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칼럼] 코트 위에서 다시 피어난 꽃, 고민지의 부활이 전하는 울림



【발리볼코리아닷컴=김정훈 스포츠평론가】스포츠는 때때로 가장 아름다운 인간 승리의 이야기를 만들어낸다.
화려한 재능보다 포기하지 않는 의지, 압도적인 신체조건보다 끝까지 버티는 근성이 더 큰 감동을 주는 순간이 있다. 수원시청의 고민지가 바로 그런 선수다.




제주의 푸른 바다를 품고 자란 한 소녀는 어린 시절 체육교사의 권유로 처음 배구공을 만났다. 코트를 달리는 즐거움에 매료된 그는 더 큰 꿈을 위해 배구부조차 없던 고향을 떠나 홀로 대구로 향했다. 어린 나이에 가족과 떨어져 생활해야 했고, 낯선 환경 속에서 외로움과 어려움을 견뎌야 했다. 그러나 배구를 향한 열정만큼은 흔들리지 않았다.
그렇게 흘린 땀방울은 결국 프로 무대라는 결실로 이어졌다.
173cm라는 신장은 공격수에게 결코 유리한 조건이 아니다. 그러나 고민지는 자신의 한계를 누구보다 잘 알았고, 그 한계를 누구보다 치열하게 극복했다. 뛰어난 점프력과 영리한 경기 운영, 그리고 몸을 아끼지 않는 투혼으로 자신의 가치를 증명했다. 아웃사이드 히터와 리베로를 오가며 팀이 원하는 자리라면 어디든 묵묵히 채워 넣었고, 현대건설의 통합 우승 과정에서도 중요한 역할을 수행했다.
하지만 스포츠의 길은 언제나 순탄하지 않다.
오랜 시간 그녀를 괴롭혀 온 무릎 부상은 결국 선수 생활의 가장 큰 시련으로 돌아왔다. 끝없는 재활과 반복되는 통증 속에서 그는 2024-2025시즌 종료 후 자유신분선수로 팀을 떠나야 했다. 프로 무대에서 밀려났다는 현실은 누구에게나 큰 상처가 될 수 있다.
많은 선수들이 그 지점에서 무너진다. 하지만 고민지는 달랐다.


그는 실업팀 수원시청으로 향하며 다시 출발선에 섰다. 누군가는 이를 후퇴라고 보았을지 모른다. 그러나 고민지에게 실업 무대는 끝이 아니라 새로운 시작이었다.
그리고 단양에서 열린 2026 한국실업배구연맹 & 프로배구 퓨처스 챔프전은 그 선택이 틀리지 않았음을 증명한 무대가 되었다.



베트남 대회를 치르고 돌아온 직후여서 몸 상태는 완벽하지 않았다. 그럼에도 그는 공수 양면에서 누구보다 헌신적으로 뛰었다. 수원시청이 GS칼텍스를 비롯한 프로팀들을 차례로 꺾으며 파란을 일으키는 과정마다 고민지의 이름이 있었다.
특히 현대건설과의 결승전은 부활을 알리는 선언과도 같았다.
날카로운 공격과 결정적인 블로킹, 흐름을 바꾸는 서브 에이스, 몸을 던지는 디그까지. 그는 코트 위에서 자신이 왜 여전히 경쟁력 있는 선수인지를 증명했다. 그리고 마지막 세트, 우승을 확정짓는 강타는 마치 자신의 지난 시간을 향한 응답처럼 강렬했다.
결승전 최다인 14득점.
그리고 대회 MVP.


실업팀 수원시청이 프로팀들을 모두 제치고 정상에 오르는 역사적인 순간의 중심에는 고민지가 있었다.
그러나 팬들이 고민지를 사랑하는 이유는 기록 때문만이 아니다.
그는 경기장 밖에서도 늘 따뜻한 선수로 기억된다. 팬들 사이에서 '연쇄사인마'라는 별명으로 불릴 만큼 바쁜 일정 속에서도 팬 한 사람 한 사람에게 정성을 다한다. 힘든 재활과 방출, 이적의 아픔을 겪으면서도 밝은 미소를 잃지 않았고, 언제나 긍정적인 에너지를 주변에 전해왔다.
코트 위에서는 누구보다 치열하지만, 코트 밖에서는 누구보다 따뜻한 사람.
그래서 고민지의 배구는 단순히 득점으로만 평가할 수 없는 가치를 지닌다.
이번 우승과 MVP는 하나의 결과일 뿐이다. 진정한 의미는 그 과정에 있다. 무릎 부상과 방출이라는 좌절을 딛고 다시 일어선 끈기, 그리고 끝까지 자신을 믿었던 용기가 사람들의 마음을 움직인다.
스포츠가 감동을 주는 이유도 바로 여기에 있다.
누군가는 실패라고 말했던 시간이 결국 더 큰 도약을 위한 준비였음을 고민지는 자신의 플레이로 증명했다. 방출은 끝이 아니었고, 실업 무대는 타협이 아니었다. 오히려 그것은 다시 꽃피기 위한 새로운 토양이었다.
코트 위를 누비는 그의 모습은 마치 긴 겨울을 견뎌낸 뒤 다시 피어난 꽃과 같다. 작지만 강인하고, 화려하지 않아도 누구보다 아름다운 꽃이다.

부상의 아픔을 넘어 다시 날아오른 고민지의 이야기는 오늘도 많은 선수들에게 희망을 전한다. 그리고 팬들에게는 포기하지 않는 삶의 가치를 일깨워준다.
코트 위에서 다시 피어난 그 꽃이 앞으로도 오래도록 건강하게, 그리고 행복하게 자신의 이야기를 써 내려가기를 응원한다.
이 칼럼은 스포츠평론가 김정훈이 기고 한 글 입니다. 외부 칼럼의 경우 본지 편집 방향과 맞지 않을 수 도 있는 점을 밝힙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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