법원 "헌재 재판지연도 사법심사 대상"… 사법부·헌재 정면 충돌
대법원 판결 뒤집던 헌재, 이제는 ‘재판 지연’으로 심판대 올라
‘국민 기본권’ 내세운 사법부, 헌재 내부 보고서까지 제출 요구
법원이 헌법재판소의 재판 지연 행위를 사상 처음으로 사법심사 대상에 올렸다. 재판소원법 도입으로 대법원 판결이 헌법재판소 심사 대상에 오른 데 이어 법원이 헌재의 재판지연 행위를 사법심사 대상에 올리면서 양대 사법기관 간 긴장감이 고조되고 있다.
17일 법조계에 따르면 서울중앙지법 형사합의50부(전보성 형사수석부장)는 남북교류협력법 위헌소원 심리를 4년간 미룬 헌재의 '부작위'(마땅히 해야 할 일을 하지 않음)에 대해 기본권 침해 여부 심사에 나섰다. 이를 위해 법원은 지난 12일 헌재에 '헌법재판 지연 사유에 관한 의견요청서'를 발송했다.
법원은 헌재에 △심사 진행 단계 및 지연 사유 △주심 재판관과 보고연구관 사이의 보고·의견서 등 심리 경과 △관계기관 의견 조회 여부 등을 의견요청서를 받은 후 한 달 이내에 답변을 담은 의견서를 달라고 요청했다.
법원은 "모든 국가권력이 헌법의 구속을 받듯 헌재도 헌법의 구속을 받아야 한다"며 "헌재의 심리 지연으로 피고인이 신속한 재판을 받을 권리 등 헌법상 기본권이 침해됐다"고 지적했다. 이어 "이번 조치는 법원이 헌재의 재판 관행에 관해 문제를 제기하고, 헌재의 부작위 처분이 국민의 헌법상 기본권을 침해하는 경우 법원의 사법심사 대상이 될 수 있음을 전제로 한 최초의 의견 요청"이라고 설명했다.
법원의 이같은 조치는 단순한 소송 절차상의 문제를 넘어 재판소원법 도입을 둘러싸고 벌였던 갈등이 한층 더 격화되고 있음을 보여주는 장면이다.
그동안 두 기관은 헌재가 대법원의 판결을 취소할 수 있는가를 두고 갈등을 벌였고, 사법개혁의 일환으로 법원의 재판을 대상으로 헌법소원을 청구할 수 있도록 한 '헌법재판소법 일부개정법률안(재판소원 허용 법안)'이 지난 2월 27일 국회 본회의를 통과해 3월 12일부터 시행됐다.
지난 9일 기준으로 총 877건이 접수돼 736건 사전심사에서 각하됐다. 전원재판부 본안 심리로 넘어간 건수는 8건에 불과하다.
대법원은 당시 "헌재가 최고법원인 대법원 위에 군림하려는 시도"라며 거세게 반발했지만 법안을 막을 방법은 없었다.
이번 법원의 조치는 이러한 흐름을 정반대로 뒤집는 '역공'의 성격이 짙다. 법원은 헌재의 재판 지연을 일종의 행정적 '처분' 또는 '부작위'로 규정했다. 그리고 명령·규칙·처분의 위헌·위법 여부를 최종 심사할 권한이 대법원에 있다는 헌법 제107조 제2항을 근거로 제시했다.
헌재가 '재판소원'을 통해 법원의 판결을 심사 대상에 넣었다면, 이번엔 법원이 '부작위 심사'를 통해 헌재의 재판 운영 방식을 법원 통제 대상에 넣은 셈이다.
권순욱 기자 kwonsw87@dt.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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