휙휙 지나가며 봤을 때와 오래 관찰하며 봤을 때의 감상은 전혀 달랐다. 오래 보면 오래 볼수록 ‘오래 볼만한 충분한 가치’가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박물관에는 해외의 유명 보석세공사가 기증했다는 시가 수십억 원이 넘는다는 보석 꽃이 있고, 귀금속 장인이 미륵사지석탑을 25분의 1 크기로 축소해 순금으로 재현한 모형도 있다. 순금 2133돈으로 만든 미륵사지석탑 모형은 금 가격만 16억8000만 원이 넘는다.
# 관광공사 전북지사가 키우는 잠재관광지
왕궁보석테마관광지에서는 눈여겨본 시설이 ‘다이노키즈월드’다. 본래 화석박물관이던 곳을 모험활동 기반의 실내외 체험시설로 바꾼 곳이다. 다이노키즈월드에는 실내 체험시설 7개와 야외체험시설 2개가 있다. 실내 공간에는 슬라이드와 트램펄린, 아트 클라이밍, 스카이트레일 등의 놀이 시설이 있고, 야외에는 거대한 초식공룡 모형과 함께 설치한 2개 코스의 슬라이드 타워, 그리고 레일에 매달려 숲과 호수를 질주하는 롤러코스터 형식의 롤글라이더가 있다.
다이노키즈월드는 한국관광공사 전북지사가 지원, 육성하고 있는 ‘강소형 잠재관광지’다. 강소형 잠재관광지는 인지도는 높지 않지만 독특한 콘텐츠와 높은 관광자원 가치, 성장 가능성을 가진 관광지를 한국관광공사가 발굴해 지역대표 관광지로 육성하는 사업이다. 다이노키즈월드가 단연 돋보였던 부분은 이용객들의 적은 비용부담과 편의중심의 시설, 그리고 황송할 정도의 서비스였다.
덧붙이는 건 익산을 되돌아 나오는 길에 고도리 석조여래입상을 찾아간 이야기. ‘고도리’는 화투판 고스톱 용어가 아니라, ‘익산시 금마면 고도리’라는 지명이다. 그곳에 보물로 지정된 모딜리아니 그림을 닮은 길쭉길쭉한 석불입상이 있다. 이 여래상을 보고 안도현 시인이 시(詩)를 썼다. “내 애인은 바위 속에 누워 있었지/두 손 가슴에 모으고 눈을 감고 있었지/누군가 정으로 바위의 문을 두드리는 소리 들렸지/내 애인은 문을 밀고 바깥으로 걸어 나왔지/바위 속은 환했지만 바깥은 어두웠지/내 애인은 옛날부터 나를 알아보지 못했지.”
시에서 ‘정으로 바위의 문을 두드리는’ 장면을 읽다가 단단한 바위 속에서 정을 들고 석불을 찾아 꺼내는 석수장이의 일을 떠올렸다. 그게 시인에겐 곧 ‘시 쓰는 일’이었으리라. 그렇다면 익산이 정으로 쪼아서 돌에서 꺼내고 싶은 건 어떤 것들일까. 돌은 ‘무엇이 되기 전’의 은유. 그렇다면 어스언더파크도, 보석박물관도, 다이노키즈월드도 다 무엇이 되고 싶은, 돌이 아닌가.

■ 명소가 된 세계 폐채석장들
자원고갈로 방치된 채석장을 문화공간으로 재생한 세계적 명소가 적지 않다. 프랑스 남부 프로방스의 ‘빛의 채석장’이 대표적인 예. 석회암을 캐던 지하 동굴 내부공간이 명화를 상영하는 몰입형 미디어아트 공간으로 다시 태어났다. 오스트리아 장크트 마르그레텐 채석장은 암벽을 음향 반사판으로 활용해 유럽 최대 규모의 야외 오페라극장으로 변모했다. 캐나다 밴쿠버 섬의 부차트 가든도 채굴이 끝난 석회암 채석장을 꽃밭으로 다듬어낸 곳이다.
박경일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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