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 셰프들이 주목하는 한식, 유행에서 '문화'로 자리 잡으려면 [최지아의 미식코리아]

2026. 6. 17. 09:02
음성재생 설정 이동 통신망에서 음성 재생 시 데이터 요금이 발생할 수 있습니다. 글자 수 10,000자 초과 시 일부만 음성으로 제공합니다.
번역beta Translated by kaka i
글자크기 설정 파란원을 좌우로 움직이시면 글자크기가 변경 됩니다.

이 글자크기로 변경됩니다.

(예시) 가장 빠른 뉴스가 있고 다양한 정보, 쌍방향 소통이 숨쉬는 다음뉴스를 만나보세요. 다음뉴스는 국내외 주요이슈와 실시간 속보, 문화생활 및 다양한 분야의 뉴스를 입체적으로 전달하고 있습니다.

편집자주
미식 세계의 변방에서 중심으로 들어온 한식. 20여 년간 외국인 관광객에게 한국의 맛을 알려온 최지아 온고푸드커뮤니케이션 대표가 한식과 K관광의 트렌드를 소개하고 새로운 가능성을 제안합니다.
글로벌 식품기업 네슬레 임직원들이 김치 담그는 법을 배우고 있다. 최지아 대표 제공

몇 년 전만 해도 해외 셰프들에게 한식은 낯설고 이국적인 음식이었다. 그러나 지금은 상황이 달라졌다. 필자가 최근 만나는 해외 셰프들 중에는 "한식을 제대로 배워 우리 레스토랑 메뉴에 적용하고 싶다"거나 "한식의 조리법과 발효 개념을 활용해 새로운 메뉴를 개발하고 싶다"고 말하는 이들이 적지 않다. 발효와 건강, 채소 중심의 식문화, 복합적인 맛의 구조를 가진 한식은 이제 한국을 대표하는 민족음식을 넘어 세계 셰프들이 배우고 싶어 하는 음식이 되었다. 불과 10여 년 전만 해도 상상하기 어려웠던 변화다.

이러한 변화는 하루아침에 이루어진 것이 아니다. 필자는 2007년 뉴욕의 미식가들을 대상으로 한식 인식에 대한 학위 연구를 진행했다. 당시 셰프와 레스토랑 관계자들에게 한식은 코리아타운에서 주로 맛볼 수 있는 음식이었지만 발효와 건강, 채소 중심의 식문화에는 큰 관심을 보였다. 한식의 국제화 가능성이 처음 엿보이던 순간이었다.

그 가능성이 현실로 나타나고 있음을 체감한 것은 2014년이었다. 당시 네덜란드의 미식가들과 셰프들이 한국으로 미식여행을 왔는데, 단순한 관광이 아니라 장문화와 시장, 발효음식, 지역 식문화를 깊이 배우고자 했다. 흥미로운 점은 여행이 끝난 후였다. 그들은 각자의 레스토랑과 사업에 한국 식재료와 발효 개념을 접목하기 시작했다.

당시 네덜란드를 대표하는 셰프인 모식 로스(Moshik Roth)는 미슐랭 레스토랑 코스요리에 김치를 활용한 메뉴를 개발했고, 또 다른 이는 한국 장류의 깊은 맛에 주목했다. 한식은 더 이상 이국적인 경험에서 그치지 않고 새로운 비즈니스 가능성으로 읽히고 있었던 것이다.

글로벌 식품기업 네슬레 임직원들이 김치 담그는 법을 배우고 있다. 최지아 대표 제공

한식에 대한 관심은 레스토랑 업계에만 국한되지 않았다. 같은 해 필자는 국제 기내식 개발 조직인 ‘스카이 셰프(Sky Chef)’ 프로그램을 통해 8개 항공사 소속 14명의 셰프와 한식을 주제로 워크숍을 진행했다. 이 과정에서 한식이 기내식으로 활용하기에 적합한 메뉴를 많이 갖고 있다는 사실도 확인할 수 있었다.

2018년에는 글로벌 식품기업 네슬레로부터 한 통의 이메일을 받았다. 한식을 집중적으로 배우고 싶다는 내용이었다. 그들은 고추장이나 김치와 같은 한식적인 요소가 곧 케첩이나 마요네즈처럼 세계인의 식탁에서 일상적으로 사용될 수 있다고 판단하고 있었다.

글로벌 식품기업이 특정 메뉴가 아닌 한식의 조리 원리 자체에 주목했다는 점은 의미가 컸다. 이는 한식이 단순한 유행을 넘어 새로운 식문화 자산으로 인식되기 시작했음을 보여주는 사례였다.

미국 대학생들이 지난달 22일 서울 중구 샘표 우리맛공간에서 열린 한식 쿠킹 클래스에서 김밥과 김치를 만들고 있다. 연합뉴스

요즘 해외에서 가장 자주 받는 질문 중 하나는 한식을 제대로 배울 수 있는 곳이 어디냐는 것이다. 그만큼 한식에 대한 관심은 높아졌지만, 현장에서는 메뉴와 식재료에 대한 설명이 부정확하거나 왜곡되는 경우도 적지 않다. 특히 들기름, 미나리, 깻잎처럼 한식을 대표하는 식재료는 외국 식재료에 빗대어 설명하기보다 고유한 이름으로 알려야 한다. 한식의 세계화는 현지화에서 시작될 수 있지만, 정체성까지 번역되어서는 안 된다.

지금은 K푸드의 성과를 자축할 때가 아니라 그 토대를 다질 때다. 다양한 지원사업에도 불구하고 국제적 기준에 부합하는 한식 교육 시스템은 아직 충분히 갖춰지지 않았다. 해외 요리학교의 커리큘럼을 그대로 적용해서는 한식의 본질을 전달하기 어렵다. 한식은 레시피를 넘어 발효와 공동체, 계절과 상차림의 문화를 담고 있기 때문이다.

이제는 단순히 ‘한식을 알리자’는 구호를 넘어 보다 전략적인 접근이 필요하다. 세계 시장에서 지속가능성과 경쟁력을 동시에 가질 수 있는 메뉴를 선정하고, 수출 가능성과 부가가치를 고려한 작업도 해야 한다. 동시에 한식을 한식답게 만드는 핵심 요소가 무엇인지에 대한 깊은 연구 역시 필요하다. 어느 교육기관에서 배우더라도 일정 수준 이상의 철학과 기준을 공유할 때, 비로소 한식의 세계화는 일시적 유행이 아니라 장기적인 문화 자산으로 자리 잡을 수 있다.

한식은 이미 세계 무대에 올라섰다. 이제 과제는 홍보가 아니라 인프라다. 교육과 연구, 그리고 현장에서 실천할 수 있는 체계가 뒷받침될 때 한식은 유행을 넘어 지속 가능한 문화 자산이 될 것이다.

온고푸드커뮤니케이션 대표

Copyright © 한국일보.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