폭력 위험 노출된 여성 기자들…법도 회사도 방관했다

모은희 2026. 6. 17. 14: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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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한국여성기자협회 포럼W…젠더 폭력에 노출된 기자들의 현주소

얼굴과 이름을 내걸고 진실을 보도하는 여성 기자들이 온라인 스토킹과 디지털 성폭력 등 심각한 젠더 폭력에 노출되어 있지만, 이를 보호해야 할 사법 시스템과 언론사 뉴스룸은 사실상 방관하고 있다는 지적이 나왔다. 여성 기자들의 위축은 결국 교제폭력, 교제살인, 혐오범죄 등 우리 사회의 중대한 구조적 폭력을 제대로 보도할 수 있는 언론 역량의 약화로 이어진다는 경고도 제기됐다.

한국여성기자협회는 오늘(17일) 한국프레스센터에서 포럼W를 개최했다. 이소정 KBS 기자의 사회로 진행된 이번 포럼의 주제는 '위협받는 기자들 어떻게 지킬 것인가'. 실제 6년간의 스토킹 피해와 소송 기록을 르포르타주 『탁월한 피해자』로 펴낸 곽아람 조선일보 문화부 차장대우와 여성학 박사로서 인권 연구에 매진하고 있는 허민숙 국회입법조사처 입법조사관이 발제자로 나서 국내 언론계의 어두운 현실을 고발하고 대안을 모색했다.

■ "열심히 일했을 뿐인데 표적 돼"…사법 시스템은 외면

제1발제를 맡은 곽아람 기자는 자신이 2019년부터 일면식도 없는 남성으로부터 당해온 스토킹, 디지털 성폭력, 허위사실 적시에 의한 명예훼손 피해 사실을 상세히 공개했다. 가해자는 곽 기자의 신문 기사와 팟캐스트 등을 통해 범행을 일삼았으며, 유튜브, 블로그, 일베 게시판 등에 성적 대상화 콘텐츠와 악성 댓글을 지속적으로 게시했다. 심지어 가해자는 수감 중에도 곽 기자와 직장 동료들에게 편지를 보내는 방식으로 스토킹 범행을 이어갔다.

곽 기자는 2021년부터 현재까지 6번의 형사고소와 1번의 민사소송을 진행하며 가해자에게 실형을 이끌어냈으나, 그 과정은 온전히 피해자 혼자 감당해야 하는'안간힘을 다한 투쟁'이었다고 회고했다. 곽 기자는 "기자니까 경찰·검찰·법원 취재를 해봐서 다를 줄 알았지만 현실은 그렇지 않았다"며 "시스템은 피해자 보호보다 피고인의 방어권에 더 신경을 쓰고, 피해자는 형사재판의 당사자가 아니라는 이유로 철저히 배제되고 소외된다"고 비판했다.

특히 지난 3월에는 가해자가 누범이어서 가중 처벌을 받아야 함에도 검찰이 공소장에 이를 누락해 2년만 구형하는 치명적인 오류를 범했으나, 곽 기자가 제출한 진정서는 읽어보지도 않았던 사실을 폭로했다. 결국 타사에 제보해 언론 취재가 시작돼서야 겨우 구제받을 수 있었다. 곽 기자는 “24년차 기자의 말은 듣지 않다가 주니어 사건 기자의 전화 한 통에 태도가 바뀌는 사법부의 현실에 깊은 절망감을 느꼈다”고 전했다.

■ 디지털 폭력 진화…위축된 기자들, 언론 역량 약화 우려

제2발제를 맡은 허민숙 연구관은 여성 기자를 향한 폭력이 디지털 환경 및 AI 기술과 결합하면서 더욱 폭력적이고 정치적인 성격을 띠고 있다고 분석했다. 예전의 언어적 모욕을 넘어 이제는 딥페이크, 누디피케이션 등 피해자의 얼굴과 몸을 강제로 조작하고 유포하는 방식으로 진화하고 있다는 것이다.

허 연구관은 이 현상을 미란다 프리커의 '증언 부정의(testimonial injustice)'개념으로 설명했다. 공격자들은 기자의 보도 내용을 직접 반박하는 대신, 여성 기자의 존재 자체를 조롱하고 성적으로 훼손함으로써 그 발언을 사회적으로 무력화하려 시도한다는 점이다. 이로 인해 여성 기자들은 정당한 보도에 대해서도 필요성과 정당성을 끊임없이 입증해야 하는 '인식론적 착취'와 이중구속에 시각적으로 노출되며 심각한 자기검열과 공적 발화의 위축을 겪게 된다.

더 큰 문제는 이러한 위축이 사회적 안전망의 붕괴로 직결된다는 점이다. 허민숙 연구관은 "교제폭력, 교제살인, 혐오범죄는 오랜 기간 누적된 '강압적 통제'의 구조를 읽어내야만 본질을 보도할 수 있고, 여기에 젠더 감수성이 높은 여성 기자의 역할이 매우 크다"고 짚었다. 그러나 여성 기자가 온라인 폭력의 표적이 되어 위축되면 추적 보도가 얕아지고 사건은 자극적으로 소비되며, 결국 사회는 경고 신호를 알아차리지 못해 피해를 방치하게 된다고 경고했다.

호주 ABC·영국 Reach plc 등 해외는…전담 보호 시스템 시급

'기자니까 감당해야 한다'며 방치하는 국내 언론사들과 달리, 조직과 국가가 비용과 기술을 투입해 적극적으로 대응하는 해외 언론사들의 사례도 허 연구관은 소개했다.

호주 ABC는 규제 기관인 디지털안전위원회와 연계해 온라인 안전 가이드라인을 운영 중이다. 기자가 높은 위험에 노출될 경우 '소셜미디어 웰빙 어드바이저(Social Media Wellbeing Advisor)'가 즉각 개입해 지원한다.

영국 Reach plc는 업계 최초로 '온라인 안전 에디터(Online Safety Editor)' 직책을 신설했다. 온라인 학대 보고 플랫폼을 통해 스토킹 등 중대 사례의 증거를 사내 시스템에 기록·보존해 법적 대응에 활용하며, 관계자가 소셜미디어 플랫폼에 직접 악성 게시물 삭제와 계정 차단을 요청한다. 또한, 동료들이 응원 메시지를 대량 전송해 악플을 덮어주는 '집단적 선플 밀어내기(Support Swarm)' 네트워크도 가동하고 있다.

곽아람 기자는 언론계의 변화를 위해 각 회원사에 취재 과정 중 범죄 피해 발생 시 사내 신고, 2차 가해 금지 가이드라인 마련, 법무팀의 기자 보호 실적 공개 등을 권고할 것을 촉구했다.

허민숙 연구관은 "악플 수집과 댓글 차단을 기자 피해자의 역할로 그냥 방치해서는 안 된다"며 수사기관과의 핫라인 확보 등 공동 보호체계를 마련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포럼 참가자들은 여성 기자가 마주한 폭력이 개인의 불운이 아닌 공론장의 민주주의를 위축시키는 구조적 위험이라는 데 공감했다. 최문선 한국여성기자협회장은 "피해를 당한 기자는 어렵지 않게 찾을 수 있는데 비해, 제대로 구제 받은 사례는 많지 않다. 이번 포럼이 안전한 일터와 사회를 만드는 출발점이 되길 바란다"고 밝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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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은희 기자 (monnie@kb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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