황금빛 덕수궁에서 고독한 의릉까지…‘고종의 길’을 가다
황제를 상징했던 덕수궁
고종의 행차길 따라 종묘·동관왕묘, 서울 의릉 방문

조선의 왕과 왕비가 잠들어있는 왕릉을 따라 자연과 건축물 속 숨겨진 이야기를 들어보는 ‘왕릉팔경’이 이번에는 ‘대한 고종의 길’을 향했다. 100여 년 전, 조선에서 대한제국으로 거듭나던 격동의 시기를 간직한 ‘고종의 행차길’이다. 1900년 10월, 고종 황제가 선대 왕들의 능을 살피는 ‘봉심(奉審)’을 위해 나섰던 그 하루의 궤적을 따라 서울 종로구 덕수궁·종묘·동관왕묘, 서울 의릉까지의 여정을 함께 했다.
◆덕수궁=5일 ‘대한 고종의 길’은 김지화 역사 기행 강사의 해설을 들으며 덕수궁에서 시작했다. 덕수궁은 고종 황제에게 외세의 위협으로부터 몸을 숨길 수 있었던 가장 안전한 외교적 피난처이자, 대한제국의 자주독립과 근대화를 선포한 꿈의 법궁이었다. 한편으로는 일제의 침탈과 큰 화재를 겪으며 황제의 원대한 이상이 끝내 무참히 꺾여버린 비극과 지독한 고독의 공간이기도 했다.

대한제국의 법전인 덕수궁 중화전은 초입부터 사뭇 다른 빛깔로 압도한다. 바로 중화전 전반을 감싸는 찬란한 ‘황금색’이다. 과거 조선의 왕들은 중국 제후국의 격에 맞춰 붉은색 곤룡포를 입고 붉은색 궁궐을 누볐다.
그러나 1897년 대한제국을 선포한 고종 황제는 황색 곤룡포를 입고 궁궐을 같은 색으로 장식했다. 전통 음양오행 사상에서 천하의 중심이자 방위의 ‘중앙’을 뜻하는 황색을 전면에 내세운 것이다. 중화전의 천장 역시 조선의 정전이 봉황을 새겨 넣은 것과 달리, 황제국을 증명하듯 황금빛 쌍룡(雙龍) 조각이 화려하게 자리 잡았다.

◆종묘=다음으로는 종묘로 향했다. 고종은 왕실 직계 핏줄로 따지면 철종·헌종을 지나 인조 대까지 18촌을 거슬러 올라가야 겨우 닿는, 소위 '적통'과는 거리가 먼 방계 출신이었다. 정통성이 약했던 만큼 고종에게 종묘는 자신의 왕위 정당성을 증명하기 위해 가장 공을 들여야만 했던 절대적인 공간이었다.
참가자들은 조선 시대 가장 중요한 의례인 ‘길례(복을 빌고 조상을 만나는 제사)’의 무대, 종묘 정전으로 발길을 옮겼다. 사후에 몸은 땅으로 혼은 하늘로 간다고 믿었던 조선에서 왕실의 신주는 특별한 의미를 지닌다. 일반 사대부의 신주가 4대(약 120년)가 지나면 땅에 묻히는 것과 달리 왕의 신주는 영원히 묻지 않고 이곳 정전에 모시기 때문이다.
종묘 정전은 신성함을 유지하도록 외부 창문이 없고 안에서 밖으로만 열 수 있는 독특한 구조를 가졌다. 제례를 위해 탁 트인 넓은 월대 양옆에는 공신당과 칠사당이 감싸고 있으며 현재 총 200여 위의 신위가 모셔졌다.

◆동관왕묘=덕수궁과 종묘를 거쳐 서울 동대문 바깥에 자리한 ‘동관왕묘’로 이동했다. 우리에게는 전통 벼룩시장으로 더 친숙한 공간이지만 담장 안으로 들어서는 순간 이국적이고 거대한 붉은 벽돌 건물이 등장한다. 이곳은 삼국지의 영웅이자 중국의 무신(武神)인 ‘관우(關羽)’의 신주를 모신 사당이다.
명나라 황제의 명으로 동묘를 건립했지만 조선의 왕들은 사람이 아닌 중국의 무신에게 제사를 지내는 것을 꺼려 실제로 제사를 모시지 않았다. 그러나 고종 대에 이르러 동묘는 신앙의 대상이 된다.

임오군란 당시 명성황후를 도왔던 무당은 ‘진령군’이라는 군호를 받고 “내가 사실 관우의 딸”이라 주장했다. 고종과 명성황후는 이를 철석같이 믿었다. 순종이 병약해 사경을 헤맬 때 명산대천과 동묘에서 대규모 제사를 지냈고 동묘와 남묘에 이어 서묘·북묘까지 증설했다.
고종에게 관우는 풍전등화 같은 대한제국과 자기 가족을 지켜줄 유일한 ‘구원의 종교’였다. 정전 내부에는 당대 명나라 사신들이 남긴 현판과 함께, 고종과 순종 황제가 직접 쓴 친필 현판이 빽빽하게 걸렸다.

◆서울 의릉=행차길의 종착지는 2000년대에 이르러서야 일반에 공개한 서울 의릉이다. 조선의 20대 왕 경종과 그의 비 선의왕후가 합장된 곳으로 두 능이 앞뒤로 배치된 형태다.
이 무덤의 주인인 경종은 조선 왕조를 통틀어 가장 외롭고 애달픈 삶을 살다 간 군주다. 사실 그는 역사상 몇 안 되는 ‘축복받은 적장자(문종·단종·경종)’ 로 태어난 지 두 달 만에 원자로 정해졌다.
그의 원자 책봉을 반대하던 서인 송시열이 사약을 받아 죽고, 어머니 장희빈은 왕비의 자리까지 오르며 탄탄한 미래가 열리는 듯했다. 하지만 인현왕후가 복위하면서 그녀 역시 사약을 받으며 경종 곁을 떠난다. 결국 당파 싸움의 소용돌이 속에서 힘을 잃은 군주는 재위 4년 만에 쓸쓸히 세상을 떠났다. 고종은 이 불운했던 경종의 의릉을 찾아 정성껏 봉심하며 그의 넋을 위로했다.

일반인은 쉽게 발을 들일 수 없는 신성한 구역인 능침 주변에는 왕의 영혼을 호위하고 잡귀를 물리치는 석물(石物)들이 지킨다. 매서운 기운으로 잡귀를 물리치는 석호(호랑이)와 사악한 땅의 기운을 누르는 온순한 석양(양)이 봉분 주위를 수호하면서 신성한 왕릉의 위엄을 드러낸다.
황제의 길을 따라 걸었던 이날은 100여 년 전 대한제국의 흔적을 따라가는 여정이었다. 지금도 그 발자취는 한 나라의 염원과 아픔이 서린 역사의 한복판으로 우리를 이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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