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항해는 실패하지 않았다, 팔레스타인을 기억한다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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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면, 가슴통증, 갑작스러운 분노와 반복되는 기이한 꿈.
주한 이스라엘 대사관은 항해 활동가들을 향해 '인도주의라는 이름 뒤에 숨은 가짜 구호단' '플로틸라(항해 운동)는 관심 끌기용 정치 쇼에 불과하다'는 공식 입장을 밝혔다.
"총구에 달린 불이 하나 켜졌고 어둠 속에서 점령군들이 불빛을 보라고 명령했다. 불빛을 볼 때마다 큰 손이 왼쪽 뺨을 때렸고 고개가 꺾일 때마다 다시 불빛을 보라고 명령했다. 두 번째 뺨을 맞을 때 이미 제 귀에 삐 소리가 들리며 멍해지는 것을 느꼈고 세 번째에는 코피가 터졌다(5월28일 '이스라엘의 평화 항해 활동가 가혹행위 증언 및 규탄 기자회견' 발언)."
"여권이 없다는 것은 정부로부터 보호를 받을 수 없는 상태라는 의미이기 때문에 이스라엘군에 나포를 당할 수 있는 상황에 놓인 국민을 보호하기 위해 항해 중에라도, 혹은 나포가 된 뒤라도 임시적으로 무효화를 풀어줄 거라 생각했다. 하지만 끝까지 그런 일은 일어나지 않았다. 함께 항해를 준비하던 모든 활동가들이 정부가 평화 항해를 막기 위해 여권을 취소시키는 조치가 어떻게 가능한지 이해하지 못했다(해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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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면, 가슴통증, 갑작스러운 분노와 반복되는 기이한 꿈. 이스라엘 감옥선을 떠나왔는데도 활동가들의 몸과 마음은 반복적으로 그때 그곳으로 돌아갔다. 이스라엘군은 가자로 향하던 평화 활동가들을 나포해 일명 ‘감옥선’ ‘고문선’이라고도 하는 군함에 가뒀다. 더위와 목마름, 구타와 모욕이 이어지던 바다 위 감옥에서의 시간은 활동가들의 몸에 ‘증언’으로 남아 있다.
팔레스타인 가자지구를 향한 구호 선단 활동에 참여한 김아현(해초)·김동현(동현)·이승준(승준) 활동가를 6월1일 만났다. 세 사람은 올해 5월 출항한 평화 항해에 동참했다. 해초 활동가가 한국인 최초로 구호선에 몸을 실은 지난해 10월 이후, 중동을 둘러싼 국제정세에는 변화가 많았다. 이스라엘과 하마스가 ‘가자 분쟁 종식을 위한 포괄 계획’에 서명하며 휴전이 이루어졌다. 하지만 여전히 가자지구는 구호선이 절실했다. 휴전협정에도 불구하고 이스라엘은 공습·포격·드론 공격을 이어갔다.
미국·이스라엘-이란전이 발발하면서 이스라엘이 가자의 통관 검문소를 폐쇄해 구호물자 반입이 극도로 제한됐다. 불안하고 급박한 상황 속에서, 전 세계 40여 개국에서 모인 참가자 430여 명이 팔레스타인에 전달할 식량과 의약품을 싣고 대규모 항해를 준비했다. 난민이 된 가족들을 지원하는 사회복지사, 미국 원주민 출신 언론인, 은퇴한 치과의사, 성소수자 인권활동가, 손주 8명을 둔 60대 인권운동가 등 저마다 삶의 이력이 다른 이들이 희망과 연대의 뜻을 전하겠다는 하나의 마음으로 바닷길에 올랐다.
2023년부터 팔레스타인 해방을 위한 활동에 참여해왔던 동현 활동가와 제주 강정 해군기지 반대 운동 등으로 국내 항해 운동에 참여해온 한국계 미국인 승준 활동가에게는 가자로 향하는 첫 항해였다. 해초 활동가는 ‘일반 참가자’로 참가한 지난해 항해와 달리 이번에는 ‘항해사’로 배에 올랐다. 부산에서 나고 자란 그는 2021년 평화단체 ‘개척자들’을 통해 요트 타는 법을 배운 뒤, 2023년 제주에서 시작해 오키나와를 비롯한 일본의 섬들, 그리고 타이완을 잇는 107일간의 ‘공평해(공정과 평화의 바다)’ 반전운동에 참가하기도 했다. 승준 활동가와는 제주 강정마을 반전운동과 공평해 항해를 함께했다. 해초 활동가는 지난해 ‘요나스 웨일’호 선장을 맡아 제주와 진도, 광주와 임진각을 잇는 항해를 이끌기도 했다.
한국에서는 낯설지만 항해 운동은 역사적 뿌리가 깊다. 해초 활동가가 2024년 탑승한 미국 골든룰호는 1958년 미국의 핵무기 실험을 비판하며 역사상 최초로 환경·평화 항해 운동을 시 작했다. 그린피스는 1978년부터 레인보우 워리어호를 통해 태평양 핵실험 반대, 포경선 방해 행동 등을 펼쳐왔다.
해초 활동가에게 항해 운동의 가치를 묻자 이렇게 답했다. “항해 운동은 내 몸이 이곳에서 저곳으로 이동하는 과정 자체가 목적인 ‘직접 운동’이다. 그 과정에서 우리가 마주치는 것들, 예컨대 바다의 생명체와 고요하고 아름다운 풍광, 우리가 도착했을 때 만나게 되는 얼굴과 그들과 함께 부른 노래. 그런 모든 것을 보고, 겪고, 축적한 몸으로 다시 돌아와 ‘존재하는 것들’을 증언하는 것이 이 운동에서 가장 중요한 점이다.”
모든 땅이 사유화하고 점유된 육지와 달리 바다는 경계도, 주인도 없이 모든 것을 연결한다. 그 바다를 가로질러 약탈당하거나 침범당했지만 세상 밖으로 나오지 못한 사람들의 투쟁기를 듣고, 그들의 목소리를 세상에 전하는 것이다. 세 활동가는 느리고 먼 길을 직접 가야만 마주할 수 있는 것들의 가치를 믿었다.

하지만 ‘몸’이 곧 ‘길’이기 때문에, 탄압하는 이들의 폭력 역시 지울 수 없는 흔적으로 온몸에 새겨진다. 입국 이후 열흘이 지났음에도 동현 활동가의 손목에는 장시간 케이블 타이에 강하게 묶여 생긴 상처가 여전히 남아 있었다. 그는 나포 이후 감옥선에서 이틀 이상 구금된 후 이스라엘 텔아비브에서 추방 절차가 진행되는 마지막 날까지 손을 뒤로 결박당한 채 가혹 행위를 당했다. 동현 활동가는 현재 심각한 수준의 ‘횡문근융해증’으로 병원 치료를 받고 있다. 심한 외상이나 폭행으로 근육세포가 파괴되어 발생하는 증상으로 치료가 늦어지면 급성 신부전으로 이어지기도 한다.
몸으로 증언하는 직접행동
몸의 통증과 별개로 잠들기도 어렵다. 주한 이스라엘 대사관은 항해 활동가들을 향해 ‘인도주의라는 이름 뒤에 숨은 가짜 구호단’ ‘플로틸라(항해 운동)는 관심 끌기용 정치 쇼에 불과하다’는 공식 입장을 밝혔다. 한국 활동가들에 대한 폭행은 사실무근이라고도 했다. 바라크 샤인 주한 이스라엘 대사 대리는 2011년 유엔 패널의 팔머 보고서에 따라 가자로 향하는 해상 봉쇄가 합법적이라고 주장하기도 했다. 어떤 이들은 ‘결국 나포될 걸 알면서 왜 그곳에 가서 민폐를 끼치느냐’라고 비난했다. 때로는 격렬한 분노가, 때로는 거대한 고립감이 마음을 뒤흔들었다.
그러나 2011년 작성된 팔머 보고서는 이스라엘과 터키의 외교적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만들어진 전문가(패널) 보고서로, 서두에 스스로 법적 책임을 판단하는 문서가 아님을 짚고 있다. 전문가 검토 보고서의 성격을 가진 문서인데도 이스라엘이 법적 구속력이 있는 양 확대 해석한 것이다. 팔머 보고서 발표 직후 유엔 인권이사회 독립전문가 그룹은 가자지구 해상 봉쇄가 합법적이라는 팔머 보고서의 내용을 공식 성명을 통해 비판하기도 했다. 특히 이스라엘의 봉쇄로 팔레스타인인들이 기본권을 박탈당하고 있으며 이는 국제인권법과 인도주의법을 위반하는 행위라는 점을 지적했다. 국제사법재판소(ICJ) 역시 ‘가자 팔레스타인들이 직면한 열악한 생활 조건을 해소하기 위한 인도주의적 지원을 위해 즉각적이고 효과적인 조치를 취할 것’을 이스라엘에 수차례 명령하며 인도주의 접근 보장을 명령했다.

이스라엘은 이런 국제적 여론을 의식하며 가자지구에 충분한 인도적 지원이 이뤄지고 있다고 주장해왔다. 이스라엘 외무부는 지난해 10월 이후 현재까지 총 217만t 이상의 지원 물자가 가자지구에 제공되고 있으며 “가자지구에 기아가 없다”라고 주장한다. 하지만 지난해 7월 공개된 유엔 식량안보단계분류(IPC) 경보에 따르면 가자지구는 심각한 기근 위험에 직면해 있다. 가자 인구 4분의 1이 기근과 유사한 상황이며 90%가구가 식량을 구하기 위해 쓰레기통을 뒤지거나 심각한 위험을 감수하는 등 극단적 생존 방식에 의존해야 하는 상황이다.
게다가 이스라엘은 구호 물품을 받으러 오는 팔레스타인인들을 위험에 빠뜨리기도 한다. 유엔 인도주의업무조정국(OCHA) 공식 보고서에 인용된 가자 보건부 집계에 따르면 2025년 5월부터 10월 사이에 구호품을 받으러 가다 이스라엘의 총격 등으로 사망한 팔레스타인 민간인은 2615명 이상, 부상자는 1만9177명 이상이었다.

해초 활동가와 승준 활동가 두 사람은 ‘감옥선’에서 땅바닥에 머리를 붙이고 움직이지 못하는 고문 자세(stress positions)로 폭행을 당했다. 해초 활동가는 불이 꺼진 컨테이너에 혼자 끌려간 뒤 이스라엘 군인들에게 여러 차례 얼굴을 구타당했다고 증언했다. “총구에 달린 불이 하나 켜졌고 어둠 속에서 점령군들이 불빛을 보라고 명령했다. 불빛을 볼 때마다 큰 손이 왼쪽 뺨을 때렸고 고개가 꺾일 때마다 다시 불빛을 보라고 명령했다. 두 번째 뺨을 맞을 때 이미 제 귀에 삐 소리가 들리며 멍해지는 것을 느꼈고 세 번째에는 코피가 터졌다(5월28일 ‘이스라엘의 평화 항해 활동가 가혹행위 증언 및 규탄 기자회견’ 발언).”
해초 활동가는 한국에 돌아온 이후 ‘다시 사는 것 같은 꿈’을 꾼다고 말했다. “감옥선에서 있었던 일, 항해를 하며 겪은 일이 밤마다 꿈에 나온다. 그때 당한 일들을 다시 한번 겪는데 똑같은 것은 아니고 뭔가 조금씩 다르다. 꼭, 계속해서 그 시간을 다시 사는 것 같은 느낌이다.” 그는 첫 항해에서 돌아온 이후와 달리 사람들을 많이 만나지 않고 대신 길고 오래 잠에 빠져든다고 말했다. 꿈이 고통스럽지 않느냐고 묻자 금방 답이 돌아왔다. “그래도 그건 꿈이니까요. 계속 살아야죠.”
구타로 갈비뼈가 부러진 승준 활동가는 감옥선에서 이스라엘군이 마치 게임을 하듯 활동가들을 폭행했다고 증언했다. “활동가들을 둥글게 세워두고 철제 총탄에 고무를 입힌 ‘빈백탄’을 자기들만의 놀이 규칙에 따르듯 활동가들에게 쏘며 상처를 입혔다. 같은 위치에 여러 번 고무 총알을 맞아 잘 걸을 수 없을 만큼 외상을 입는 활동가도 있었다.” 대다수 활동가는 감옥선에서 테이저건과 섬광탄, 빈백탄 등에 피격됐고 알몸 수색, 인종차별, 심지어 성폭력 피해도 당했다.

승준 활동가는 열강의 침략으로 식민지를 겪은 한국의 역사가 팔레스타인과 닮아 있다고 말했다. 한국의 항일운동, 나아가 민주화운동에도 한국과 아무 상관 없는 이들의 도움이 있었다. 일제의 부당함을 알리며 〈대한매일신보〉를 창간한 어니스트 베델, 을사늑약 무효를 국제사회에 알리기 위해 헤이그 특사에 지원했던 호머 헐버트, 광주 민주화운동의 참상을 보도한 외신기자들이다. “가자를 향한 항해 운동은 바로 이러한 식민지배의 역사적 교훈과 토양 위에서 자라난 것이다(승준).”
하지만 한국은 점점 이스라엘에 가까운 나라가 되고 있는 것 같기도 했다. “이스라엘은 팔레스타인 해역의 권리를 가로채고, 그곳에서 해양 석유·가스를 탐사할 수 있는 권리 등을 민간기업에 판매했다. 한국석유공사가 지분 100%를 소유한 다나 페트롤리엄도 이스라엘로부터 권리를 사들였다. 그 자원으로 돈을 벌겠다는 것은 이스라엘이 집단 학살을 통해 탈취한 권리로 이득을 보겠다는 것과 같다(동현).”
2024년 4월 유엔 인권이사회는 이스라엘에 대한 무기·탄약·군사 장비의 판매 등을 중단할 것을 촉구하는 결의를 채택했다. 스페인·이탈리아·네덜란드·영국·캐나다 등 많은 국가가 이스라엘에 대한 무기 수출을 전면 혹은 일부 중단하고 있다. 하지만 한국의 행보는 다르다. 유엔의 국제무역 데이터베이스인 유엔 컴트레이드(UN Comtrade)에 따르면 2023년 이스라엘은 한국으로부터 약 254만5000달러(약 38억9000만원) 상당의 무기류(HS93)를 수입했다. 동현 활동가는 “한국이 이스라엘의 집단 학살을 돕고 있다고 봐도 과언이 아니다”라고 말했다.

활동가들의 나포 이후 정치권에서 변화가 감지되기도 했다. 5월20일 열린 국무회의에서 이재명 대통령은 국제형사재판소(ICC)가 네타냐후 총리에게 발부한 체포영장을 언급하며 “유럽의 상당수 국가가 네타냐후 총리를 자국 내에서 체포하겠다고 발표하지 않았느냐. 우리도 판단해보자”라고 말했다. 외교적 부담을 우려할 만큼 이례적인 발언이었다.
“세계에서 가장 고립된 곳으로”
하지만 활동가들은 대통령의 발언과 외교부의 행보 사이에 간극이 너무 크다는 점을 지적했다. 해초 활동가는 지금도 여권이 무효화된 상태다. 해초 활동가가 항해를 준비하기 위해 출국을 했음에도 외교부는 자택으로 여권 취소 명령을 보내 여권의 효력을 중단시켰다. 외교부 대변인은 “국민의 생명, 신체 안전을 확보하기 위해 부득이하게 취한 최소한의 조치”였다고 말했다. 현재도 해초 활동가가 가자지구 방문을 재차 시도하지 않을 것임을 확약해야 여권 재발급을 검토할 수 있다는 입장이다.
하지만 평화 항해를 나선 활동가의 여권 효력을 취소하는 것이야말로 국민을 위험에 빠뜨리는 일이라는 비판이 나온다. “여권이 없다는 것은 정부로부터 보호를 받을 수 없는 상태라는 의미이기 때문에 이스라엘군에 나포를 당할 수 있는 상황에 놓인 국민을 보호하기 위해 항해 중에라도, 혹은 나포가 된 뒤라도 임시적으로 무효화를 풀어줄 거라 생각했다. 하지만 끝까지 그런 일은 일어나지 않았다. 함께 항해를 준비하던 모든 활동가들이 정부가 평화 항해를 막기 위해 여권을 취소시키는 조치가 어떻게 가능한지 이해하지 못했다(해초).”
난민 인권 변호사인 김종철 공익법센터 어필 변호사는 5월7일 〈한겨레〉 칼럼을 통해 외교부의 이러한 조치가 세계적으로 유례를 찾아보기 힘든 일이라고 지적했다. “해초의 항해는 인도주의 활동으로 우크라이나 참전이나 아프가니스탄 단기 선교와는 공익성이 본질적으로 다르다. 아일랜드를 포함한 16개국 외교부 장관들은 공동성명을 통해 가자 선단의 목표는 국제인도법적으로 정당하다며 가자로 항해하는 자국민을 공격·구금할 경우 책임이 뒤따를 것이라고 경고했다. 스페인과 이탈리아는 자국민을 보호하기 위해 해군 호위함을 보내기도 했다.” 활동가들은 주이스라엘 대사관 한국 영사를 만났을 때 본국으로의 전화 통화를 요청했지만 거부당했으며, 그로부터 “이스라엘에서 나오는 영자신문을 읽고 균형 잡힌 시선을 갖도록 하라”는 말을 들었다는 사실을 전하기도 했다.
가자를 향한 이들의 항해는 결국 지중해 바다 위에서 끝이 났다. 이 항해는 또 하나의 실패에 불과한 것일까. 활동가들은 그렇지 않다고 말한다. “이스라엘이 원하는 것은 사람들이 팔레스타인을 잊어버리는 것이다. 그러니 포기하지 않고 바다를 건너 그들을 만나러 가는 것. 그리고 여기 이곳에 목숨 걸고 바닷길을 나서는 이들이 있다는 걸 전 세계인에게 알리는 것으로도 이 운동은 충분한 가치가 있다. 우리는 세계에서 가장 고립된 곳을 향해 다시 떠날 것이다(해초).”

김다은 기자 midnightblue@sisain.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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