식약처, EMA 주관 OPEN 첫 공동 심사 완료…의약품 심사도 ‘다국가 동시평가’ 시대
식품의약품안전처가 유럽 등 해외 규제기관과 처음으로 의약품 국제 공동 심사를 완료했다. 국내 의약품 규제역량이 국제 공동평가 체계 안에서 공식적으로 활용된 첫 사례로, 향후 국내 개발 의약품의 해외 진출과 허가·변경 절차의 예측성을 높이는 기반이 될지 주목된다.
식품의약품안전처(처장 오유경) 소속 식품의약품안전평가원(원장 강석연)은 유럽의약품청(EMA, European Medicines Agency)이 주관하는 '의약품 과학적 공동평가(OPEN, Opening our Procedures at EMA to Non-EU authorities) 프로그램'을 통해 바이오의약품 공동 심사를 6월 17일 완료했다고 밝혔다.
이번 사례는 유럽과 한국에서 공동 심사를 동시에 진행한 첫 번째 공식 사례다. 식약처는 지난해 4월 '한-EU 간 의약품 비공개 정보교환을 위한 비밀유지 약정'을 체결한 뒤 같은 해 6월부터 OPEN 프로그램 공식 참여기관으로 참여해왔다.
OPEN 프로그램은 EMA가 해외 규제기관과 함께 특정 의약품의 심사평가를 공동으로 수행하는 제도다. 각 기관은 과학적·규제적 독립성을 유지하면서 EMA와 동시에 자체 평가를 진행하고, 심사 과정에서 과학적 전문 지식과 검토의견을 공유한다.
이 제도는 2020년 코로나19 백신과 치료제 평가 과정에서 국제협력을 강화하기 위해 파일럿 프로그램으로 시작됐다. 이후 운영 성과를 바탕으로 다른 의약품 심사 절차로 확대됐으며, 2025년부터는 의약품 변경허가까지 적용 범위를 넓혀 운영되고 있다.
이번 공동 심사는 올해 2월 유전자재조합의약품 변경허가에 대한 자료를 유럽과 한국, 스위스, 세계보건기구(WHO)가 동시에 평가하는 방식으로 시작됐다. 참여 규제기관은 유럽의약품청(EMA), 한국 식품의약품안전처, 스위스 의료제품청(Swissmedic), 세계보건기구(WHO)다.
각국 규제기관은 신청 업체가 제출한 품질 자료를 심사한 뒤 EMA에 검토의견을 송부했다. 이후 4월 15일 EMA 주관으로 온라인 검토 회의가 열렸고, 각국 규제기관은 심사 쟁점과 검토의견을 교환·토론해 합의된 심사 결과를 도출했다.
이번 공동 심사의 핵심은 국가별 요구사항이 동일하게 통일됐다는 점이다. 기존에는 각국 규제기관이 보완을 요구하는 자료가 다를 수 있어 신청 업체가 국가별로 서로 다른 자료를 준비해야 하는 부담이 있었다. 그러나 이번 공동 심사에서는 동일한 품질 자료를 토대로 여러 규제기관이 동시에 검토하고 논의함으로써 업체가 하나의 자료로 각국 규제기관의 요구사항을 충족할 수 있게 됐다.
식약처는 이를 통해 업체의 규제 부담이 크게 경감될 것으로 기대하고 있다. 특히 변경허가와 같이 제품 공급 및 품질관리 현장에 신속히 반영돼야 하는 사안에서 다국가 동시 심사와 심사 기준의 국제조화가 이뤄질 경우, 변경사항 적용 속도와 허가심사의 예측성도 높아질 수 있다는 평가다.
OPEN 공동 심사는 항생제 내성 반응 치료제 및 신규 항생제, EMA의 우선순위의약품(PRIME) 제도에 따라 지정된 의약품, 의료 수요가 높으나 공급이 부족한 의약품, 공중 보건 위협 또는 공중 보건 비상 사태 대응 의약품, 변경허가 등에 적용될 수 있다. 변경허가에는 허가 범위 확대, 적응증 확대, 품질자료 변경 등이 포함된다.
현재 OPEN 공동 심사에 참여하기 위해서는 EMA와 비밀유지 협약을 체결해야 한다. 참여기관은 △유럽의약품청(EMA) △대한민국 식품의약품안전처(MFDS) △스위스 의료제품청(Swissmedic) △일본 후생노동성·의약품의료기기종합기구(MHLW/PMDA) △호주 연방의료제품청(TGA) △브라질 위생감시청(ANVISA) △캐나다 헬스캐나다(HC) △세계보건기구(WHO) 등이다.
국내 업체가 OPEN 프로그램에 참여하려면 식약처 해당 심사부서와 사전 협의를 거쳐야 한다. 신청인은 '바이오의약품 규제기관 간 공동 심사를 위한 사전 협의 절차(공무원 지침서)'에 안내된 'OPEN 프로그램 참여 의향서'를 담당부서에 제출하면 된다. 식약처는 이를 검토해 참여 가능 여부를 접수 후 30일 이내 회신한다.
또한 신청인은 EMA와 OPEN 파트너 규제기관들이 해당 절차에 참여하는 데 동의했는지도 사전에 확인해야 한다. EMA는 신청인의 요청에 따라 OPEN 파트너들과의 소통을 조율하며, OPEN 파트너 규제기관은 공동 심사 과정에서 검토의견을 제출하고 회의 발언권을 가진다.
식약처는 이번 공동 심사를 통해 해외 규제기관과 직접 의견을 교환하고 토론함으로써 식약처의 심사역량이 국제적 수준임을 인정받았다고 평가했다. 동시에 심사자들이 해외 규제기관의 검토 관점과 심사 기준을 공유하면서 전문역량을 강화하는 계기도 됐다고 설명했다.
이번 OPEN 프로그램 참여는 우리나라 의약품 규제역량을 국제적으로 재확인한 사례이기도 하다. 식약처는 2014년 의약품실사상호협력기구(PIC/S)에 가입했고, 2016년 국제의약품규제조화위원회(ICH) 회원국이 됐다. 이어 2023년에는 WHO 우수규제기관 목록에 등재되며 의약품 규제체계의 국제적 신뢰도를 확보해왔다.
PIC/S는 의약품 제조·품질관리기준(GMP)의 국제기준을 수립하고 주도하는 국제 협의체이며, ICH는 의약품 품질·안전성·유효성 관련 기준의 국제조화를 주도하는 국제협력 기구다. 식약처는 이러한 국제협력 기반 위에서 이번 EMA 주관 공동 심사에 공식 참여함으로써 규제 외교의 실질적 성과를 냈다는 입장이다.
업계에서는 이번 사례가 단순한 국제협력 차원을 넘어 실제 허가·변경허가 업무의 부담을 줄일 수 있는 제도적 전환점이 될 수 있다고 보고 있다. 한 바이오의약품 업계 관계자는 "국가별 보완 요구가 달라 발생하던 자료 준비 부담과 일정 불확실성이 줄어든다면 글로벌 동시 개발이나 변경허가 전략을 세우는 데 도움이 될 것"이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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