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금 퍼주기”라고 오바마 비난하던 트럼프도 별 수 없네···450조 재건 비용·원유 판매 허용

정유진 기자 2026. 6. 17. 07: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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로이터연합뉴스

미국과 이란이 타결한 종전 양해각서(MOU)에는 이란산 석유 판매 제재 면제부터 3000억달러(약 454조원)의 재건 기금 조성, 동결 자산 해제 등 광범위한 재정적 인센티브 방안이 담겨 있는 것으로 전해졌다. 버락 오바마 정권의 이란 핵 합의를 두고 “무능한 현금 퍼주기”라고 비판해 왔던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에게 ‘오바마 핵 합의와 다를 게 뭐냐’는 비판이 부메랑으로 돌아오고 있다.

특히 미국은 재건 기금에 미국의 세금이 한 푼도 들어가지 않는다는 점을 강조하면서, 걸프국과 아시아 동맹들이 출자를 약정한 상태라고 주장하고 있다. 미·이스라엘이 일으킨 전쟁의 책임을 다른 나라에 떠넘기고 있다는 지적이 나온다.

16일(현지시간) 로이터통신은 소식통을 인용해 MOU에 포함된 3000억달러의 재건 기금 중 절반이 넘는 자금은 이미 미국·아시아·중동·남미·아프리카 지역 기업들이 조달하기로 동의한 상태라고 전했다. 그러면서 출자를 약속한 기업으로 한국·일본·싱가포르·말레이시아·미국 기업들을 거론했지만 전체 명단은 공개하지 않았다.

재건 기금은 이란이 요구해 온 ‘전쟁 피해 배상금’의 대안으로 나온 구상이다. 이란은 미국에 배상금으로 4000억달러를 요구했으나, 미국은 이를 수락할 경우 패전국이란 인상을 줄 수 있기 때문에 거절했고 이후 민간 재건 기금이란 구상이 등장했다고 로이터통신은 전했다.

결과적으로 미국이 동맹과 상의없이 일방적으로 시작한 전쟁의 배상금 성격 비용을 동맹에게 떠넘기려 하는 셈이다. J D 밴스 부통령은 폭스뉴스에 “해당 자금은 미국 납세자의 세금으로 충당되지 않을 것”이라고 연일 강조했다.

이는 앞서 지난 3월 전쟁이 시작된 후 이란이 호르무즈 해협을 봉쇄하자 트럼프 대통령이 미군 군함은 투입하지 않은 채 유럽과 아시아에 군함 파견을 요구하면서 “호르무즈 해협 의존도가 높은 국가가 해협 관리를 책임져야 한다”고 주장했던 것과 유사하다.

로이터연합뉴스

미국이 오는 19일로 예정된 MOU 서명식이 끝나는 대로 이란에 원유 판매 제재를 해제하기로 한 사실을 둘러싸고도 미국 내에서는 반발이 일고 있다. 미국은 그간 “MOU에 서명하는 대가만으로 제재를 해제하는 일은 없을 것”이라고 주장해 온 바 있다.

협상 내용에 정통한 복수의 소식통은 월스트리트저널(WSJ)에 “원유 판매 허가는 이란이 전쟁을 종료하는 대가로 받게 되는 초기 재정적 인센티브”라고 말했다. 이에 따라 향후 60일 동안의 협상 기간 동안 이란은 자유롭게 원유를 판매할 수 있으며, 원유 판매에 수반되는 금융 거래와 운송, 보험 등 관련 서비스도 모두 제재 해제 대상이 된다.

비영리단체인 이란핵무장반대연합(UANI)은 이란산 원유를 실은 대형 유조선이 이날 호르무즈 해협 동쪽 오만만에 있는 차바하르 항구를 떠나 이날 미국의 해상 봉쇄선을 뚫고 오만만을 빠져나가고 있다고 분석했다. 이는 지난 4월 미국의 대이란 해상 봉쇄가 시작된 이후 처음이다.

미 싱크탱크 워싱턴연구소의 이란 전문가인 파르진 나디미 선임 연구원은 “백악관은 이 같은 종류의 경제적 유인책이 없다면 이란이 협상 테이블에 계속 남아있도록 하는 것 자체가 매우 어려워질 것이라 보고 있다”고 WSJ에 말했다.

미 인터넷 매체 액시오스는 “백악관은 제재 해제는 어디까지나 호르무즈 해협 개방 및 핵 프로그램에 대한 이란의 합의 이행 정도에 맞춰 단계적으로 이뤄질 것이라 강조하고 있지만, 적어도 일부 혜택은 이란에 선불로 지급될 것이란 점을 미국 관리들도 인정하고 있다”고 전했다.

MOU 전문을 공개하라는 요구는 더욱 거세질 것으로 보인다. 존 슌 공화당 원내대표는 트럼프 행정부에 MOU 전문을 제출하라고 요청했지만 아직 아무런 답변을 받지 못했다고 펀치볼 뉴스가 전했다.

트럼프 대통령은 이날 아랍에미리트와의 양자회담에서 “곧 MOU를 의회에 제출해 검토 받겠다”고 밝혔지만, 액시오스는 “19일 서명이 이뤄질 때까지는 공개되지 않을 가능성이 크다”고 전했다.

이번 전쟁의 또 다른 당사국인 이스라엘도 미국 정부에 MOU를 보여줄 것을 요구했으나 거절당했다고 CNN이 이스라엘 측 소식통을 인용해 보도했다. 미국이 거절한 이유의 하나는 MOU가 공식 발표되기 전 베냐민 네타냐후 이스라엘 정부가 이를 유출할 것을 우려했기 때문이라고 이 소식통은 전했다. CNN은 “이로 인해 미국의 핵심 동맹국인 이스라엘은 이미 광범위하게 비판받고 있는 종전 합의에 대해 전혀 알지 못하는 상황에 놓였다”고 짚었다.

워싱턴 | 정유진 특파원 sogun77@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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