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퇴사했대" 사흘 안에 소문이 '쫙'… 선전 생태계 확장하는 'DJI 마피아'의 힘
'중국 실리콘밸리'에 존재하는 'DJI 마피아'
선전이 믿고 쓰는 'DJI 퇴사자'... 투자 몰려
텐센트, 자사 퇴사자에 직접 투자... 공생형
'DJI·텐센트 모델' 바탕으로 생태계 발전
편집자주
'짝퉁'과 '탈취'만으로 중국의 첨단기술을 설명할 수 있을까요. 중국은 인공지능(AI)·로봇 등 여러 분야에서 세계가 주목하는 성과를 내고 있습니다. 한국일보는 중국 혁신의 현장을 들여다보고 한국이 무엇을 경계하고 무엇을 배워야 할지 짚어봤습니다.

"실리콘밸리에는 '페이팔 마피아'가 있다고 하잖아요. 선전은 'DJI 마피아'가 다 합니다."
중국의 공학 발전상을 취재하기 위해 광둥성 선전시에 머물던 지난 4월, 다양한 취재원들과의 대화 중 유독 여러 번 귀를 때리는 말이 있었다. 'DJI 마피아'. 선전에서 활동하는 한국인들은 물론, 선전의 창업 인큐베이팅 기관 관계자와 벤처캐피털(VC) 투자자까지, 만나는 사람마다 이 도시에서 활약하는 마피아의 존재를 언급했다. 중국 특유의 압축적 기술 발전은 이들을 빼놓고는 설명하기 어렵다는 취지였다.
일론 머스크와 피터 틸 등 미국 온라인 결제 서비스 기업 페이팔 출신의 창업자들이 실리콘밸리 기술 생태계의 기반을 닦으면서 '페이팔 마피아'의 서사가 만들어졌듯이, 40개 이상의 유니콘 기업(기업가치 10억 달러 이상 비상장 스타트업)을 보유해 '중국의 실리콘밸리'로 불리는 선전 역시 50년 전만 해도 어촌 마을에 불과했던 역사가 있다. 한국일보는 선전의 급격한 탈바꿈에 기여한 DJI 마피아의 정체를 추적했다.
DJI 마피아는 누구인가?

DJI 마피아의 정의는 명료하다. 선전시가 낳은 최고의 하드웨어 유니콘 기업이자 세계 1위 무인기(드론) 제작업체인 DJI 출신의 퇴사자들을 일컫는 말이다. 한국으로 치면 삼성전자나 SK하이닉스 퇴사자들을 '삼전·하이닉스 마피아'로 부르는 셈인데, 이들이 얼마나 대단하길래 '마피아'라는 거창한 말이 따라붙을까.
선전 생태계를 조금만 관심 있게 들여다보면 'DJI 출신'의 압도적 위상을 느낄 수 있다. 선전에서 활동하는 한 VC 관계자는 "DJI에서 핵심 인력이 회사를 떠나면 3일 안에 주요 플레이어들에게 퇴사 사실이 알려지고, 이 퇴사자가 스타트업을 창업하면 온갖 VC가 수백억 원을 들고 '일단 투자 좀 받아달라'며 애원하는 일이 반복된다"고 귀띔했다. 이들에겐 창업 아이템조차 중요하지 않다. 선전에는 DJI 출신이라는 딱지 하나만 보고 엄청난 투자금을 쏟아부으려는 VC가 널렸기 때문이다.
DJI 출신자에 대한 '묻지마 투자'가 생기게 된 건 숱한 성공 사례 때문이다. 3D 프린터 제조기업인 뱀부랩(Bambu Lab)이 대표적이다. 뱀부랩은 2020년 DJI 시스템 엔지니어링 총괄 등 5명의 엔지니어들이 퇴사해 만든 기업인데, 현재 기업가치가 8조 원에 달한다. 휴대용 파워뱅크 기업인 에코플로우(EcoFlow)도 마찬가지다. DJI 배터리 연구개발(R&D) 부서 총책임자였던 왕레이가 2017년 퇴사 후 차렸는데 4년 만에 유니콘 기업 반열에 올랐다. '중국의 애플' 격으로 통하는 대표 하드웨어 기업인 DJI에서 글로벌 1등을 목표로 일했던 직원들은 대단한 내공을 갖췄을 것이란 기대가 있고, 이 기대에 부응하는 사례들이 잇따라 나오면서 자연스럽게 투자금이 몰리게 됐다.

대학원 제자였던 왕타오를 도와서 초기 DJI 창업을 이끌어 'DJI 대부'로 불리는 리쩌샹 홍콩과기대 교수가 꾸준히 DJI 출신자들에 투자하는 점 역시 'DJI 마피아'라는 표현을 만드는 데 일조했다. 리 교수는 현재 엑스봇파크(XbotPark)와 이노엑스(InnoX) 등 대형 하드웨어 창업 인큐베이터를 만들어 후발주자를 양성하고 있다. 리 교수가 몸담은 기관들이 투자 대상을 검토할 때 'DJI 배경 존재 유무'를 중요하게 고려한다는 것은 업계에선 정설로 통한다. 이노엑스의 창업 멘토인 쉐이는 "우리가 DJI 출신 프로젝트에만 투자하는 건 아니지만, 특정 회사의 핵심 멤버가 DJI 출신이라고 하면 더 눈여겨 볼 수밖에 없다"고 설명했다.
DJI 출신자에 대한 베팅으로 성과를 얻은 투자자는 또 다른 DJI 출신자를 찾는다. 꾸준히 배출되는 DJI 퇴사자들이 선전의 하드웨어 생태계가 분화·확장·발전할 수 있도록 투자금을 끌어모으는 검증된 통로 역할을 하는 셈이다. 리 교수와 함께 '홍콩 X 테크놀로지 펀드'를 창립해 8년간 펀드를 운용했던 토니 첸 SP벤처스 창립자는 에코플로우 창업 초기에 투자해 큰 성과를 거뒀다. 토니는 "내가 DJI 출신 창업자의 60~80%는 알고 있고, 직접 투자한 곳도 있다"며 "DJI 동문들은 혁신 방법론과 완벽한 제품 설계를 훈련받았기 때문에 매우 믿을 만하다"고 극찬했다.
선전 생태계 키우는 '마피아' 공식

핵심 인력들이 퇴사 후 혁신 기술 창업가로 거듭나는 일이 DJI에서만 일어나는 건 아니다. 선전 태생의 공룡기업 퇴사자는 누구든 선전 생태계의 전폭적 지원을 받아 혁신 창업가가 될 기회를 얻을 수 있다. 화웨이 '천재소년' 출신의 펑즈후이가 핵심 인력을 끌고 나가 세운 휴머노이드 회사 애지봇(AgiBot) 사례가 대표적이다. 펑즈후이의 창업 소식이 알려지자 텐센트와 BYD 등 선전의 다른 대기업들이 대규모 투자를 단행했다.
텐센트는 한술 더 떠서 퇴사자들에 대한 투자도 거리낌없이 진행한다. 텐센트는 창립 초기 핵심 멤버인 리화가 퇴사 후 차린 '푸투홀딩스'에 연속 투자를 진행했고, 두 회사는 현재 업무 협력 관계에 있다. 이 외에도 전직 텐센트 직원들이 만든 '남극권(Antarctic Circle)'이라는 모임이 있는데, 텐센트는 이들을 배척하지 않고 필요하다고 판단되면 적극 투자금을 건넨다. '텐센트 마피아'가 동문끼리 품앗이 투자를 하며 생태계를 키웠던 '페이팔 마피아'의 원형에 가장 가깝다는 평가가 나오는 이유다. 중국 테크업계에서 근무 중인 한국인 박혜화씨는 "텐센트는 회사를 다니던 사람이 나가서 창업하고 성공하면 생태계가 커지면서 역으로 회사에 도움이 될 수 있다고 생각해서인지 퇴사 후 독립을 독려하는 분위기도 있다"고 전했다.
이처럼 선전에서는 ①하드웨어 기업 핵심 퇴사자에 외부 VC나 다른 대기업이 붙어 스타트업으로 키워주는 'DJI 마피아' 방식 ②퇴사자에 투자하고 협력관계를 유지하며 함께 몸집을 키우는 '텐센트 마피아' 방식이 동시에 작동하며 도시 전체의 기술 생태계를 끊임없이 확장시키고 있다. 선전에서 활동하며 한국 기업들의 네트워킹을 지원하는 이형민 테네셀(Tenexel) 대표는 "가장 무서운 사실은 후발주자들에 대한 선전 대기업 등의 투자가 '시혜성'이 아니라, 결국 자신들에게 이득이 될 거라는 철저한 계산에 근거한다는 점"이라며 "실용주의가 도시 전체를 키우고 있다"고 설명했다.
2026 차이나 리포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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① <1> 중국 과학굴기 해부: 인재 도둑은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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② <2> 중국 과학굴기 해부: 우리가 외면한 중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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③ <3> 중국 과학굴기 해부: 중국의 실리콘밸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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④ <4> 중국 과학굴기 해부: 마피아와 카피캣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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⑤ <5> 중국 과학굴기 해부: 기술 포비아는 없다
선전= 나광현 기자 name@hankookilbo.com
선전= 신은별 기자 ebshin@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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