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르포]"괜히 구명조끼 입었네" 했지만…발밑 사라진 순간 찾아온 공포

윤왕근 기자 2026. 6. 18. 06:02
음성재생 설정 이동 통신망에서 음성 재생 시 데이터 요금이 발생할 수 있습니다. 글자 수 10,000자 초과 시 일부만 음성으로 제공합니다.
번역beta Translated by kaka i
글자크기 설정 파란원을 좌우로 움직이시면 글자크기가 변경 됩니다.

이 글자크기로 변경됩니다.

(예시) 가장 빠른 뉴스가 있고 다양한 정보, 쌍방향 소통이 숨쉬는 다음뉴스를 만나보세요. 다음뉴스는 국내외 주요이슈와 실시간 속보, 문화생활 및 다양한 분야의 뉴스를 입체적으로 전달하고 있습니다.

맥주병 기자, 동해안에 몸 던져보니…10m 들어간 뒤 생각이 완전히 바뀌었다
지난 17일 강원 양양군 하조대해변에서 열린 동해지방해양경찰청 '여름 성수기 대비 연안사고 위험성 재연 및 현장 체험' 행사에서 기자가 구명조끼를 착용한 채 구조대원의 구조 시연에 참여하고 있다. 2026.6.18/뉴스1 윤왕근 기자

(양양=뉴스1) 윤왕근 기자 = "구명조끼 착용하세요."

동해지방해양경찰청 구조대원이 건넨 구명조끼를 받아 들면서도 속으로는 '괜히 유난 떠는 것 아닌가' 하는 생각이 먼저 들었다.

동해안을 취재하면서 너울성 파도 사고와 익사 사고 기사는 수없이 써 왔지만, 직접 바다에 들어가 위험성을 체험할 기회는 없었다.

기자는 흔히 말하는 '맥주병'이다. 발이 닿는 곳이 아니면 물에 잘 들어가지 않는다.

17일 오후 강원 양양 하조대 해변.

동해지방해양경찰청이 마련한 '여름 성수기 대비 연안사고 위험성 재연 및 현장 체험' 행사에 참가했다.

천천히 바다 안으로 걸어 들어갔다. 5m 정도 들어갔을까. 물은 허리 정도밖에 차지 않았다.

"생각보다 별거 아닌데" 싶었다. 오히려 '괜히 구명조끼까지 입었나' 하는 생각이 들었다.

몇 걸음을 더 옮겨 10m쯤 갔을까. 발끝에서 모래가 사라졌다. 몸이 아래로 훅 꺼졌다.

조금 전까지 허리 높이였던 바다는 순식간에 발이 닿지 않는 깊이가 됐다. 본능적으로 두 발을 내저었지만 허공만 가를 뿐이었다.

생각보다 훨씬 당황스러웠다. 파도가 한 번 밀려올 때마다 몸은 제자리에서 버티지 못하고 흔들렸다.

해변에서 사진 촬영을 돕던 동해해경청 직원이 손짓하며 무언가를 외쳤지만 파도 소리에 묻혀 전혀 들리지 않았다.

해변은 바로 앞에 있었지만, 발이 닿지 않는다는 사실 하나만으로 심리적인 압박감은 예상보다 훨씬 컸다.

그제야 왜 해경이 입버릇처럼 "구명조끼부터 입으라"고 말하는지 조금은 이해됐다.

지난 17일 강원 양양군 하조대해변에서 열린 동해지방해양경찰청 '여름 성수기 대비 연안사고 위험성 재연 및 현장 체험' 행사에서 기자가 구조대원에게 이끌려 해변으로 나오고 있다. 2026.6.18/뉴스1 윤왕근 기자

이날 해경은 너울성 파도와 급경사 해저지형, 스노클링 사고를 실제 상황처럼 재연했다.

구조대원이 일부러 구명조끼를 벗고 너울성 파도 속으로 들어가자 너울성 파도가 몸을 덮치는 게 확연하게 보였다.

시연자는 수영선수 출신의 동해해경청 항공단 이병주 경장.

이 경장은 "저도 구조대원이고 수영을 잘하지만, 생각보다 정말 힘들었다"고 말했다.

그는 "너울성 파도는 사람을 앞으로 미는 힘뿐 아니라 아래로 끌어당기는 힘도 있다"며 "부력이 없으면 파도 안으로 계속 말려 들어가 떠오르기조차 쉽지 않다"고 설명했다.

이어 "수영을 잘하는 사람도 위험할 수 있는 만큼 반드시 구명조끼를 착용해야 한다"며 "구명조끼가 없다면 무리하게 헤엄치기보다 생존수영 자세로 체력을 아끼며 구조를 기다리는 것이 가장 안전하다"고 강조했다.

지난 17일 오후 강원 양양군 하조대해변에서 열린 동해지방해양경찰청 여름 성수기 대비 연안사고 위험성 재연 및 현장체험 행사에서 김인창 청장이 취재진 질문에 답변하고 있다./뉴스1 윤왕근 기자

동해안 바다가 유독 위험한 이유도 현장에서 들을 수 있었다.

김인창 동해지방해양경찰청장은 "여름철 사고는 대부분 바다를 자주 접하지 않는 관광객들에게서 발생한다"며 "물에 대한 적응 능력이나 안전지식이 부족한 상태에서 갑작스러운 너울성 파도나 이안류를 만나면 순식간에 사고로 이어질 수 있다"고 말했다.

실제 통계는 이를 뒷받침한다.

동해해경청에 따르면 최근 3년간(2023~2025년) 관내에서 발생한 연안사고는 330건으로, 이 가운데 213건(64.5%)이 여름철인 6~9월에 집중됐다. 사망자는 56명으로 이 중 37명(66%)이 물놀이 중 발생했고, 사망사고의 77%는 피서객이 가장 많은 낮 12시부터 오후 6시 사이 발생했다.

올해도 해수욕장 개장 전인 6월 들어서만 동해안에서는 사고 11건, 사망 4명이 발생했다. 강릉 영진·사천진해변에서는 관광객들이 사진을 찍거나 바닷물에 발을 담그다 파도에 휩쓸려 숨졌고, 고성 화진포에서는 조개를 채취하던 주민이 목숨을 잃었다.

최근 늘고 있는 스노클링 사고 역시 대부분 구명조끼를 착용하지 않은 경우였다. 지난해 고성 송지호와 강릉 송정, 삼척 갈남항에서 발생한 사망 사고는 모두 구명조끼를 입지 않은 상태였고, 같은 갈남항에서 발생한 또 다른 사고에서는 구명조끼를 착용한 이용자가 구조됐다.

동해해경청은 이날 구조대원의 출동 시간을 줄이기 위해 자체 개발한 '개선형 구조 슈트'와 동력 구조보드도 공개했다.

김 청장은 "사고가 발생하면 결국 골든타임과의 싸움"이라며 "구조대원의 출동 시간을 줄일 수 있도록 장비를 지속적으로 개선하고, 기상정보 문자서비스 등을 통해 국민들이 안전하게 바다를 이용할 수 있도록 최선을 다하겠다"고 말했다.

wgjh6548@news1.kr

Copyright © 뉴스1. All rights reserved. 무단 전재 및 재배포, AI학습 이용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