팔수록 손해인데 글로벌 공급과잉까지… 다시 벼랑끝 생존경쟁 [심층기획-전쟁특수 끝난 정유·석화 위기]
국내 정유 4사 1분기 영업익 6조 육박
LG화학 등 석화기업들도 흑자 봤지만
종전에 다시 재고 가치 떨어져 손실로
석화기업들, 저렴한 나프타 이미 소진
전쟁중 웃돈 들여 산 것으로 제품 생산
수익성 크게 떨어져 경영 전반 비상등
中·중동기업도 다시 제품 쏟아내 암울
17일 정유·석유화학업계에 따르면 국내 주요 정유사와 석유화학업체는 올해 1분기에 좋은 실적을 거뒀다. 정유 4사(SK이노베이션, GS칼텍스, 에쓰오일, HD현대오일뱅크)의 1분기 합산 영업이익은 6조원에 육박한다. 같은 기간 LG화학과 롯데케미칼, 한화솔루션 등 석유화학업체들도 나란히 흑자를 기록하며 오랜 부진을 털어냈다.

재고 효과와 함께 지연 효과도 영향을 미쳤다. 원재료를 구매한 시점과 이를 가공해 제품을 판매하는 시점 간 가격 차이가 벌어져 이익이 발생하는 현상이 지연 효과다.
지난 2월까지 비교적 저렴하게 사들인 원유와 나프타 원료로 생산한 석유와 화학제품 가격이 3월부터 폭등하기 시작하면서 이익이 극대화한 것이다. 특히, 석유화학업체들은 정부가 3월 추가경정예산을 통해 나프타분해설비(NCC)를 보유한 국내 기업을 대상으로 나프타 수입단가 상승분 차액의 50%를 보조한 덕도 봤다.
문제는 이러한 재고·지연 효과가 일시적인 현상에 불과하다는 점이다. 이 말은 곧 전쟁 특수가 사라지면 다시 생존위기를 걱정하던 과거로 돌아간다는 의미다.

게다가 2분기 들어서는 수익도 제대로 얻지 못하고 있다. 지난 3월13일 최고가격제 시행 이후 국내 시장 공급가가 제한됐기 때문이다. 최고가격제 시행 기간 동안 정유사들의 손실 합산 규모는 4조원에 이르는 것으로 추산된다. 정유업계는 일반적으로 석유제품 가격이 비쌀 때 최대한 수익을 벌어들여 손해를 메운다.

석유화학업계도 비상이다. 올해 초 t당 400달러대에서 거래되던 나프타는 전쟁이 한창이던 4월 1010.5달러까지 치솟았다 이달 들어 700달러대로 내려왔다. 석유화학업계에선 곧 전쟁 이전인 400달러대로 내려갈 것이라 전망한다. 석유화학기업 상당수가 전쟁 발발 전에 사들였던 저렴한 나프타는 이미 소진했다. 현재는 현물 시장에서 웃돈을 얹어 들여온 비싼 나프타를 제품 생산에 투입하고 있다. 이미 석유화학기업의 수익성 지표로 쓰이는 ‘에틸렌 스프레드’(에틸렌 가격에서 나프타 값을 뺀 차이)는 전쟁 기간 손익분기점(t당 250달러)을 넘어섰지만, 현재 t당 100달러대로 내려앉았다.
그나마 흑자와 적자를 번갈아가며 산업의 생존 자체는 걱정할 필요가 없는 정유업계와 달리 석유화학업계는 미국·이란 전쟁 전부터 중국발 석유제품 공급과잉 사태와 중동 국가의 석유화학산업 진출 여파로 벼랑 끝에 몰려 있는 상태였다. 정부 주도 아래 지난해부터 총 4곳(대산, 여수1·2호, 울산)의 석유화학 산업단지 설비를 효율화하는 구조조정 작업이 진행됐지만 전쟁 이후 속도를 내지 못하고 있다.
석유화학업계 관계자는 “산업 전체가 최악의 위기에 몰린 상황에서 전쟁으로 잠시 여유가 생긴 것에 불과했다”며 “구조 개혁을 서두르지 않으면 미래를 장담하기 어렵다”고 설명했다.
반진욱 기자 halfnuk@segye.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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