추락한 드론 건지러 홍천강으로 다이빙 [낭만야영 홍천 팔봉산]

이른 새벽, 뒤척이다 눈이 떠진 김에 휴대폰을 집어 들었다. 비 예보가 있었다. 하지만 강수량이 적어 망설임 없이 배낭을 꺼냈다. 지난 산행에서는 진달래 밭에서 한가롭게 유유자적 했으니, 이번엔 몸으로 산을 느끼고 싶었다. 산불방지기간이라 선택지는 많지 않았다. 접근하기 편하지만 한 번도 오르지 않았던 홍천 팔봉산으로 정했다. 가볍게 떠나 짧고 굵게 오르고, 야영장에서 하룻밤 편히 쉬기로 했다.
언제든 떠날 수 있도록 정리해 둔 짐들을 꺼내 배낭에 넣었다. 메모리 카드가 카메라에 꽂혀 있는지 확인했다. 배터리가 모두 완충됐는지도 빠뜨리지 않았다. 산으로 떠날 때 기록을 남기는 것은 나에게 가장 중요한 일이다. 누군가에게 보여 주기 위해 영상을 만들지는 않지만, 나이가 들어 산에 갈 수 없을 때 남의 사진이 아닌, 나의 젊을 때 사진과 영상을 꺼내 보며 추억하고 싶은 마음이다.

틈 없는 자리엔 언제나 디딤돌
강원도 홍천의 팔봉산은 328m로 낮다. 그러나 낮다고 방심하기엔 거칠고 날카롭다. 평일의 팔봉산은 한산했다. 그 고요함은 오히려 묘한 긴장감을 품고 있었다. 매표소 직원이 친절하지만 단호한 목소리로 말했다.
"앞서 두 명이 올라갔어요. 산이 험하니까 조심히 다녀오세요."
매표소에서 입산자와 하산자 수를 세고 있다는 사실 하나만으로도 팔봉산이 어떤 산인지 충분히 짐작 갔다. 거대한 바위 앞에 섰다. 시루떡을 켜켜이 쌓아 올린 듯, 빼곡한 바위였다. 틈 사이사이에는 작은 돌들이 조심스레 얹혀 있었다. 돌들의 의미는 알 수 없었다. 다만 이 산을 오른 누군가가 무사히 내려가기를 바라며 올려뒀을 것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나도 작은 돌 하나를 집어 바위틈에 올렸다. 안전하게 산행을 마칠 수 있기를 바라면서.
첫 번째 봉우리로 향하는 바위에 손을 올렸다. 바위는 예측할 수 없는 방향으로 두서없이 튀어나와 있었다. 손으로 버티고 발로 밀어 올리며 기어올랐다. 가파른 암벽이 하늘을 향해 치솟아 있었다. 아래를 내려다보면 발끝이 아릿해졌다. 바위를 옮겨 탈 때마다, 손과 발이 닿아야 할 자리에는 어김없이 구조물이 놓여 있었다. 단 한 발짝도 허투루 설계된 것이 없었다. 위험을 줄이되 긴장은 남겨두는 배치. 그 배려 덕분에 아찔함은 줄지 않되 흐름은 무너지지 않았다. 얼굴도 이름도 모르지만, 나는 산 위에서 분명 누군가의 손을 붙잡고 있었다. 한 손 한 손 짚을 때마다 설계자에 대한 고마움이 차올랐다.

두 번째 봉우리를 오르는 중, 아래쪽에서 대화 소리가 들렸다. 빨간 재킷을 입은 커플이었다. 앞서 출발했다는 두 명인 듯했다. 내가 앞지른 걸 보니 그들은 우회길로 돌아온 모양이었다. 두 번째 봉우리도 우회로를 택해 조용히 사라졌다. 능선은 짧지만 밀도 있게 몰아쳤다. 지난겨울 힘겹게 완주했던 주작산을 축소해 옮겨 놓은 느낌이었다.
3봉을 눈앞에 두고 멈췄다. 하늘을 향해 우뚝 솟은 바위 아래로 기다란 철계단이 놓여 있었다. 오르는 모습을 담고 싶어 드론을 띄우는데, 위쪽에서 인기척이 났다. 우회로로 먼저 올라갔던 빨간 재킷의 남성이 내려오려다 멈춰 서 있었다. 드론을 고정시켜 두고 재빨리 계단을 올랐다. 지나치며 가볍게 고개를 끄덕였다. 기다려줘서 고맙다는 뜻이었다. 혼자인 걸 보니 동행은 아래에서 기다리는 듯했다. 이제 산에 나 혼자인 건가. 쓸데없는 욕심이긴 하지만, 산을 독차지하는 건 언제나 뿌듯하다. 그래서 오지를 좋아하는 것인지도 모른다.

아찔한 8봉, 핫소스처럼 얼얼해
3봉에 올라섰다. 8봉까지 이어지는 바위 능선이 거침없이 솟아 있었다. 먹구름이 하늘을 장악한 채 빠르게 흘러갔다. 이따금 가늘게 흩뿌리는 빗방울이 뺨을 스쳤다. 그럼에도 풍경은 이상하리만치 선명했다. 빛 한 줄기 없는 거대한 능선 위에서 나는 작은 점에 불과하지만, 윤곽은 또렷했다. 세상이 나를 작게 만들수록, 나는 오히려 더 선명해지는 것 같았다. 스스로도 낯설 만큼 멋진 장면이 완성되는 순간이었다. 홍천강은 팔봉산을 감싸고 굽이쳐 흐른다. 멋진 팔봉산과 홍천강의 조합으로 관광지가 조성돼 있다. 물놀이가 가능한 계절에는 인기 관광지라고 한다.
4봉에는 해산굴이 있다. 사람 몸통만 한 구멍인데, 산모가 아이를 낳는 고통을 느낄 수 있다 하여 붙여진 이름이다. 통과해 볼까 싶어 구멍을 내려다봤지만 깊이를 가늠할 수 없었다. 위에서 아래로 내려가는 건 무리였다. 그렇다고 배낭을 내려놓고 밑에서 기어 올라오는 것도 내키지 않았다. 촉촉하게 젖은 바위에서 미끄러지기라도 하면 민폐가 될 터였다. 재빠르게 포기하고 5봉으로 향했다.
5봉은 우회로가 있지만 낮은 정상을 가로지르는 길도 어렵지 않았다. 정상에서는 손바닥만 하게 작고 앙증맞은 정상석을 만날 수 있다. 진행 방향을 찾느라 두리번거리다 보면 자칫 놓치기 쉬우니, 여덟 개의 봉우리를 모두 인증하려면 얄궂게 숨어 있는 정상석을 눈 씻고 찾아봐야 한다. 하산길은 수직으로 내리꽂는 경사지만 철제 계단이 있어 어렵지 않았다.

7봉 즈음에 이르자 가볍게 허기가 밀려왔다. 에너지바를 하나 입에 넣었다. 극적으로 기운이 솟진 않았지만, 달콤함이 입 안에 퍼지는 것만으로도 봉우리 두 개는 더 넘을 수 있을 것 같았다. 제멋대로 생긴 바위들이 우연히 쌓인 건지, 하나의 바위가 세월을 견디다 갈라지고 쪼개진 건지 알 수 없었다. 다만 발 디딜 틈이 있어 한결 수월했다. 사진에 담을 모델이 없어 카메라를 철제 난간에 설치하고 암벽에 붙었다. 틈이 없는 자리에는 어김없이 홀드와 디딤돌이 있었다.
8봉은 팔봉산에서 가장 험한 코스였다. 수직에 가까운 암벽에 아슬아슬하게 붙어 있는 구조물에 의지해 한 발씩 올랐다. 잠시 숨을 고르며 아래를 내려다봤다. 아찔했다. 위험하지만 재미있고, 가파르지만 안전했다. 혀가 얼얼할 만큼 맵지만 자꾸만 손이 가는 핫소스 같은 산이랄까.

풍덩! 드론이 강으로 추락
오를 때와 마찬가지로 하산길도 깎아지른 듯 가팔랐다. 짧지만 강렬한 산행에 다리가 살짝 풀리는 느낌이 왔다. 방심은 이 산에서 가장 위험한 선택이다. 등산객의 컨디션까지 계산한 것인지는 모르겠지만 땅 위에 내려설 때까지 디딤판과 난간이 끊임없이 이어져 있었다. 겁을 먹지만 않는다면 초보자도 안전하게 내려갈 수 있을 것이다. 안전 구조물 하나가 산행 난이도를 중상급에서 중하급으로 낮춰 놓았다.
마지막 난간 끝에는 5월의 철쭉이 피어 있었다. 거친 바위만 보고 온 터라 핑크빛 꽃잎이 부드럽게 눈에 들어왔다. 홍천강을 따라 1봉 쪽 매표소로 이어지는 수변로가 시작됐다. 곳곳에 철쭉이 발길을 잡았다. 드론을 꺼내 철쭉 사이를 걷는 모습을 담았다. 내친김에 영상도 담으려고 드론을 강 위로 띄웠다. 산행이 끝났다는 안도감에 신바람 나게 걷기 시작한 바로 그 순간, 풍덩! 소리와 함께 드론이 강으로 추락했다.

배낭과 등산화를 벗고 물속으로 뛰어들었다. '깊어봤자 허벅지겠지' 싶었지만, 강물은 허리를 넘어 가슴까지 차올랐다. 물이 탁해서 아무것도 보이지 않았다. 일단 물 밖으로 나왔다 드론을 찾느라 허둥대는 와중에도 매표소 직원이 걱정하고 있을 생각을 하니, 생존 신고를 해야 할 것 같았다. 매표소에 도착하자 직원이 수고 많았다며 재빨리 문을 잠그고 퇴근했다.
드론이 어찌됐든 메모리카드에 담긴 소중한 사진들은 꼭 건져야만 했다. 근처 마트로 갔다. 다행히 스노클을 팔고 있었다. 온몸이 젖은 나를 걱정스러운 눈으로 바라보는 주인을 뒤로하고, 다시 팔봉산을 등지고 서슬 퍼렇게 흐르는 홍천강 앞에 섰다. 일교차가 심한 탓에 기온이 급격히 떨어져 있었다. 프리다이빙 자격증도 지금 이 순간엔 소용이 없었다. 잠시 망설이다가 첨벙첨벙 물속으로 들어갔다. 탁한 물속을 훑었다. 5m 반경을 샅샅이 뒤졌지만 드론은 보이지 않았다. 체온이 떨어져 포기해야 했다.
실낱같은 미련을 남긴 채 물 밖으로 걸어 나오는 순간, 탁한 물속에서 하얀 물체가 눈에 들어왔다. 숨을 들이쉬고 물속으로 몸을 숙였다. 손끝에 드론이 닿았다. "대박!" 드론을 건져 올렸다. 온몸이 젖었지만 기쁨의 눈물이 핑 돌았다. 드론을 찾았다는 기쁨보다, 나의 판단과 행동이 헛되지 않았다는 것이 기뻤다. 야영장으로 갔다. 팔봉산만큼이나 조용한 야영장에서 고요한 하룻밤을 보냈다. 팔봉산은 작지만 깊고, 짧지만 오래도록 기억에 남을 것이다.


민미정 깨알 팁
<아무도 묻지 않아도 알려주고 싶은 정보>
홍천의 명산인 팔봉산은 해발 328m의 낮은 산이지만, 여덟 개의 암봉이 이어지는 험준한 암릉 산행지다. 특히 봉우리 사이가 절벽처럼 이어져 있어 실제 체감 난도는 높은 편이다. 산행은 대부분 일방통행 형태로 진행되며, 중간 탈출로를 잘 숙지하는 것이 중요하다. 대표적인 탈출로는 두 곳이다. 첫 번째는 2봉 이후 갈림길 하산로다. 초반 암릉만 경험하고 내려올 수 있는 가장 안전한 탈출 코스로, 체력 부담이나 고소공포가 느껴질 때 이용하기 좋다. 7봉 이후에도 하산 가능하지만, 비가 오면 바위가 매우 미끄럽고 긴장감이 커진다.
팔봉산에서 특히 주의해야 하는 것은 '수변로 통제'다. 8봉 산행 후 마지막에는 홍천강을 따라 이어지는 수변 데크길과 강변로를 통해 매표소 방향으로 복귀하게 되는데, 비가 많이 오거나 홍천강 수위가 상승하면 이 구간이 통제될 수 있다. 강물이 갑자기 불어나는 경우가 많아 장마철이나 집중호우 직후에는 짧은 비라도 위험하다. 실제로 관리사무소에서는 우천·강풍·장마 기간에 입산 자체를 제한하기도 한다. 수변로가 잠기면 되돌아가야 하는 상황이 생길 수 있어 산행 전 반드시 기상 상황과 통제 여부를 확인하는 것이 좋다.

팔봉산관광지 야영장
홍천강과 팔봉산 등산로가 바로 붙어 있는 공영 야영장이다. 데크와 노지 사이트가 있으며, 암릉 산행과 강변 캠핑을 함께 즐길 수 있어 백패커에게 인기가 많다. 화장실과 샤워장 등 기본 시설도 갖춰져 있다. 보통 4~11월에 운영하며, 입실은 오전 9시 이후 가능한 경우가 많다. 집중호우나 강 수위 상승 시 수변 구간과 야영장이 통제될 수 있으니 방문 전 운영 여부 확인이 필요하다.
월간산 6월호 기사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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